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무원 문턱에서 탈락, '일게이' 청년은 왜 그랬을까

하지율 입력 2015.08.02.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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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 탐구생활⑥] 로고 퍼뜨리기에 열광하는 일베, 이면엔 인정욕구가

[오마이뉴스 하지율 기자]

[장면①]사회초년생 '일게이'의 좌절된 꿈

"아침일찍 인나서 혼자 연평해전 보고왔다 … X대중이 개X끼라는걸 뼈저리게 느낌 엔딩크레딧 올라갈때까지 짠하드라.. X선비 김치X들 이거보고 노란리본 헛짓거리 그만하고 우리나라 안보에 조금이라도 관심가졌으면 좋겠당"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아래 일베)'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이 글의 작성자 A씨는 자신이 소방공무원 채용후보자임을 인증하는 사진을 일베에 함께 올렸고, 충청남도에는 A씨가 임용될 만한 자질이 없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A씨는 뒤늦게 논란을 수습하려고, 소방공무원 카페에 사과글을 올렸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충남소방본부에 직접 임용포기 의사를 밝혔고, 울면서 짐을 싸 충청소방학교를 자진 퇴교했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때늦은 교훈과 함께.

 이 사진에는 가려졌지만, A씨는 자신의 소방공무원 채용후보자 등록번호를 가리지 않아 신원이 들통나게 됐다.
ⓒ 일베 갈무리
[장면②]'일베'로고 때문에 출판한 책 전량회수

축구 칼럼니스트 이성모씨와 출판사 브레인스토어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씨가 집필하고 브레인스토어가 출판한 <누구보다 맨유 전문가가 되고 싶다>에 '일베' 로고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표지 디자인을 하면서 축구클럽 맨유의 공식 로고를 반영했는데, 알고보니 일베에서 교묘하게 공식 로고처럼 조작한 로고였던 것이다.

해당 로고는 삼지창 손잡이를 'ㅇ'으로, 창날 부분을 'ㅂ'으로 조작된 상태였다(일베를 상징하는 'ㅇㅂ'). 브레인스토어는 서점에 유통된 책들을 전량 회수하고, 이미 구입한 책도 새로 교환해 주기로 했다.

이런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일베 로고 검사'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일베에게 대학부터 지자체까지, 로고 산업화(?)의 성역은 없다. 또 이미지가 구글 검색에 잘 노출되도록 서로 댓글에 연관 검색어를 입력해주는 '화력 지원'도 이뤄진다.

왜 이렇게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일베 로고 퍼뜨리기에 집착할까? 한 일베 유저는 "일베는 싫지만 일베 자료는 좋다며 출처 안 밝히는 놈들 때문에 생겨난 놀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맨유가 대중에게 공개한 공식 로고의 출처와 저작권은 엄연히 일베와 무관하다.

 일반적인 맨유로고의 삼지창 손잡이 부분에 'ㅇ'을, 창날 부분에 'ㅂ'을 교묘하게 합성한 일베로고. 'ㅇㅂ'은 '일베'를 뜻한다.
ⓒ 레사모 갈무리
일베의 '인정 받고 싶은' 욕망

