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찾아온 임신 소식 하지만 주변에서는..

베이비뉴스 2015. 8. 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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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병마, 직장과 싸우는 한 엄마의 이야기

[특별기고] 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

막상 임산부가 되고 나니 이런 글도 더 많이 와 닿고 길을 다니면서도 임산부가 더 많이 눈에 띈다.

3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도 바로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나는 3년 전 유방상피내암이라는 병을 진단받고 2번의 수술과 방사선치료, 1년의 항암제를 먹어온 여자다. 결혼식 즈음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항암제를 중단하고 최소 1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임신해도 좋다는 얘기를 전달받게 됐다. 미리미리 얘기해 줄 것이지 가장 먼저 임신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에는 임신은 원하면 해도 된다는 말이었는데 막상 결혼하고 임신 준비를 하겠다고 하니 이런 소리를 했다. 약을 끊고 세월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병원에서 얘기한 그 1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다 보냈을 즈음에는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바로 임신을 달가워하지 않은 남편이다. 올해로 41세인 남편은 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책임져야 할 아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담인 듯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진지하게대화한 끝에 "내 나이 41세인데 이제 애를 낳으면, 애가 대학 갈 때 나는 환갑이 넘어. 애한테 해주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걸 내가 다 해줄 수 있을까? 의문이야. 그렇다고 애를 절대 가지지 말자는 것은 아니야."

그런 남편의 진심을 알아버린 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불확실한 미래 앞에 수긍하며 열심히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결혼을 하고 나니 정규직이 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계약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던 찰라, 벌써 두 아이의 엄마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가 복귀한다는 전임자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던 전임자는 엄청난 육아비 앞에 다시 복직을 다짐했으리라. 아이를 봐주실 친정엄마도 계셨고, 복귀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무엇보다 참으로 부러웠던 것은 그렇게 복직할 수 있는 회사에 몸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도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복직했는데, 둘째까지 받아주는 회사가 그 어디 또 있을까? 그렇게 정규직의 기회는 날아갔고, 우연찮은 기회에 나 역시 정규직으로 당당히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전임자는 결혼 9년 만에 나이 40살에 갑작스럽게 임신을 했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 일상생활이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 직장의 계약만료와 더불어 하루의 휴가도 없이 급하게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3일간 짧은 오후 시간에만 진행된 인수인계 중에도 전임자는 끊임없이 구역질해댔고 또한 구토해댔다. '참 입덧 한 번 요란하게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안녕을 고했는데 그 인수인계가 끝이 나던 주 토요일에 나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목적은 지난주 검사했던 자궁경부암 검사의 이상 소견으로 추가 조직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것. 또한, 함께 진행한 피검사에서 갑상선에 이상이 있으니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생리일을 피해 내원하라는 연락에 생리예정일이 5일이나 지났으나 아직 생리가 시작하지 않았으니 얼른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병원을 찾았다.

내과의 소견은 갑상선기능저하증.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되면 임신이 어렵고, 임신해도 유산이 잘 되고 여러 가지로 피곤이 몰려오니 추가 검사를 시행해 약을 먹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자고 했다. 또 A형 간염 항체가 없으니 접종을 해라 해서 비용을 물어보지도 않고 덜컥 접종부터 해버렸다.

그리고 찾은 산부인과 진료실. 경부암 검사 결과 비정상적인 세포가 발견되었으니, 추가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직전에 나는 생리예정일이 5일 지났다고 말을 흘렸는데, 갑자기 의사가 검사하지 않고 임신테스트부터 하자고 한다. 그럴 가능성이 없으니 안 해도 된다는 나의 말을 두어 차례 부인하더니 잠깐이면 된다고 임신테스트를 하란다. 잠시 후 소변검사 결과.

두둥! 임신 5주란다.

오 마이 갓!!!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임신이라니(나 엊그제 이직했는데 임신이라니) 임신의 기쁨도 잠시, 여러 가지 복잡한 현실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산이 쉽게 잘 될 때이니 조심히 생활하고, 많이 졸릴 테니 중간중간 잘 쉬어주라는 의사 선생님.

