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생만 74명, 어느 신설 고교의 미스터리

임정훈 2015. 8. 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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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성폭력 논란 고교, 하품만 해도 벌점.. 명문고 만들기에 악용된 벌점제

[오마이뉴스 임정훈 기자]

 신설 학교 명문고 만들기라는 신기루 아래 그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삶 전반에 걸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벌점제와 퇴학이라는 괴물의 그림자.
ⓒ 오마이뉴스
[기사수정 : 10일 오후 3시 12분]

서울의 한 공립 고교(아래, ㄱ고교)에서 벌어진 낯 뜨겁고 끔찍한 성폭력 사건이 논란이다. 남자 교사가 동료 여교사를 상대로 성추행하고, 여학생들에게는 성희롱 발언을 지속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또 다른 괴물이 있다.

신설 학교 명문고 만들기라는 신기루 아래 그들은 성폭력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삶 전반에 걸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벌점제와 퇴학이라는 괴물의 그림자.

성폭력 논란 서울 ㄱ고교, 개교 2년 만에 학생 74명 자퇴

2012년 12월 27일 설립한 ㄱ고교는 이듬해인 2013년 3월 4일, 아직 개교식도 하지 않은 채 291명을 첫 신입생으로 맞이했다. 이들이 올해 3학년인 학생들이다. 개교식은 입학식보다 한 달 이상을 훌쩍 넘겨 그해 4월 25일에 치렀다. '창의적이고 건강한 민주인'이라는 멋진 교훈도 만들었다. 그리고는 악몽이 시작됐다.

교육부 학교 정보 공시 자료에 따르면, ㄱ고교에서 2013년부터 2014년까지 2년 동안 무려 74명(2013년 22명, 2014년 52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자퇴(퇴학)했다. 학급당 30명을 기준으로 했을 때 3학급에 가까운 학생들이 자퇴(퇴학)라는 이름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2013년에 입학한 학생들 중 첫해에 22명, 이듬해에 24명이 학교를 떠났다. 46명이 2년 사이에 학교와 결별한 것이다. 2015년 자료는 아직 학교 측이 정보 공개를 하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지만 2015년 학업 중단 현황까지 합하면 이들의 숫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자퇴로 내몰려 학교를 떠나는 데는 '별점제'라는 여의봉이 있었다. 한 보도에 따르면, ㄱ고교는 수업 중에 방귀를 뀌거나 하품을 해도 학생들에게 벌점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 학교의 '학생생활지도 규정(아래 생활규정)'에는 벌점제가 명시돼 있고 벌점에 해당하는 항목이 36가지나 있지만 방귀나 하품에 벌점을 줄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벌점제를 해당 교사의 자의적인 판단과 기분에 따라 범위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여의봉처럼 악용하는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생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벌점이 쌓이면 학생은 수상이나 진학에 불이익을 받게 되고 학교 측은 이를 빌미로 학생에게 자퇴를 가장한 퇴학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이 같은 방법은 신설 학교에서 더욱 극성으로 잔인하게 벌어진다. 신설 학교를 '명문고'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군기를 바짝 잡아야 한다. 명문고를 향한 학교의 방침이나 생활규정 등에 순종하지 않고 저항하거나 어기는 학생은 '털어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명문고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아주 흔하다. '(명문고를 지향하는) 신설 학교→ 학생 군기 잡기→ 벌점제 활용→ 퇴학'으로 이어지는 관행은 아주 오래된, 못된 습성이다. 특히 학년 초나 학기 초에 한 학급 이상의 학생들을 '잘라서' 본보기를 보이는 학교들도 여럿 있다. 학교규정으로 벌점제를 명시하고 법으로 '퇴학'을 보장하고 있으니 학교는 규정과 법대로 한 것일 뿐이다.

이재정 교육감, 벌점제로 학생 수십여 명 퇴학시킨 교장 승진 인사
▲ . 학생들에게 벌점을 주는 벌점카드가 교무실에 준비돼 있는 모습
ⓒ 임정훈
지난 2011년 개교한 경기도 남양주의 한 고교에서도 ㄱ고교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교한 지 석 달 만에 18명의 학생들이 모두 벌점제로 퇴학을 당했다. '벌점이 80점 이상 누적된 학생은 퇴학'이라는 학교 규정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 측은 매우 강경했으며 학생들에게 자퇴서를 내도록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인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취지의 경기학생인권조례도 소용이 없었다.

이 학교 역시 신설고로서 명문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학생들을 걸러내는 데 벌점제를 이용했다. 인권단체들과 언론이 나서 일부 학생들을 구제하긴 했지만 벌점제 때문에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야 했던 학생들 모두가 학교로 돌아오지는 못했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은 이 같은 논란을 일으켜 국가인권위에 제소되기도 한 당시 교장을 올해 3월 정기 인사에서 교장으로 중임했다. 쫓겨난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올 수 없었지만 그들을 쫓아낸 교장은 다시 임기를 보장받는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

또 있다. 지난 2013년 개교한 평택의 ㅂ고교. 이 학교 역시 개교와 함께 학생들을 솎아내는 데 벌점제와 퇴학을 이용했다. 고교 비평준 지역 신설 일반계 고교로서 명문고 도약이 더욱 절실한 과제였던 탓이다.

