남자 누드모델 도전기, 어디를 쳐다봐야 하나

박현광 입력 2015. 8. 25. 21:21 수정 2015. 8. 25. 21: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체험기] 수치스러움을 견디는 직업? 90분만에 깨진 편견

[오마이뉴스 박현광 기자]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시선이 궁금했습니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들이 치마를 입는 남성, 임신한 여성, 남자 누드 모델 등으로 분했습니다. 그리고 시선이란 말 뜻 그대로, '눈이 가는 길'에 서봤습니다. 그 생생한 체험담을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사실 누드모델 체험기를 쓰려고요."

기자임을 밝히자, 키와 몸무게를 묻던 하영은(48, 여) 한국누드모델협회장은 종이와 펜을 탁자에 내려놨다. 안경 너머로 날 보더니 말했다.

"체험기를 쓴다고요? 누드모델은 종합예술이에요, 그런데 겨우 한 번 체험해보고 기사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요?"

하 회장은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보였다. 그는 누드모델을 쉽게 보고 덤비는 거라면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누드모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싶다며 누드모델 체험기를 쓰려는 이유를 피력했다. 대학에서 연극 동아리를 한 경험까지 들이대며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까지 부리며 40분간 설득했다.

"그럼 다음 주 토요일에 나오세요, 대신 일요일에도 나와서 교육을 받으세요."

막상 허락을 받고 나니 막막했다. 과연 벗을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했나? 지금이라도 안 한다고 말할까? 볼록 나온 뱃살도 걱정됐다. 하지만 이미 데스크에 취재 계획을 보고했고, "섹시한 아이템"이라며 격한 칭찬까지 받은 상태였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갈등 속에 시간은 결전의 날로 흘러가고 있었다.

벗어보니, 수치스러움 아닌 해방감이!

▲ 누드모델 몸을 젖혀 뒤를 누군가를 바라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현광
"자, 그럼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결국 누드모델을 하기로 약속한 토요일 아침,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누드모델협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 회장의 안내로 탈의실에 들어갔다. 옷을 홀딱 벗고, 자주색 가운을 몸에 걸쳤다. 보호막 한 꺼풀이 벗겨진 기분이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야 한다니. 탈의실 밖에서는 화가 5명이 무대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준비하고 있었다. '목욕탕에 왔다고 생각하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여자도 있는 '목욕탕'은 처음이었다.

"일단 그냥 하세요, 연기한다고 생각하시고, 어떤 포즈든 괜찮아요, 몸을 통해 살아온 삶이 드러날 거예요, 화가분들은 그걸 그릴 거예요."

하 회장의 충고는 간단했다. 알아서 하라! 시간이 다가왔고, 무대에 섰다. 무대 가운데 매트가 깔려 있었고, 삼면의 벽에 거울이 붙어있었다. 화실은 새하얀 형광등 불빛 때문에 환했다. 고요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드디어 가운을 벗었다. '민망해하면 민망해지는 거야'를 속으로 외치며 담담한 듯 행동했다. 다행히 쿵쾅거리던 심장도 진정됐다.

그래, 해보자. 내게 주어진 2개의 초시계 중 1분에 맞춰진 초시계를 눌렀다. 초시계는 포즈를 바꿀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였다. 처음 15개 포즈는 1분, 그 다음은 3분 포즈를 취해야 했다. 포즈는 입상(서 있는 자세), 좌상(앉은 자세), 와상(누운 자세) 등 몸의 방향을 돌려가며 다양하게 취해야 했다. 그래야 화가들이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고, 왼팔을 쭉 뻗었다. 고개를 15도 들어 허공을 봤다, 허공에 그리운 대상이 있는 것처럼. 순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와 돌이킬 순 없었기에 최대한 감정을 살리고자 애썼다. 감정이라는 가면 속에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1분이 지나자 포즈를 바꾸라는 초시계 알람이 울렸다. '무슨 포즈를 취해야 하지?' 허둥대다가 앉지도 서지도 않은 상태로 멈췄다. 양손은 갈 곳을 잃어 허리쯤에서 덜덜거렸다.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우스꽝스러울까봐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업 동안 취해야 할 포즈가 총 40개였는데, 그 많은 포즈를 다 다르게 선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슥슥, 삭삭. 1분 포즈 15개를 끝내고 3분 포즈를 시작하다 보니 조금 여유가 생겼다. 화가들이 데생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본 화가들은 바빴다.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벌거벗은 몸을 한 번 보고, 도화지 한 번 보기를 반복했다. 파스텔, 먹, 연필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림에 집중하는 화가들 눈빛에서 '왜 민망해 하는 거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조각상이 된 기분이었다. 조각상이 민망함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 누드크로키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디디고, 왼팔을 쭉 뻗었다. 고개를 15도 들어 허공을 봤다, 허공에 그리운 대상이 있는 것처럼.
ⓒ 이슬아
▲ 누드크로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 이슬아
"몸으로 연기하라"는 하 회장의 따끔한 충고도 더해지자, 과감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몸을 비틀어 눕기도 하고, 다리를 꼬고 앉기도 했다. 수치스러움보다는 해방감이 들었다. 몸을 크게 쓰다 보니 감정이 표출됐다.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을 땐 포즈를 취하는 3분 내내 후회했다. 한 동작을 계속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들이 '너 왜 그러냐'며 아우성을 쳤다. 끝나고 나니 온 몸에 알이 배겨 있었다. 누드모델이 왜 종합예술이라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연기력, 표현력, 운동신경, 체력까지 모두 필요했다.

