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슬램, 안 해본 사람은 그 기분 모를 거야
미국 밴드 테스터먼트. 사실 이렇게 생긴 형들이 착한 거다.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제공 |
내게도 비정한 이분법 하나쯤 있다. ‘슬램(slam·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음악을 즐기는 것)을 해본 사람, 안 해본 사람.’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슬램은 내가 아는 가장 건전한 폭력이다. 격렬한 음악에 맞춰 낯선 사람의 몸뚱이와 내 것을 부딪치면서 나를 실감하는 것. 부닥치러 갈 때의 짜릿한 두려움, 부딪칠 때 터져 나오는 아드레날린. 공기를 메우고 출렁이는 거대한 음파 속을 표류하면서 날 둘러싼 초면들과 ‘지금 이 기분, 너도 알지?’ 눈빛을 교환하는 것. 넘어졌지만 (역시 낯선) 서너 명의 우호적인 손길에 이끌려 툭 털고 일어설 때의 동료의식. 헤드뱅잉이 외로운 사색이라면 슬램은 치열한 토론. 이건 거의 평화의 싸움박질.
독백에 익숙해 있던 난 2007년에야 처음 그 토론을 경험했다. 그해 여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섭씨 30도쯤 되던 땡볕 아래. 메인 무대 앞쪽에서 이미 관객 50여 명이 땀범벅이 돼 크래쉬의 음악에 맞춰 서클 핏(circle pit·슬램을 위해 관객이 즉석으로 만드는 원형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어 미국 메탈 밴드 테스터먼트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절정. 이거다 싶었다. 첩보영화 속 비밀요원처럼 난 군중을 헤치고 서클 핏에 다가갔다.
에헴. 이분법 메탈 꼰대로서 잠깐 잔소리. 어째 요즘 록 페스티벌엔 인스타그램을 위한 출연진만 가득한 것 같구나. 관객들도 멋진 장면이 나올 때 휴대전화 카메라나 머리 위로 들어올리기 바쁘고. 안산M밸리 록 페스티벌(24∼26일)이 끝나간다.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8월 7∼9일)이 남았다. 다시 슬램을 하고 싶다. 소리의 면도날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날에.
그 운명의 날. 서클 핏에 도달하자마자 난 슬램의 무아지경을 맛봤다. 10분쯤 지났을까. 급기야 뭔가에 홀린 듯 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올랐다. 아니, 체중이 족히 120kg은 나가 뵈는 미국인 덩치의 등에 올라탔다. 난 곧 관객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낮게 조율된 전기기타의 반복악절이 육중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Low’가 때마침 터져 나왔다.
SNS에 올렸냐고? 그 장면을 난 내 휴대 눈 카메라로 찍어 평생 지워지지 않는 뇌 디스크에 업로드해 뒀다. 순간의 파란 하늘. 그 위를 걷는 나의 두 발.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고인 뜻 상관없이 그 형제자매에 상속 보장은 위헌”
- 영수회담 2차 준비회동, 결론 없이 종료…민주 “아쉬움 남아”
- 하이브 “민희진, 무속인 코치받아 경영”…민희진 “이미 마녀 프레임”
- “정치는 연결”이라던 정진석, 협치 성공할까 [용썰]
- 대통령실 “올 성장률 예상치 2.2% 넘을 듯…민간 주도의 역동적 성장”
- [단독]檢, ‘민주당 돈봉투 의혹’ 현역의원 7명 출석 통보…전원 ‘불응’
- 평소에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
- 이재명-조국, 오늘 비공개 만찬 회동
- 김재원 “한동훈, 대통령과 밥 먹었어야…감정적 반응은 여권 분열로”[중립기어]
- ‘교수 사직 디데이’ 병원 떠난 빅5교수 아직 0명…환자 불안 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