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초행길 찾기 대신 빠른길 안내 ‘通通通’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Case Study: 국민내비 ‘김기사’를 만든 벤처기업 록앤올의 성공비결

5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길 안내) 서비스 ‘국민내비 김기사’를 만든 벤처기업 록앤올이 인터넷 포털 업체 다음카카오에 626억 원에 팔렸다. 무료 서비스지만 2015년 6월 기준으로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월간 사용자 수에서 나올 수 있는 사업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다음카카오는 이례적으로 박종환김원태 공동대표, 신명진 부사장 등 3인의 창업자에게 계속 경영을 맡겼다. 박근혜 대통령도 9일 청와대 회의에서 벤처 투자 활성화 촉진책을 주문하면서 김기사를 언급했다.

부산대 대학원 동창생인 록앤올 창업자 3인의 성공 스토리는 그간 많은 언론에 소개됐지만, 김기사 앱 자체의 제품 경쟁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중소기업이 만든 김기사가 SK텔레콤 등 대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80호에서 분석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내비는 ‘길 찾기’ 아닌 ‘운전 도우미’


창업 초기 김기사 개발팀은 한국 운전자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내비게이션을 쓰는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내비를 켜는 사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용자는 ‘집-회사-집’처럼 매일 가는 길을 운전할 때도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켰다. 전체 사용 시간은 이렇게 아는 길을 갈 때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개발팀은 ‘내비게이션은 길 찾을 때 쓰는 도구’라는 고정관념을 깨자고 생각했다. 집에서 직장까지 출근하는 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길로 가야 막히지 않을까, 지금 출발하면 몇 시쯤 도착할까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개발팀은 내비게이션을 길 찾을 때만 쓰는 도구가 아니라 운전할 때 항상 켜 두는 교통 안내 도우미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길 찾기 기능은 기본으로 갖추되, 여러 경로를 제시해 주고 각각의 소요 시간을 예측해서 운전자에게 보여 줬다. 교통량 변화에 따라 실시간으로 길 안내를 변경해 주는 기능도 넣었다.

또 매일 똑같은 목적지를 오가는 사람들이 화면 터치 두세 번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는 ‘즐겨찾기’ 기능을 강화했다. 국내외 사례들을 조사하고 여러 가지 안을 놓고 토론한 끝에 벌집 모양의 즐겨찾기 화면을 구성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벌집 중앙에 보여 주고, 거기서부터 목적지까지의 방향과 거리에 따라 즐겨찾기에 저장된 장소들이 벌집에 채워진다. 예를 들어 현재 위치인 ‘집’이 인천이고 목적지인 ‘회사’가 서울에 있다면 ‘회사’는 벌집 화면 오른편(지도상 동쪽)에 표시된다. 그런데 사용자의 현재 위치가 경기 성남시 분당이라면 ‘회사’는 벌집 화면 위편(지도상 북쪽)에 표시된다. 화면의 내 위치를 기준으로 직관적으로, 쉽게 목적지를 터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달콤한 용역의 유혹을 뿌리치다


박 대표, 김 대표, 신 부사장 등 3명의 창업자는 1990년대 말부터 약 10년 동안 휴대전화용 지도 및 위치정보 서비스를 만드는 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이동통신 3사의 주문을 받아 납품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새로 창업한 회사에서는 백지 위에 설계도부터 다시 그렸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통신망의 성능을 최대한 살리는 애플리케이션을 마음껏 개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 부사장은 “용역을 받아 만들 때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독자적으로 만들 때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동통신사 용역을 받을 때는 하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그쪽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우리의 고객은 사용자가 아니라 이동통신사의 담당 사업부장이었다”라고 회상한다.

이동통신사의 납품을 받으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다. 홍보와 마케팅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 개선 업그레이드를 할 때마다 ‘갑’ 회사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 트렌드와 사용자들의 요구에 빨리 반응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해 독자 생존을 모색하면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인터넷 카페에 이용자들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이 올라올 때마다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할 수 있었다. 이동통신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우리에게 납품할 때보다) 왜 이렇게 성능이 좋아졌느냐’며 항의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 고속통신망에 최적화된 길 안내

김기사와 경쟁 내비게이션 앱들은 운전자들의 실시간 운행 데이터를 사용해 길을 안내한다. 예를 들어 방금 전 올림픽대로로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 구간을 지나간 사용자의 운행 데이터가 있다면 같은 구간을 지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다른 사용자들의 운행 시간 예측에 이용한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예측이 정확해진다. 다만 사용자들과 많은 양의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시스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경쟁 내비게이션 앱들은 실시간 데이터 이외에도 주요 도로의 과거 교통량 정보를 함께 분석한다. 반면 김기사는 100% 실시간 사용자 이동 데이터만 사용한다. 경쟁 앱들은 과거 이동통신망이 지금처럼 빠르고 원활하지 않던 시절의 기준에 맞춰진 반면, 김기사는 초고속 무선 통신망이 전국에 깔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다.

실제로 김기사 개발팀의 예측대로 이동통신 3G망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데이터 통신량이 문제가 되지 않았고 길 안내의 정확도는 더욱 높아졌다.

○ 뜻밖의 선물, ‘세렌디피티’ 요소 추가

인기를 끄는 인터넷, 모바일 서비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나 요구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거기에 추가해서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선물과도 같은 보너스도 준다. 이를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는 잊고 있던 친구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다. 애플의 콘텐츠 플랫폼인 아이튠스에서도 의외의 콘텐츠나 앱을 찾을 수 있다.

김기사도 이런 세렌디피티 요소를 갖췄다. 운전자들은 자신이 저장해 놓은 벌집 모양의 즐겨찾기 지도를 남과 공유할 수 있다. 그러자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서울 최강 인산인해 맛집’ ‘나들이하기 좋은 가로수길’ 등의 벌집 지도를 올렸다. ‘이 근방의 새로운 맛집은 어디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타인의 벌집지도를 들여다보는 사용자가 늘어났다. 수천 명씩 내려받는 인기 벌집지도들이 생겨났고 입소문 덕에 가입자가 계속 늘어났으며 고객 충성도도 높아졌다.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il.im@yonsei.ac.kr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