작업은 2시간 정도 걸렸다. 30분씩 총 3번에 걸쳐 무대에 섰고, 중간에 10분씩 쉬었다. 마지막 초시계 알람이 울리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누워있는 상태였다. 체력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자세로 와상을 선택했었다. 길게는 4시간도 한다는 전문 누드모델이 경외로웠다. 다시 하라면 민망하기 보다 힘들어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그래도 끝났다' 옷을 입고 나오니, 하 회장은 그 길로 집에 가라고 했다. 평가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하 회장은 내일 다시 와서 직접 그려보고,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몸의 아름다움' 이래서 누드화를 그리는구나

▲ 여자모델 누드크로키 누드모델 체험 이튿날, 여자모델을 보고 직접 그린 누드크로키.
ⓒ 박현광
▲ 여자모델 누드크로키 누드모델 체험 이튿날, 여자모델을 보고 직접 그린 누드크로키.
ⓒ 박현광
다음 날 협회를 다시 찾았다. 협회에는 여자 모델 4명이 있었다. 여자 모델들은 한 달에서 6개월 누드모델 경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학생이거나 직장인이었다.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며 틈틈이 누드모델 일을 한다고 했다. 주말에는 하 회장에게 포즈나 퍼포먼스 공연 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것이었다.

모델 대부분은 자신의 일을 주위 사람에게 숨긴다고 했다. 가명을 쓰기도 했다. 누드모델 일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누드모델을 낮잡아 보는 시선에 일일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드모델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한 명은 "돈 벌기 위해서"라면서도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더는 말을 아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전날 누드모델로서 느꼈던 해방감이 떠올랐다.

오후가 되자, 화가들이 협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자 모델이 무대 가운데에 섰다. 하 회장은 종이와 연필을 건넸다.

"그려보세요."

일단 그림을 그리라는 말에서 당황했고, 그리는 대상이 여자 누드모델이라는 점에서 당혹스러웠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화실에 음악이 흘렀고, 모델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했다. 모델이 뻗은 손을 따라 선을 그리고, 몸의 테두리를 그렸다. 가슴을 그리고, 다리를 그렸다. 선을 따라 그렸을 뿐인데, 그림이 완성되는 게 신기했다.

사람 몸에 있는 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3분마다 바뀌는 포즈를 따라가다 보니 여자 모델을 보고 딴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동시에 '어제 내가 민망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모델은 의자에 버티고 선 자세를 5분 동안 유지할 때 팔이 덜덜 떨기도 했지만, 음악의 분위기에 맞춰 포즈를 잡아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지막 초시계 알람이 울리고 화실에 있던 모두가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다. 하 회장은 "이제 가세요, 집에"라고 짧게 말했다. 평가는 없었다.

"네"라고 대답하고 미련없이 협회를 빠져나왔다. 평가가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협회를 나서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가슴에 새겨진 한 줄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고 판단하지 말자.' 

'누드모델'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싸 보인다'거나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누드모델을 하기 전에는, 남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 그것을 견디는 대가로 쉽게 돈을 버는 것이 누드모델이라고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소리! 누드모델은 수치스러움을 견디는 직업이 아니었다. 쉽지도 않았다. 그리기 좋은 포즈를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해야 비로소 당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드모델.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박현광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 자발적 유료 구독 [10만인클럽]

모바일로 즐기는 오마이뉴스!
☞ 모바일 앱 [아이폰] [안드로이드]
☞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