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목걸이도 금으로.. '황금의 나라' 신라

임아영 기자 2015. 8. 2.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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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개관 70주년 맞아 '신라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

중세 이슬람 지리학자인 알 이드리시(1099~1166)는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일명 로제르의 서)>에서 신라의 황금 문화를 언급했다.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 일본의 고대역사서 <일본서기>는 “눈부신 금은 채색이 신라에 많다”고 적고 있다. 신라는 흔히 ‘황금의 나라’로 불린다. 화려한 장식의 금관은 물론 허리띠·귀고리·목걸이 팔찌·신발·그릇 등 온갖 금, 금동제 유물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특히 마립간 시기(4세기 중반~6세기 초반)의 황금 유물은 고구려, 백제를 압도하는 것은 물론 같은 시기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이 출토된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 70주년을 맞아 신라가 왜 황금의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을 열고 있다.

금관총 금관(5세기, 높이 27.7㎝)
보문동합장분 금귀걸이(6세기, 8.8㎝)

지난해 2월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20여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을 3배 이상으로 확대한 귀국전시로 국보·보물 22건 30점을 포함해 모두 64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신라가 ‘황금의 나라’로 부각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제강점기였다. 1921년 금관총에서 국내 최초의 금관을 비롯해 황금 유물들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전시장은 그동안의 발굴, 학술적 연구성과를 정리해 신라 문화를 큰 틀에서 조망하도록 한다. 즉 신라의 ‘황금문화’를 비롯해 당시 사회상 등을 알 수 있는 ‘능묘’, ‘대외교류’, ‘왕경’, 불교문화 차원에서의 ‘불국토’ 등 5부로 구성됐다.

신라 연구는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능묘 발굴이 시작되면서 1970년대에 전환기를 맞는다. 삼국 통일을 이룬 신라를 정통으로 보는 민족사관을 바탕으로 경주가 집중 조명됐고, 1973년부터 경주고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천마총, 황남대총을 비롯한 경주 시내 대형 고분들이 발굴됐다. 1975년엔 국립경주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천마총, 황남대총 등 신라능묘의 다양한 유물들을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발굴 성과가 쌓이면서 마립간 시기의 각종 금제품, 당시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의 연원을 북방 초원지대로 보는 설이 제기됐다. 또 구법승이 당나라부터 중앙아시아, 인도까지 오갔던 통일 신라의 국제 교류에 대해서도 눈뜨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계림로 14호묘 보검’, 황남대총의 ‘봉수형 유리병’ 등 이국적인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의 대외 문화교류를 보여준다. 경주 지역 발굴은 대형 고분발굴에 이어 왕경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유적 조사로 이어진다. 안압지, 황룡사 터 등이 조사되면서 왕경의 구조, 특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됐다. 현재 경주는 왕궁이 있던 월성 등이 발굴 중으로 아직 신라 왕경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전시는 11월1일까지.

계림로 보검(길이 36㎝)
황남대총 봉수형 유리병(5세기, 높이 24.7㎝)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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