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식제공하지만 월급은 없어요, 제주도니까"

입력 2015. 8. 14. 14:26 수정 2015. 8. 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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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게스트하우스 무급 관행… "임금 아닌 편의제공 목적, 불법 아냐"

[미디어오늘 이하늬 기자]

"모든 게스트하우스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너무 노동력 착취였다. 솔직히 숙식제공이라고 해봤자 방은 정해져 있고 먹는 거 그거 얼마나 되겠나. 그래봤자 집밥이니까.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가 400개 이상이다. 거기 일하는 스탭을 계산하면 매년 몇 천명이 넘을 거다. 그런데 노동환경이 너무 엉망이다.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 해 3개월 동안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으로 일했던 A(27)씨의 말이다. 당시 A씨는 제주도를 여행할 목적으로 게스트하우스 스탭으로 지원했다. 한달 중 15일 가량만 일하면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스탭 모집 글을 보니 할 일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매일 손님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등 즐거운 분위기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보통 게스트하우스 스탭의 하루는 오전 8시쯤 시작된다. 손님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손님들이 퇴실하면 객실 청소와 빨래 등을 한다. 이 일이 끝나면 오후 4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도 된다. 오후 4시부터는 손님 안내 및 응대를 하고 바베큐파티 등이 있는 경우 이를 준비하고 오후 11시쯤 소등을 하면 하루가 끝난다. 소등이 없는 곳도 있다.

이에 대해 대다수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한 일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아침에 청소 한 시간, 저녁에 파티 도와주기(상추 씻기, 마늘 자르기, 상차리기 등등) 뭐 할게 없네요" "(게스트하우스) 크기가 크지 않아서 그리 할일이 많지는 않아요" "게스트하우스 청소, 수건빨래, 요리보조 정도. 먹고 놀고 하는거죠 뭐" "거의 매일 파티를 하는데 함께 놀고 대화하고 즐겨요." 게스트하우스들이 숙소를 제공하는 대신 무급을 내걸고 있는 이유다.

▲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이하늬 기자

무급인 게스트하우스들은 '처우'와 관련해 급여 대신 "매일 진행되는 바베큐파티에 참석해 맛난 흑돼지를 무한으로 먹을 수 있다"거나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커피 제조를 배우고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커피 무제한!!" 혹은 "스킨스쿠버와 제트스키 등 무료교육" 등을 내걸고 있었다. 심지어 "귀여운 강아지와 놀 수 있다" "멋진 언니 오빠들과의 친분 제공" "제주도 정보 제공"을 쓴 곳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스탭으로 일했던 이들은 노동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제가 일했던 곳은 시끌벅적하고 바비큐 파티를 매일 해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손 갈 게 많았다"고 말했다. 올해 3월부터 한달 동안 스텝을 했던 B(32)씨 역시 "노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도 무급이어서는 안 된다"며 "저는 무급 스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월 20만원을 받고 일했다.

자유시간으로 명시되는 오후 시간도 사실상 '애매한' 시간이 되기 쉽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제주 여행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글을 보면 "현실은 전혀 간단하지 않은 청소량, 아침 청소에 진이 다 빠져 잠시 숨 돌리고 나면 어디 나가기 애매한 시간이 되어 버렸다"고 쓰여 있었다. A씨 역시 "대부분 스탭이 그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없다"며 "게스트하우스를 벗어나지 않을 경우 그 시간은 휴식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닌 시간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기 때문에 부당하게 해고되는 경우도 있었다. C씨(30)의 경우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당시 C씨는 온라인카페에 올린 글에서 "술을 안 마시고 파티에서 왁자지껄하게 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 잘라버렸다"며 "근로계약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받아야 되는 월급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오늘부로 그만 나오라는 일방적인 통보에 꼼짝도 못하고 당했다"고 밝혔다.

제공되는 숙식의 수준 역시 문제가 많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는 스텝에게 '스텝룸' 혹은 '게스트룸'을 제공했는데 적게는 2명에서부터 많게는 6명이 함께 사용하는 방이다. 한 게스트하우스는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스텝방은 혼숙"이라며 "저희는 작은 게스트하우스니까"라고 썼다. 게스트하우스 특성상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이 같은 게스트하우스가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스트하우스 50곳을 살펴본 결과 유급은 12곳에 불과했다. 정확한 월급 대신 "여행경비 10만원 지원"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 지원"등을 내건 곳도 포함한 수치다. 가장 월급이 높은 곳은 주 4일 근무에 40만원이었으며 4대 보험을 보장하는 곳은 50곳 중 1곳에 불과했다. 제주도에는 500개 가량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단순 적용하면 350개 이상이 무급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당연히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의 고은선 노무사는 "게스트하우스는 숙박업소고 스텝은 숙박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고 봐야한다. 즉, 여관관리 업무"라면서 "당사자간 합의했다고 해도 임금 지급의 원칙상 근로의 대가는 돈으로 줘야한다. 일이 쉽고 어렵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혜정 알바노조 사무국장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숙식을 제공하는 식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불법"이라며 "차라리 월급을 제대로 주고 숙식 제공비를 받으면 되는것이지 그렇게 퉁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어 "제주도의 특성상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도 차원에서 알려주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고시원·독서실 총무 등도 모두 숙박과 함께 임금을 지급받는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제주근로개선지도과 근로감독관은 "스탭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임금이 목적이라면 이같은 관행은 문제가 있지만 편의 제공이 목적이라면 마냥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국가가 나서려면 당사자들의 이의제기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것과 관련해 접수된 사건이 없다. 사건이 많이 들어오면 당연히 국가가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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