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협상' 중인 남북은 목함지뢰와 포격 도발에 대한 북측의 사과·유감 표현 수위 등을 놓고 막판 진통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이 처음으로 의미있는 사과 표명을 수용함으로써 25일 오전 나흘간 이어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관광객 쏴 죽이고 "남측 책임"
북한은 1953년 휴전 이후 매년 쉬지 않고 각종 도발·침투를 저질렀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북한의 대남 침투는 약 2000건, 국지 도발은 약 1000건이다. 정전협정 위반 건수도 유엔사가 집계를 중단한 1994년 4월까지 42만5271건에 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정식으로 '사과'란 말을 한 적이 없다. '미안한 사건'이란 표현이 딱 한 번 있었고, 몇 차례 유감 표명을 한 게 전부다. 그나마도 자신들의 소행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건들에 국한됐다. 1983년 아웅산 테러와 1987년 KAL기 폭파, 그리고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에 대해서는 "책임은 남측에 있다" "특대형 모략극"이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특히 북한은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우리 관광객(박왕자)을 조준 사격해 살해하고도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했다. 당시 북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은 담화에서 '남측은 명백히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한 문장만 빼면 모두 우리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듬해 김정일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 측의 공동 조사 요구는 거부했다.
◇청와대 기습 4년 후 "미안한 사건"
북한의 첫 대남(對南) 유감 표명은 1972년 5월이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극비리에 방북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4년 전 발생한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사건'(1·21 사태)에 대해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다. 내부 좌익 맹동 분자들의 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의 의사가 아니었다"고 했다. 김승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도발의 우두머리가 마치 남의 일인 양 변명했다"며 "이마저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앞두고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지못해 한 말"이라고 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해 김일성은 유엔군사령관 앞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구두 메시지를 보냈다. 이 사건으로 장교 2명을 잃은 미군이 한반도에 전폭기 대대와 항공모함을 급파하자 어쩔 수 없이 진화에 나선 것이다.
◇계획적 도발 후 "우발적 사건"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직후 북한은 "백 배, 천 배 보복하겠다"고 협박하다 그해 12월 "막심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다. 북 무장공비 소탕 작전이 49일간 이어지며 북한의 도발임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화된 2차 연평해전(2002년 6월) 직후 장관급 회담 북측 단장(김령성)은 우리 쪽 대표에게 '서해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계획적인 기습 공격으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우발적'이란 표현을 썼다. 또 "북남 쌍방은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해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