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문가 20명이 꼽은 '20세기 한국미술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공간과 인물'

한윤정 선임기자 2015. 8. 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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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국립현대'·전시는 '광주비엔날레' 1위에 올라인물은 이경성 전 관장 1위, 홍라희 관장·박명자 대표 공동 2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전시공간 역사전'.. 사료 250여점 전시

20세기 한국미술 전시공간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곳은 미술관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화랑으로는 현대화랑과 국제갤러리(공동), 대안공간으로는 대안공간 루프가 꼽혔다. 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위였고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박명자 현대화랑 대표가 나란히 2위를 차지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는 광주비엔날레 1·2회(1995·1997)에 이어 현실과발언 창립전(1980), 민중미술 15년전(1994) 순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서울 홍지동)이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전을 준비하면서 미술평론가 윤범모·최열·하계훈씨, 미술사학자 송미숙·김현숙·조은정씨, 전시기획자 박천남·김찬동·김노암씨, 강수미(동덕여대)·김미진(홍익대)·양정무(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미술 전문가 20명에게 설문조사한 내용이다.

근대 미술관의 효시인 이왕가미술관은 1933년 덕수궁 석조전에 들어섰다가 1939년 신축된 서관(왼쪽)으로 옮겨졌다. 1941년 펴낸 <이왕가미술관요람> 표지에 실린 전경 사진.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1900~1999년의 시기를 중심으로 한 조사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20명 중 19명으로부터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기관으로 뽑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33년 일본 근대미술 전시를 위해 덕수궁 석조전에 들어선 이왕가미술관이 시작으로, 1946년 덕수궁미술관으로 바뀌었다가 1968년 국립박물관에 흡수통합되는 과정을 거쳐 1969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독립했다.

우수한 컬렉션(15표)이 높이 평가된 삼성미술관 리움은 고미술 위주의 호암미술관(1982)으로 출발해 리움(2004)으로 흡수통합되었다.

영향력 있는 화랑은 현대화랑과 국제갤러리(각 16표)가 나란히 꼽혔다. 한국 최초의 화랑은 김규진이 화랑과 표구점을 겸해 1913년 개점한 고금서화관이며 오봉빈의 조선미술관(1929), 미쓰코시백화점 화랑(1930), 주한 외국인 부인들이 주도한 반도화랑(1956) 등이 있었으나 모두 명맥이 끊겼다. 이후 1970년 현대화랑과 명동화랑이 나란히 문을 열었다가 현대화랑만 남았다. 반도화랑 점원으로 일하다 현대화랑을 설립한 박명자 대표는 현대미술의 주요 전시를 열고 작가들을 후원함으로써 화랑 순위와 인물 순위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1982년 문을 연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는 해외미술 소개, 한국미술 해외소개 등 국제적 영향력으로 공동 1위에 올랐다.

전시공간 가운데 대안공간의 경우 IMF 관리체제 이후인 1999년 등장했다. 초기에 생긴 대안공간 루프, 아트스페이스 풀,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 새로운 미술담론을 주도, 실험적 예술의 플랫폼 기능 등으로 1~3위를 차지했으며 2000년 이후 생긴 인사미술공간, 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 눈이 차례로 꼽혔다.

주목할 만한 전시는 최초의 국제미술전인 광주비엔날레(1995), 그리고 한국미술계가 해외 현대미술에 눈을 돌린 계기로 평가되는 휘트니비엔날레 서울전(1993) 등 비엔날레의 영향력이 컸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휘트니비엔날레를 국내에 소개하고,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과 함께 광주비엔날레 창설을 주도했다. 미술계의 세계화가 한창이던 1992~1997년에 주요 전시가 몰려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가운데 이경성,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을 체계화, 전문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문호 명동화랑 설립자는 화랑 폐점과 상관없이 존경받는 화상으로 남아 있다. 상업성보다 실험성을 강조한 그는 권진규(조각), 박서보(서양화)를 후원했으며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작가들의 생활비와 제작비를 댔다. 또 1974년 ‘현대미술’이란 잡지를 내고 1976년 한국화랑협회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지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료집 <한국미술 전시공간의 역사>를 발간하고, 주요 사료를 10월24일까지 전시한다. 경복궁에서 열린 시정5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 신축설계도(1915), 덕수궁 석조전 신관 입면도(1936), 이왕가미술관 요람(1941), 국립박물관 관보 제1호(1947), 국립박물관이 주최한 제1회 현대미술작가전 포스터(1953) 등 250여점이 선보였다.

<한윤정 선임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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