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車 반값 대체부품 한 달 넘게 판매량 '0'인 이유는

박관규 2015. 8. 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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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대체부품 제도 겉돈다

인증제 6개월 만에 첫 제품 출시

정품보다 고성능에 가격 절반인데

수입차 업체 원천차단… 취급 안 해

국산차도 디자인권 등록해 방어

"무상수리 안 해주겠다" 으름장

2013년식 BMW 520D를 몰고 있는 김모(47)씨는 최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 벽 모서리에 살짝 부딪혔다. 우측 앞범퍼는 긁혀 도장이 조금 벗겨졌고, 펜더(타이어 덮개) 부분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수리를 위해 서비스센터를 방문한 김씨는 견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부품값만 앞범퍼 160만원, 펜더 44만원이 책정돼 있었다. 값이 싼 펜더 대체부품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는 "대체부품으로 해달라"고 했지만, 센터 직원은 "그런 부품은 없고, 센터 외의 부품을 쓰다 걸리면 무상수리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수입차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정비소 3곳을 찾았지만 어느 곳에도 대체부품은 없었다. 김씨는 "대체부품은 유통도 안 시킬거면서 왜 요란하게 홍보했는지 모르겠다"고 격분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부품 가격의 거품을 빼기 위해 올해 1월 도입한 '대체부품 인증제도'로 국토교통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제도 시행 6개월여만인 지난달 13일 가까스로 첫 대체부품(BMW 5시리즈 펜더)이 출시됐지만 수입차 업체의 적극적인 방어전략에 한 달이 넘도록 판매건수 '0'을 기록하고 있고, 국산차 부품은 디자인보호법에 묶여 대체부품 출시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완성차 업체의 저항

16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국내 첫 대체부품인 대만 TYG사의 BMW5시리즈 펜더는 이날 현재까지 이용건수가 단 한 건도 없다. 인증제 도입 후 첫 출시품인데다 재료가 절단될 때까지 끌어당기는 최대 인장강도 실험에서 순정부품보다 더 강하게 버틸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무엇보다 가격이 순정품(44만8,300원)의 반값 수준인 21만8,65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다. 정부 관계자는 "인증 대체부품 출시에도 불구하고 정식 서비스센터에서 취급을 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방어에 나서고 있는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대체부품의 경우 출시를 기약할 수조차 없어 보인다. 현재 대체부품 인증대상은 펜더, 보닛, 도어패널, 트렁크 덮개, 라디에이터 그릴, 흙받이, 몰딩, 방향지시등 등 40개 품목.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대신에 자주 파손되고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은 부품 위주로 채택했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이들 주요 외장부품에 대해 90% 이상 디자인권을 등록한 상태다. 디자인권을 등록하면 대체부품 생산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는 것을 계산한 조치다.

완성차 업체들의 횡포는 이 뿐 아니다. 대체부품은 고사하고 순정부품이라도 국내 서비스센터에서 유통하지 않은 제품이면 아예 신차 구입시 보장된 무상 서비스까지 안 해준다고 으름장을 놓을 정도다. 독일 아우디 차량을 운행 중인 최모(40)씨는 "수입차 부품을 병행 수입하는 SK네트웍스에서 구입한 순정부품으로 문짝 몰딩 부분을 수리했다가, 다른 문제로 센터에 갔더니 센터에서 수입한 부품으로 원상복구 하지 않으면 무상수리를 안 해주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후속조치 나섰지만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체부품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디자인보호법과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이르면 금주 중 발의할 예정이다. 정비를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체부품에 대해서는 디자인권이 등록됐더라도 36개월이 지난 경우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디자인보호법), 인증 받은 대체부품에 대해서는 수리를 거부해선 안 되는 내용(자동차관리법) 등이다. 민병두 의원은 "완성차 업체에선 자동차는 2만여개의 부품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핑계를 대며 대체부품으로 수리할 경우 사고나 결함 시 책임을 지지 않으려 들고 있다"며 "해외에서 이미 정착된 대체부품을 국내에서만 유통을 막으려는 이러한 행동은 과한 이익을 추구하려는 완성차 업체의 꼼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체들의 강한 저항 탓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또 통과된다 해도 실효성이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간의 '갑을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체부품 인증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품제조사 입장에서는 회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완성차 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 한국자동차부품협회에 등록된 240여개 국내 부품사 중 대체부품제 신청서를 낸 곳은 3곳뿐이다. BMW 범퍼 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부품업체는 "우리 기술력으로도 수입차 범퍼를 충분히 생산해낼 수는 있으나 과거 상신브레이크(브레이크 시장 점유율 1위)가 해외진출을 도모하다가 완성차 업체와 거래가 끊기면서 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대기업 납품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결국 복합적인 후속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대기업을 설득해 국산차량에 대한 대체부품이 적극 생산되도록 해야 하며, 의무적으로 대체부품을 서비스센터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조치 등의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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