이는 "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신들의 정체성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투쟁에 가깝다.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국가안보에 관심도 없는" 진보좌파 등에 원색적 혐오를 표출하다가, 느닷없이 자신의 '소방공무원 후보증'을 인증한다든지, 자신들과 상관도 없는 축구클럽 로고에 기어이 일베적 요소를 심어 퍼뜨린 후, "산업화"시켰다고 낄낄 댄다든지. 이 종잡을 수 없는 행위 배후에는,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설명이 덧붙지 않는 한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베는 대중에게는 '일베충'으로 찍혔고, 놀아주는 애들은 비슷한 처지의 뒷골목 '일게이(일간베스트 게시판 이용자의 준말)'들뿐이다. '벌레'의 일상적 뉘앙스에 이미 ① 기대하지 않은 맥락에서 등장해 ②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듯, 일베는 공동체의 인간적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만한 최소한의 자격도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외부를 향해 필사적으로 관심을 끌거나, 자기들끼리라도 맥락 없는 인증놀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비판이론) 3세대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 사월의책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인간이 동등한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받는 데서 오는 "도덕적 울분"에서 사회적 갈등이 시작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울분은 인정받고자 하는 정치적 투쟁 즉, '인정투쟁'의 계기가 되면서, 때로는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다고도 설명한다. 이 때 사람들은 낡은 인정질서(사회질서)를 새 인정질서로 개선시킨다.
인정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일베가 남을 무시하기 때문에, 자신도 무시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길 자초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뒷골목에 구축한 문화코드는 '혐오'다. 그런데 그것이 혐오인 한, 일베를 인정해주면 일베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존엄성을 부정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이 점이 이들이 무언가 왜곡된 의식흐름을 가진 존재라는 분석이 제시되는 이유다(관련 기사:이제는 돌아와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결국 일베는 혐오의 주체이자 대상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다. 타인의 '인격'을 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인격도 추락 시키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악순환을 끊을까. 좋은 진단과 처방을 위해서는 과거 '병력'부터 조사해야 한다.

우선 일베는 디시인사이드(아래 디시) 일각의 문화들을 흡수하면서 탄생했다. 당시 디시는 관심병, 병맛, 막장, 지역차별, 성 피해의식, 우경화 경향 등. 다분히 일베의 싹을 품은 게시판들이 있었다. 각 게시판 관리자들은 수시로 문제 소지가 있는 글들을 삭제했고, 디시 유저들은 삭제 당하기 전에 이것들을 '모아놓을' 저장소가 필요했다.

이때 등장한 게 바로 일베다. 문제는 일베가 점점 인기를 끌며 디시 서버에 과부하를 줬고, 관리자는 자제를 요청했다. 이때 일베의 '역사적이면서도 결정적인 방향전환'이 감행되면서, 독자적으로 서버를 확장하고 유저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이용지침이 바뀌게 된다.

이는 사건이었다. 일베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일베의 사상> 박가분은 "쓰레기 저장소에서 말하는 데이터베이스"가 됐다고도 평한다. 그런데 무언가 새로운 걸 생산하려면, 우선 밑천이 있어야 한다. 그 밑천이 디시 조상님들에게 물려받은 '똥'이었으니, 지금 일베의 모습이 납득이 가는 셈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서울 광화문에서 세월호특별법 반대와 종북척결을 주장하며 '일베인증' 손 제스쳐(손가락으로 'ㅇㅂ'를 그린다)를 취했던 일베 청년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두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진보좌파는 '노오력'도 안 하면서 떼나 쓰는 놈들이 되고, 참사는 '별 것 아닌' 교통사고로 평범화 된다. 이때 배·보상금 등 숫자의 문제로 단순화시켜 '세월호 vs. 천안함'하는 식의 이중잣대 프레임을 씌우고, 무임승차 딱지를 발부하는 건 필수다. 종북/불법을 운운하며 폭력을 정당화 하는 건 그 뒤의 일이다.
ⓒ 이희훈
일베는 10대 중반~30대 중반 연령층이 두텁다. 20대 초반이 가장 전위적이고, 새롭게 유입되는 10대 중후반도 만만치 않다. 30대 무렵부터는 사회진출을 하면서 점점 빠져나간다. 일베 급부상 기점인 2012년 대선 당시,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용 연령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대선 직전에는 21~25세(35%), 16~20세(22%), 26~35세(19%) 순으로 나타났고, 직후에도 22~27세(37%), 16~21세(36%), 28~33세(12%) 순으로 나타났다.

이후 5.18 택배사건, 세월호 폭식투쟁 사건, 단원고 어묵조롱 사건, 콘서트 폭탄테러 등등... 일베발 사회적 물의마다 일베 청년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들이 주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졌다. 우리는 '디시-일베'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앞에, 하나의 연결고리를 더 추가할 수 있다. 바로 '패러디/엽기-디시-일베'다.

