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 추모사]홀로 '금기'를 깬 당당한 그 목소리..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류동민 |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2015. 8. 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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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1월, 물고문 당하던 대학생 박종철은 스물둘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산주의’의 원전으로 치부되어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던 ‘자본론 박사’라는 김수행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바로 그해 봄 경제학과 대학원 강의실에서였다. 이미 어느 대학에서 해직당한 그 시간강사는 카랑카랑한 경상도 악센트로 “자본주의”와 “착취”를 논했다. 스무 살도 더 어린 학생들이 맞담배를 피워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대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열띤 강의실, 그렇게 한국의 마르크스 르네상스는 시작되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이미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내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일 수밖에 없다. 굳이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세대건 시대정신이건 그 무엇이라 부르건 간에 특정한 시기, 특정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채 형성되는 사회적 개인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맺는 관계의 총체이리라. 그러하다면, 민주화운동세력, 혹은 진보라는, 모호하지만 적어도 한때는 명확해 보였던 ‘우리 편’에 심정적으로나마 서 있던 모두에게 <자본론>으로 상징되는 금단의 열매는 그 관계의 중요한 축 중의 하나였다. 바로 그 뒤에 김수행 선생이 계셨다.

<자본론>이 익명으로 번역되고 출판사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던, 그러나 정작 서울대학교 도서관에는 식민지시대 일본이 사들인 독일어 원전이 잠자고 있던 야만의 시대는 1991년 ‘김수행 번역본’ 완간과 더불어 겨우 끝났다. 학문사상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임을 깨닫고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주의자, 심지어는 보수주의자들이 혹여 아직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기억해야만 할 사건이었다.

1964년 55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는 미국 유일의 정교수였다는 폴 배런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데올로기적 텃세가 유독 심한 경제학 분야에서 그가 명문 스탠퍼드대학의 정교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자들로 둘러싸인 교수진 내에서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산다는 것은 더 놀라울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외람되나 늘 단순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인 자세를 견지하시던 김수행 선생의 학자로서의 삶 또한 배런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심지어는 학내민주화나 사회민주화를 외치는 거리 곳곳에서 일인시위까지 불사하던 백발 노교수의 그 경지를 부끄럽게도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끝까지 피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개인적 인연을 더듬고야 만다. 대학원생으로서는 유례가 없을 수업거부와 시위, 학과 교수와의 토론회 등을 거치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교수를 영입하라고 외치는 대열에 참가한 것은 1988년 봄의 일이었다. 마침내 1989년 1학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최초의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수행 선생이 부임하셨고, 나는 그 밑에서 6년 반 동안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받았다. 이른 아침 앞뒤 설명 없이 “당신, 지금 우리 집으로 와”라는 전화 한 통에 달려가, 밥상을 펴고 나란히 앉아 박사논문 초고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수정받기도 했다. “당신, 글을 왜 그렇게 어렵고 모호하게 써?”라는 핀잔만 받던 내가 지난 봄 성공회대학교 콜로키움에서 토마 피케티에 관해 발표한 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좋은데”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마지막으로 뵌 모습이었다.

제자로서 슬퍼하는 개인적 소회야 굳이 지면을 축낼 가치도 없는 일이거니와, 사회적 존재로서의 김수행 선생이 상징하는 가치들, 그것들이 이 어이없는 ‘데자뷰’의 시대에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류동민 |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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