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 스승도 인간도 아니다"..성추행 파문 A고 학생들의 격정 토로

안준용 기자 입력 2015. 8. 6. 13:49 수정 2015. 8. 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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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낮 12시쯤 서울 서대문구 A고등학교는 적막했다. 교사 5명이 약 2년 간 동료 여교사와 여고생 100여명을 연쇄 성추행·성희롱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진 학교다.

여름방학 기간 중 보충 수업과 자율 학습이 실시되고 있지만, 학교 주변에선 오가는 학생을 찾기 힘들었다. 이날 학교를 찾은 학생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왔다는 2학년 학생 A(17)군은 “방학이라 덜 나오는 탓도 있지만, 요즘 같이 학교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 굳이 여기서 공부하고 싶겠냐”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 학교 가해 교사들은 피해자들의 신체를 더듬고 만졌다. 한 교사는 수업 시간에 제자에게 “원조교제를 하자”는 말도 했고, 교장은 교내에 끊이지 않던 성추행·성희롱 피해 제보를 은폐한 정황까지 나왔다.

2013년 3월 개교 후 2년여 만에 불거진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학교는 물론 인근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누구보다 큰 피해를 입었던 이 학교 학생들이 또 한번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학생들은 격앙돼 있었다. 1학년 C(16)군은 “(가해 교사) 그 사람들은 스승도, 인간도 아니다. 창피해서 다른 학교 친구들에겐 고개도 못 들겠다. 당장 전학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친구 B(16)양은 “언론 보도가 나오는 순간 우린 금세 우리 학교란 걸 알았다”면서 “문제가 된 선생님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고, 이제 학교 이미지는 끝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터질 게 터졌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2학년 D(17)양은 “내 친구들이, 언니 동생들이 악마 같은 사람들에게 당한 일”이라며 “계속 싫다고 얘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우리 모두가 그 사람들을 ‘저항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 같다. 터질 게 터졌고, 지금이라도 터진 게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정신적 충격을 받은 아이들을 위해 (가해자들은)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다 털어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능을 90여일 앞둔 고3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참담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3학년 E(19)군은 “문제를 찾아내 바로잡아야 하지만 하필 지금 시점에 사건이 불거져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번 일로 학교 이미지 때문에 입시 전형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고 했다. 고 3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에 나오지 않고, 인근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건 자녀들의 불안감이다. 오는 17일 개학하면 학생들이 더 동요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일부는 이미 자녀들의 전학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 이모(43)씨는 “딸 가진 부모로서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면서 “다만 이번 사건을 밝히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또 다른 2차 피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사건은 현재 경찰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 경찰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넘겨받은 감사 자료 분석을 마무리하고 조만간 A고등학교 피해 여교사와 여학생들을 조사할 예정이다. 학교 측은 현재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한 교사는 “워낙 민감한 시기인 만큼 이번 사건은 물론 학교 행정에 관한 일반 사항도 언급할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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