첫 해 신입생 456명 가운데 40명이 2013년부터 2년 동안 학교를 떠나야 했고, 2014년 신입생 9명도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2년 동안 두 개 학년(1-2학년) 49명이 학교를 떠난 셈이다. 이 학교 역시 2015년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학교 피해 학생 중 일부는 경기도교육청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결국 학교를 떠났다.

이재정 교육감도 이 학교 실태를 듣고 2014년 12월 '학업 중단 학생 최소화'를 바탕으로 '퇴학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퇴학의 가장 큰 이유가 됐던 지각, 결석, 결과, 흡연 등을 이유로 학생을 퇴학 시키던 관행을 지양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재정 교육감은 49명의 학생들을 퇴학시킨 이 학교 교장을 올 3월 실시한 인사이동에서 지역교육청 과장으로 승진 시키는 기이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명문고를 만든다는 이유로 벌점제를 앞세워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쫓은 교장들을 중임하거나 승진시킨 것이다.

또한 지난해 벌점제 전격 폐지를 선언했으나 여전히 벌점제를 보란 듯이 실시하고 있는 많은 학교들에 대해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관련기사 :'변형 상벌제' 기승... 경기교육감 행보 의문).

학교 밖 부랑아 만드는 벌점제와 퇴학제도 폐지해야
▲ "헉! 벌점이!" 고등학교 교실 게시판에 벌점을 받은 학생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벌점 내용과 점수를 기록해 붙여놓았다.
ⓒ 임정훈
다시 서울 ㄱ고교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학교는 앞서 언급한 방귀나 하품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벌을 주는 근거로 생활규정의 벌점제를 적극 활용했다. 생활규정에는 "자극적인 색상, 무늬, 글자 등이 있는 속옷을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포함한 반인권적 규정들이 상당수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생활규정은 규정 자체가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따르지 않고 만든 것이어서 문제가 크다.

개교 당시 처음 만든 규정은 이른바 '개국 공신'으로 부르는 일부 교사들이 만든 것이다.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의견을 수렴 및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 공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ㄱ고교는 첫 입학식보다 빨리 이미 생활규정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입학식 전이어서 학생, 학부모 등의 의견 수렴이 불가능한 상황인데 이미 생활규정은 완성돼 있었던 것이다. '창의적이고 건강한 민주인'이라는 교훈은 처음부터 구호일 뿐이었다.

학교(교사) 측은 이를 근거로 학생들을 벌하고 징계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학생들에게는 생활규정을 들이밀면서 지키고 따를 것을 강요하고 이를 듣지 않으면 벌점을 누적해 퇴학(자퇴)으로 내몰았다. 징계의 근거인 생활규정 자체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인데 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데 이용했다. 성희롱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에서 벌어진 것이다.

36개 항목에 이르는 벌점제뿐만 아니라 ㄱ고교의 생활규정은 서울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위반하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2013년 제정 이후 2014년 7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개정했지만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조항들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강화됐다.

성폭력 사건의 처리는 그것대로 엄중하게 진행하면서 ㄱ고교는 구성원 모두가 민주적인 학교 다시 세우기를 통해 학생들의 자존감을 살리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제대로 나서서 돕고 지원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7만602명의 초중고생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해외 유학(출국)이 학업 중단의 압도적인 이유인 반면 고교생들은 대부분 자발적인 이유로 학교를 떠나기보다는 '가정-학교 부적응'을 명분으로 하는 자퇴(퇴학)가 59.7%나 된다.

의무교육에 해당하는 초-중학교 과정에서는 '퇴학(자퇴)'이 불가능하지만 의무교육이 아닌 고교 과정에서는 퇴학이 가능하다. 때문에 학교에서 이를 적극 활용해 학교 이미지 관리에 나서는 것이다. 퇴학을 위한 구실을 만드는 데에는 벌점제보다 좋은 것이 없다. 학교는 스스로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몰아내면서 아무런 의심도 성찰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국회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을 만들어 올 5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밀어내고, 당국은 이들을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낙인 찍고, 그 낙인을 지원하는 법률을 만드는 기이한 현상이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학교 밖으로 내몰기에 앞서 함께 사는 법을 먼저 고민하는 체계를 서둘러 갖추었으면 한다. 무심하게 내쫓아 놓고는 쫓겨난 이들을 다시 챙겨보겠다는 발상은 병 주고 약 주는 것보다 더 나쁘다.

벌점제와 퇴학을 이용해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쫓는 그릇된 관행을 중단하려는 노력과 실천은 이제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문제 학생 솎아버리기의 수단이 돼 버린 벌점제는 전국의 교육감들이 나서서 당장 중단을 선언하면 될 일이다. 또 퇴학제도는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에 포함하도록 법률(시행령)을 개정하면 자연스럽게 없앨 수 있다. 이것은 '학교 부적응자'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학교 밖 거리의 부랑아로 만들지 않는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모두 어른들의 몫이다.
▲ 학교생활규정 한 고등학교 교실 게시판에 학교생활규정 내용 중 벌점제 관련 항목을 정리해 붙여놓았다.
ⓒ 임정훈
○ 편집ㅣ장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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