2000년대 초반 디시를 급부상시킨 동력은 '패러디 갤러리'와 '엽기 갤러리'였다. 물론 이는 디시뿐 아니라 당시 젊은 세대의 유행 코드이기도 하다. 당시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인터넷 환경에 친숙해 하면서 패러디물과 엽기물을 즐겼는데, 이중 일부가 디시로 유입되면서 이를 점점 자기들 식으로 재생산한 것이다.

사실 패러디와 엽기물은 체제 저항적 기질에서 시작됐다. '꼰대스러운' 기성권력들을 뒤틀고 자신들과 구별짓는 전략인 셈인데, 세계적으로도 변혁 시기마다 유사한 현상이 관찰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면서 창조적 파괴를 감행하는 게 젊은 세대의 경향이고, 당시 한국 젊은이들의 시대적 사명은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 잔존 세력들의 청산과 민주사회 구현이었다.

'조중동 트리오'로 대표되는 기성 이데올로그를 향한 딴지로 출발한 <딴지일보>는 패러디의 큰 형님이다. "한국농담을 능가하며 B급 오락영화 수준을 지향하는 초절정 하이코메디 씨니컬 패러디 황색 사이비 싸이버 루머 저널"이라는 소개부터가, 당시로서는 주류적 상식을 전복하는 발상이었다. 이후 패러디가 젊은층 사이에 유행했고, 자주 기성권력을 향한 '똥침' 날리기가 자행(?)됐다.

 엽기토끼 <마시마로> 플래쉬 영상 스틸컷.
ⓒ 김재인
엽기는 약발이 더 세다. 섹스·똥·토사물 등 금기시 됐던 소재로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육체적 욕망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왜 육체일까? 이유는 기성권력들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규정한 '이념적'인 것의 가장 대척점에 '육체적'인 게 서있기 때문이다. 물론 엽기가 끈적한 것만은 아니다. 가령 <마시마로>에서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방아 찧는 토끼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막힌 변기뚫기로 변주하는 엽기토끼의 기발함은 발랄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결국 패러디와 엽기란, 기성 이념을 저열한 층위로 추락시켜 통쾌함을 획득하는 전략이었다. 일상에서 암기식 교육과 획일화된 사고를 강요받던 젊은 층이, '무대 뒤편' 인터넷에서는 창조적 파괴를 암약한 셈이다. 이 시기에 유달리 심리테스트 같은 게 유행했던 사실도 참조하면, 이들이 얼마나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얻고 싶어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더 빠져들게 마련인 게 사춘기적 심리고, 엽기의 약발이 센 만큼 중독성도 강하다. 패러디와 엽기가 주는 쾌감이 절반은 사회비판에서, 절반은 소재 자체에서 온다. 그런 만큼 도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 당하면서 마구 휘둘러댈 위험도 있다.

'디시-일베'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는 '개드립'과 우경화는 그 통제 상실의 역사적 결과다. 기존 유저들은 선정적인 소재 자체에만 집착하게 되고, 애초에 도구가 지녔던 사회비판적 기능을 잘 모르는 '꼬꼬마'와 '뉴비'들이 점점 유입되면서 이 경향이 강화되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니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함께 기성권력에 대들던 이들이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누구는 일베 청년이 됐고, 누구는 이렇게 그들을 분석하고 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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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증여의 논리>(이길호 / 문화인류학회 / 2011)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김학준 / 서울대 학위논문(석사) / 2014)
<일베의 사상>(박가분 / 오월의 봄 / 2012)
<엽기 문화에 관한 고찰>(저자 및 저작년 미상 / http://goo.gl/I9fMb2)
<표현의 자유 자체의 인정윤리적 의미와 일베 사례응용>(하지율 / 중앙대 철학과 응용윤리학 소논문 / 2015)
<20대의 정체성: 살림지식 총서 235>(정성호 / 살림출판사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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