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의 브레이크 없는 '수퍼甲 횡포'

정우상 기자 입력 2015. 8. 18. 03:06 수정 2015. 8. 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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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취업 잘 봐달라" 압력, 상품에 本人 이름 표시 경로당 보일러 교체 강요, 경찰수사 지휘소동까지.. "국회의 솜방망이 징계도 원인.. 윤리委 외부인력 강화해야"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의 자녀 취업 청탁 의혹을 계기로 기업과 공공 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을 상대로 한 국회의원들의 '수퍼 갑(甲)질' 논란이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무소속 심학봉 의원의 성폭행 논란, 무소속 박기춘 의원의 뇌물 수수 등 각종 비위 사건이 드러났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수도권에 공장을 둔 A사 관계자는 올해 초 한 국회의원으로부터 "지역구에 있는 경로당 보일러가 낡았는데 새것으로 바꿔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해당 의원은 공장 관련 규제를 담당하는 국회 상임위 소속이다. 해당 의원실은 보일러 교체 이후에도 '조기 축구회 협찬' 등 여러 건의 지역구 행사 협찬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기업 관계자들은 "요즘 국회의원들은 뇌물 대신 지역구 행사 협찬, 인사 청탁 같은 변형된 '갑질'을 하고 있다"며 "이를 거절할 경우 국정감사 증인 채택 등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인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지난 3월 자신이 대표로 있던 회사의 쌀 제품에 자기 이름을 사용해 문제가 됐다.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마트 등 유통업체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국회의원의 이름이 박힌 상품을 매장의 나쁜 자리에 배치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경찰을 담당하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인 새정치연합 유대운 의원은 지난 5월 술을 마신 뒤 경찰서 지구대에 찾아가 "지역구민 딸을 괴롭힌 바바리맨을 찾아내라"며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등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갑질'은 자신들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지자체와 지방의원, 보좌진 등에 대해선 더욱 노골적이다. 한 전직 지자체장은 본지 통화에서 "지자체장 공천 과정에 국회의원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의원의 인사 청탁이나 지역 개발 민원을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전직 구청장도 "국회의원실에서 결혼식, 출판기념회 등의 일정을 알려온다는 것은 곧 돈 봉투를 가져오라는 소리"라고 했다.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상(喪)을 당하면 장례식장에서 온갖 심부름을 다 하며 눈도장을 찍기도 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상객들이 '저 사람들은 어느 상조회사에서 나왔는데 저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할 정도"라고 했다. 한 전직 구의원은 "국회의원보다 그 아내가 더 높더라"며 "의원 아내가 지역구에 내려오면 구의회 의장이 직접 차를 몰고 나가 모시고 다니며 여고 동창 모임의 밥값까지 떠맡는 모습도 봤다"고 했다.

평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강조해왔던 한 야당 의원의 전직 보좌관은 "출근길에 국회 주차장 차단기가 올라가지 않아 의원에게 물었더니 '너 잘렸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비정규직인 보좌관을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 해고한 것이다.

공공 기관 및 기업에 대한 인사 청탁은 국회의원은 물론 의원 보좌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한 공공 기관의 직원은 최근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한 의원 보좌관이 자꾸 전화를 걸어 특정인의 합격 여부를 물어보더니 합격자 발표 직전에 '최근 3년간 합격자 명단 전체를 제출하라'는 요구까지 했다"며 "단순 문의가 아니라 특정인을 합격시키라는 압력이었다"고 했다. 수도권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시청, 구청뿐 아니라 산하 기관에 비정규직 자리 하나만 나와도 귀신같이 알아내 '그 자리에 누구를 꽂아달라'고 지역구 의원실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정당들은 의원들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면 근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해당 의원을 출당시키거나 형식적인 징계에 그치는 등 임기응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현역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국회 윤리위원회로는 의원들의 갑질 횡포를 막기 어렵다"며 "국회 윤리위의 절반 이상을 외부인들로 구성해 실질적인 징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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