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올린 재난망..단말기 부실 규격에 혈세낭비 우려

강미선 기자 입력 2015. 7. 31. 09:16 수정 2015. 7. 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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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기 사전규격 공고..방수방진, 충격 등 내구성 기준 취약 "현장 목소리 반영 안돼"

[머니투데이 강미선 기자] [단말기 사전규격 공고…방수방진, 충격 등 내구성 기준 취약 "현장 목소리 반영 안돼"]

국가재난안전통신망(이하 재난망) 시범사업을 위한 사전규격이 공개된 가운데 재난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부실 단말기가 공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느슨한 기준 탓에 예산만 낭비한 채 재난망 단말기가 제구실을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이번에 공지된 사전규격공고는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규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1일 IT(정보통신) 업계와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4일 조달청을 통해 재난망 구축사업 제안요청서(RFP)와 사전규격을 공개했다.

이번에 실시하는 구축사업은 본 사업에 앞서 PS(공공안전)-LTE 방식의 재난망 기술 검증을 위한 시범 사업. 시범 사업은 강원도 평창 지역과 정선·강릉 등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지역에서 실시된다. 총 사업비 1조원 가운데 약 430억원이 시범사업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시범사업에 쓰일 단말기는 휴대용 2496대로 무전기 타입과 스마트폰 타입 두 종류다.

무전기형은 화면 액정 아래 키패드가 있어 화면 크기가 2.2인치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 스마트폰 화면(4.8~5.1인치) 크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UI(사용자 인터페이스), UX(사용자 환경)가 영상 추적·조회 등 음성과 영상통화를 동시에 구현하는 멀티미디어 성능에 한계가 크다.

당초 재난망에 PS-LTE기술을 도입한 것은 멀티미디어 성능을 적극 활용해 재난시 효율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 이 때문에 재난망 사업을 위한 공청회 등에서 무전기형 타입의 효용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시범사업일 뿐"이라며 단말기 유형 및 기준 조정은 본사업에서도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범사업에도 막대한 예산이 든다"며 "무전기타입에서도 영상통화 기능을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를 시범 사업에서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망 단말기의 내구성, 충격 기준도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마트폰 타입의 경우, 방수·방진 기준이 일반 스마트폰 기준인 IP55 등급(먼지보호, 물분사 보호)으로 제시됐다. 낙하시험(충격 관련) 규격도 없다.

통상 해외 국가 재난망 단말기에 IP67 등급(수심 1m에서 30분간 견딜 수 있는 수준), 충격 기준은 미국 군사규격(MIL810) 이상 등으로 내구성을 위한 최소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공청회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재난 현장에서 쓰이는 만큼 단말기 내구성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해왔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시범사업이라 할지라도 한번 공급되면 기본 내구연한이 7년은 보장돼야 하지만 IP55 규격 단말기로는 7년 보장이 어렵다.

이 때문에 최근 서울 경찰청도 노후 단말기를 전량 IP67단말기로 교체하는 등 재난현장에서 단말기를 사용할 수요자들은 IP67이상의 단말기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관계자는 "단말기 사용 중 내구성 문제로 깨지거나 고장 날 경우 잦은 단말기 교체로 이삼중의 혈세가 낭비돼 그 자체가 재난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사양의 재난망 단말기를 정부가 추진하면서 중소기업 육성 취지를 살릴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세계 최초로 PS-LTE 방식 재난망을 구축하면서 국내 중소기업이 성능 좋은 재난망 단말기를 개발해 해외수출 길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무전기 타입의 경우 중국산 밖에 없어 중국산 단말기가 국산으로 둔갑해 공급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양이어서 그동안 국내업체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규격 공고에서는 단말기 부분을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완제품이라고 명시했다. 한 중소 단말기 업체 관계자는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 및 조립돼 들어오는 완제품을 국내 기업이 브랜드만 바꿔 유통마진을 챙기면서 국내 제품으로 둔갑시켜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것도 국내 제품으로 볼 수 있는지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처는 이번 사전규격 공개 후 10일간의 의견 수렴을 거쳐 8월중 정식 발주를 시작할 계획이다. 재난망 시범 사업은 당초 올해 3~4월경에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에 대한 검증 작업을 거치면서 지연됐다. 시범 사업 기간은 총 180일로 8월에 시작해 내달 2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강미선 기자 riv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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