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스리랑카人 11일 2심 선고

입력 2015. 8. 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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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증 사진, 17년 원한 풀어줄까
[동아일보]
1998년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 씨(49)의 항소심 선고가 11일 내려진다. K 씨는 1심에선 증거 부족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K 씨의 공범에게서 당시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는 새로운 증인 A 씨가 등장해 피해자와 유족들이 17년 만에 한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K 씨는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구 달서구 굴다리 인근 풀밭에서 공범 2명과 계명대 신입생 정은희 씨(당시 18세·여)를 성폭행하고 학생증과 현금 3000원, 책 3권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정 씨는 성폭행을 당하던 중 인근 고속도로로 도망치다가 23t 트럭에 치여 숨졌지만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다. 대구지검은 2013년 재수사에 나서 정 씨의 속옷에서 검출된 정액과 K 씨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15년 만에 확인하고 K 씨를 구속 기소했다. K 씨가 2010년 미성년자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입건됐을 때 채취한 유전자를 수사당국이 보관해온 덕이었다.

검찰은 2013년에는 이미 강간죄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난 뒤라 특수강도강간죄(15년)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1심에서 K 씨가 정 씨의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항소심을 준비하던 대구지검 형사3부 김진호 검사(39·사법연수원 36기)는 3월 25일 “(공범 D 씨가) 이 여자를 성폭행했다며 증명사진을 보여줬다”는 스리랑카인 A 씨의 진술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A 씨는 김 검사가 1998년 당시 한국에 있던 스리랑카인을 전수 조사한 끝에 새롭게 찾아낸 증인이었다. A 씨는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비공개 증언도 했다.

A 씨는 1998년 말 정 씨를 성폭행한 공범 D 씨와 15분여 동안 담배를 피우며 사건의 전말을 구체적으로 들었다고 했다. D 씨가 정 씨의 학생증에서 코팅을 벗겨내고 뜯어냈다는 증명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보여주기에 A 씨가 직접 만져봤는데 어디서 떼어낸 듯 뒷면이 꺼끌꺼끌했다고 했다. 먼저 성폭행을 한 K 씨가 공범들이 성폭행을 하고 있을 때 정 씨의 지갑을 뒤지다 학생증을 D 씨에게 건네주며 ‘나이가 너무 어리다’면서 붙잡히면 엄한 처벌을 받을까 봐 걱정했다는 말도 했다는 것. 정 씨는 1980년 1월생으로 당시 미성년자였다.

검찰은 정 씨 학생증 사진을 봤다는 A 씨 진술이 K 씨 일당의 강도 혐의를 입증해 17년 만에 단죄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진술의 신빙성을 정밀 검증했다. 먼저 계명대에 문의해보니 1998년도 신입생 학생증은 종이에 증명사진을 붙인 뒤 코팅하는 형태였고, 1999년부터 플라스틱 일체형으로 바뀌었다는 회신이 왔다. 또 스리랑카에선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를 ‘BA(bala aparadha)’라 부르며 사회적 낙인이 강하고 가중 처벌한다는 사실도 외교부를 통해 파악했다.

A 씨는 “당시 한국에 있던 D 씨의 사촌여동생을 소개해 달라고 말하려던 차에 사건에 대해 듣게 됐다”며 “D 씨가 자신의 여동생과 또래인 한국 여성을 성폭행했고 사실상 살해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주스리랑카 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파악해보니 D 씨의 사촌여동생은 1998년 당시 한국에 체류 중이었고, D 씨의 둘째 여동생이 정 씨와 동갑내기였다. 검찰은 “K 씨가 술 취한 정 씨를 자전거 앞에 태우고 굴다리로 이동했다고 들었다”는 A 씨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스리랑카에서는 자전거에 동승시킬 때 운전자 앞에 태우는 관습도 파악했다.

K 씨는 현재 청주외국인보호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강제추행과 무면허운전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강제퇴거 명령이 내려졌지만 정 씨 사건 공판이 끝날 때까지는 출국할 수 없다. 공범 D 씨는 2005년, 또 다른 공범 B 씨는 2001년 불법체류를 이유로 강제 추방됐다. 검찰은 K 씨의 유죄가 확정되면 공범 2명도 한국 법정에 세울 방침이다. 한국과 스리랑카는 범죄인 인도나 형사사법공조 조약이 체결돼 있지는 않지만 상호주의에 따라 충분히 신병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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