얼떨떨한 마음에 26만 원이 넘는 내과와 산부인과 진료비를 계산하고 집으로 와서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정말?" "진짜?" 이 두 마디로 반응을 끝낸 남편은 회사에는 비밀로 하고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조용히 다니라고 했다. 주변 친한 지인들 역시 3개월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니 회사에는 얘기하지 말란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던 나는 우선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얘기하려 해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지 않은가?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말하고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는 내 생각과는 달리 모두 그냥 비밀로 다니라고 하는 것을 듣고 난 참 속이 상했다. 그 후 시작된 입덧.

내가 아는 입덧은 음식 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이 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웬걸 시도 때도 없이 그리고 예고도 없이 구역질이 나왔다.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다가 구역질이 날 것 같으면 재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가 구역질을 해야 했다. 그것도 들키지 않게 숨을 죽여가며….

하루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급히 화장실에서 구역질하던 중 왈칵 하혈하는 것이 아닌가? 한 번으로도 매우 놀랐는데 2~3번 계속되는 하혈에 내심 고개를 휘저으며 사무실 인근 병원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물론 함께 있던 동료들에게는 속이 갑자기 안 좋아서 급히 내과에 다녀오겠다며 거짓말을 했다)

병원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료를 보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린다. '폴딱폴딱'. 예상치 못한 순간의 임신 사실과 또다시 예상치 못한 순간의 심장 소리라니.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아가가 무사하구나…. 자궁 내 폴립이 있어서 피가 고였다가 나오는 것이라며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오라고 한다. 그냥 폴립을 제거해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피가 많이 날 수 있어서 임신 중에는 폴립 제거를 잘 안 한다고 한다. 일주일에 1번씩 내원이라니…. 아기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료비 약 4만 원을 또 결제했다. 아기가 잘 크는지 매일 매일 보고는 싶다만 아무래도 1주일에 한 번은 병원비가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았다. 그냥 원래 다녔던 병원에서 3주 후에 오라 했으니 그때 가기로 결심을 했다.

유산의 위험성을 한번 느꼈던 나는 급히 태아보험을 알아봤다. 20세납 100세 만기를 하니 1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보험이란 만일의 일에 대비하는 것이니 100세 만기를 해주는 것이 가장 옳다고는 생각됐지만, 20년 넘게 10만 원도 넘는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사실에 목이 조여 왔다. 실비보험만 100세만기로 건강보험은 30세 만기로 조정을 하니 얼추 7~8만 원 언저리가 나왔다. 다음 주 설계사를 만나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앞으로 줄줄이 돈이 깨질 생각을 하니 힘들어도 출산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직장을 다녀야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임신 8주를 앞에 두고 그 날따라 입덧이 몹시 심했다. 출근길부터 우선 심상찮은 예상이 들었는데 종일 물 한 모금 마실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나를 두고, 동료들과 대표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두 "임신이면 안 돼" 대표 역시 "얘기하기도 미안하지만 임신하면 안 돼"라며 같은 여자로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주 임신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임신 사실을 밝히고, 후임자 구할 때까지 몇 개월 여유 있게 일 처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게 권고사직을 해주겠다고 먼저 말을 해주면 참으로 좋겠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비용이 들어가는 일에는 몹시도 민감하고,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권고사직 얘기를 먼저 꺼내기도 힘이 들 것 같다.

임신은 축복이지만 임신은 정말 현실이라는 말이 너무 와 닿는 요즘이다. 주변에서 임신을 위해 시험관 등 애를 쓰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항암제다 뭐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임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였던 내가 임신을 했음에도 기쁘지만은 않다니…. 지하철에서도 임산부 표식을 달고 있어도 그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임신임을 밝히는 순간 회사 내에서 민폐가 되는 민폐녀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내일 신랑과 함께 병원에 간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건강하게 뛰는 우리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힘을 내야겠다. 임산부 직장인으로 남든, 직장을 포기하든 말이다. 모든 직장인 임산부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또한, 모든 엄마가 존경스럽다. 날 낳아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이를 악물어본다. 이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것을 기대하며….

[원고 모집 안내]베이비뉴스는 다음카카오와 함께'나는 대한민국 임산부입니다'임신하기 두려운 나라,임산부 응원 뉴스펀딩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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