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필에게 듣는 어제, 그리고 내일 이야기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2015. 8. 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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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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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

근사한 장면이었다.

김필과 곽진언, 임도혁이 나지막이 ‘당신만이’를 부르기 시작하자 청중들은 이내 숨을 죽였다. 인터넷은 이들이 부른 노래로 곧장 달아올랐다. 이후로도 Mnet <슈퍼스타K6>의 명장면이라며 오래토록 회자됐다.

김필은 당시 경연에서 내내 우승 후보로 꼽혔던 인물이다. 곽진언과 따로 부른 ‘걱정 말아요’. 자작곡 ‘크라이’ 등의 무대 역시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경연 마지막 순간까지도 김필과 곽진언 두 사람을 견주는 의견은 비등했다.

한바탕 거센 바람이 지나간 뒤, 김필은 차분히 음악을 준비해왔다. 스포츠경향과 만난 김필은 “경연과 또 다른 긴장감이 든다”면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유명 음악 명문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출신, ‘빨간 구두 아가씨’의 작곡가인 김인배를 외조부로 둔 집안 내력, 싱어송라이터 기질, 그리고 ‘음색깡패’라 불릴 만큼 독특한 음색 등 김필에게는 앞날을 기대케 하는 고무적인 대목이 특히 많았다. 심사위원인 이승철은 이런 김필을 두고 “남자가수가 갖춰야할 것은 다 갖췄다”며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 청춘의 시기

“많은 실패를 경험했답니다.”

부족할 게 없어 보이던 김필에게도 미처 말하지 못한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집안 일로 할머니 댁인 경남 진주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가수의 꿈을 안고 스무살 서울로 올라왔지만, 더 녹록치 않았던 것이 서울살이였다고 한다.

그는 “<슈퍼스타K2>, <보이스코리아2>, <위대한탄생1> 예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고 떠올렸다. 다소 앞섰던 것이 패인이랄 만큼 그는 줄곧 포크 위주의 싱어송라이터 음악을 고집했다. 당시는 포크류가 거센 바람을 일으키지 못할 때이기도 했다. 흑인 음악 보컬리스트 위주의 출전자들이 좋은 성과를 냈다.

삶의 무게는 틈만나면 어깨 위를 짓누른다. 김필은 생계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야 했다.

“서울 삼청동 재즈스토리에서 수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음악 밖에 없었고….”

1주일에 3~4차례씩, 한번에 5만원을 받고 3시간씩 쉼없이 노래를 불렀다. 취객의 비위를 맞추는 일도 마다할 수가 없다.

김필은 당시를 두고 “팍팍했지만 또 얻은 것도 동시에 많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올드팝 등 레퍼토리를 수백개씩 쌓기도, 각종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노래를 불러보기도 하는, 열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무렵 고 김광석의 음악은 유독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좋은 재목임을 알고 번번이 기회가 주어졌지만, 막상 잡으려하면 스러지는 신기루 같았다고 한다. 2011년 로엔의 ‘싱어송라이터발굴프로그램’에 뽑히고 음반을 냈지만, 또 어렵게 모은 돈으로 ‘삐에로 레코드’라는 레이블도 차렸지만 여전히 무명가수를 벗어날 수 없었다.

▲슈퍼스타

“그만 둘까했죠. 꿈은 소박했는데…. 그저 음악하고, 몇몇에게라도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거든요. ‘정말 이게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슈퍼스타K6에 도전했습니다.”

예선 때를 그는 생생히 기억한다. 아무런 피드백이 없어 발길을 돌렸던 그에게 본선에 진출했다는 전갈이 왔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할 때 박수갈채가 나온 것을 두고 김필은 “설움을 한꺼번에 씻어내는 순간이었다”며 “새벽에 잠을 못 이룰 만큼, 이걸로 충분하다 할 만큼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우승과 상금 욕심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는 “가지려고 하면 더 못가졌던 나였다”며 가슴을 쓰다듬는다. 김필은 “희한하게 돈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았다”며 “그저 오래토록 해온 음악을 이제는 인정받고 싶다는 그 마음만이 간절했다”고 부연했다.

변화는 컸다.

“경연을 할 때에는 잘 몰랐는데, 그 이후에 밀려드는 반응을 보고 ‘뭔가 사고가 났구나’ 싶었죠. 한참 뒤 노래방엘 갔는데 기계안에 제 이름이 있더군요.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화려한 조명이 집중되면서, 내내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팔에 굵직한 문신도 하나 그려넣었다. 무명때의 레이블 이름 ‘삐레로’를 몸에 새기고 틈틈이 그때를 떠올린다.

▲ 그리고 김필

최근 들고 나온 음반은 그의 자작곡으로 가득하다. 귀를 사로잡는 모던포크송 ‘스테이 위드 미’에 대해 김필은 “스파크가 튀기 직전의 사랑 이야기”라며 “소심한 남자가 사랑 앞에서 대담하게 대시하며 변화해가는 모습을 담았다”고 묘사했다. 또 다른 수록곡 ‘피에로’에 대해서는 “가수로서의 삶에 대한 노래”라고 덧붙였다. 수록곡 ‘플라이 투 유어 드림’의 경우 취업 등 많은 상념으로 힘겨워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가다.

외조부인 김인배 작곡가로부터 물려받은 피는 확실히 달랐다. 곡을 매만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할아버지께서 TV를 보면서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우시기도 하셨고요. 예전에는 제 음악을 듣고 지적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잘 안하세요.(웃음)”

외조부가 쓴 가요 명곡 ‘빨간 구두 아가씨’ 등에도 꼭 도전하고 싶다. 김필은 “제 이름이 더 커지면 그때 할아버지의 노래를 가져오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를 빚어내는 실력에, 쉬이 따라 잡을 수 없는 목소리까지 겸한 그는 ‘탐나는’ 가수다.

김필은 4~5곳의 기획사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잠시간의 시간을 두려고 한다. 올 하반기 군입대도 계획돼있다. 김필은 “슈퍼스타K 직후의 제가 아니라, 군복무를 다녀온 뒤에도 제 음악을 좋게 봐주시는 회사가 있다면 그때 고민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필은 “꿈에 대한 결핍 상태로 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며 “더 성장한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kan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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