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 봐주는 문화, 폭력 범죄 부추긴다

이태무 2015. 8. 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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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간부, 음주-폭력범죄 연구

성폭력ㆍ가정폭력범 음주율 60~70%

"심신미약 주장 차단… 가중처벌해야"

이삿짐 차량을 운전하던 A(50)씨는 지난 해 10월 만취상태에서 아들(13)에게 흉기를 던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술에 취해 순간적으로 저지른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했고, 경찰은 A씨를 훈방했다.

A씨는 이후 경기 의정부시 알코올중독 치료병원에 6개월간 입원하기도 했으나 퇴원한 지 열흘만인 지난 4월 또 다시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한 아들을 때리고 "또 늦으면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했다. 경찰은 "술에 취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A씨의 진술에도 불구, 이번에는 자녀를 폭행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구속했다. 관련 전문가는 "술에 대한 관대한 처분이 결국 아이에게 2번의 고통을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관대한 음주 문화 근절을 위해 주취(酒臭)폭력범죄 전담부서 신설과 현행범 조사 전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의무화 등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형사과장 이원정(54) 총경은 지난해 의정부시 폭력범죄 3,747건을 전수 조사한 박사학위 논문 '주취폭력범죄의 처벌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재판과정에서 범행 당시 음주상황을 이용해 심신미약상태를 주장할 수 없도록 하고 오히려 가중처벌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총경은 논문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폭력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달한다는 사실을 수치를 통해 입증했다. 음주와 폭력범죄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의정부시에서 폭력범죄로 입건된 전체 피의자 4,851명 가운데 2,983명(61.5%)이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질렀다. 폭력범죄 가해자 10명 중 6명 가량이 음주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특히 성폭력과 가정폭력 가해자의 음주비율은 10명 가운데 7명 꼴로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을 폭행하는 등의 공무집행사범은 대부분이 술에 취해 '객기'를 부리다 범죄자로 전락한 케이스다. 의정부 시민과 의정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각 3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시민의 86%, 경찰관의 91.2%가 '주취상태의 강폭력 범죄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범죄보다 위험하다'고 답했다.

이 총경은 "의정부지역 폭력범죄의 음주비율이 전국 통계와 6%포인트 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미뤄 이번 분석결과로 전국적인 실태를 추론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직 경찰 간부가 실제 사건들을 토대로 음주와 폭력범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만큼 현장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는 의미가 있다.

논문은 현행법상 술에 취한 상태를 양형요소로 판단하는 뚜렷한 기준은 없으나 재판과정에서 법원이 음주상태를 심신미약으로 인정하면 감형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심신미약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는 성폭력 범죄와는 달리, 가정폭력 등은 여전히 음주에 따른 심신미약 규정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총경의 논문은 올 1학기 동국대 법학과 박사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이 총경은 "주취 상태는 범행 양상을 과격하게 만들기도 한다"며 "음주 범죄 관리의 경우 제대로 된 통계도 없는 만큼 관련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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