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인, 서울서 김서방 찾기
“My friend(내 친구)…, Home(집)…, Art center(예술회관).”
지난달 17일 밤 11시, 푸른 눈의 노신사가 다급한 표정으로 서울 서초파출소를 찾았다. 그는 영어 단어 몇 개를 반복하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 친구의 집이 예술의전당 인근에 있는데, 어디인지 찾아달라”는 의미였다. 그는 이날 저녁 한국인 친구와 지하철을 탔다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는데, 친구는 즉시 내렸으나 자신은 못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가 기억하는 장소는 전날 묵은 친구의 집밖에 없었다.
신고를 접한 서초파출소는 미국대사관에 알리고, 그가 말하는 ‘친구의 집’에 대한 단서를 모아보기로 했다. 예술의전당과 고급외제차 판매점, 고속도로 진·출입구 인근이라는 것 정도였다. 사건을 맡은 정덕위 경위는 통역과 함께 새벽 3시까지 조사했지만 찾지 못했다. 정 경위는 이튿날 오전 5시부터 다시 노신사와 거리에 나섰다. 이른 아침이라 통역관을 대동하기 힘들어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했다. 두 사람은 예술의전당 부근을 세 바퀴 돌았고 벤츠, BMW 등 인근의 외제차 매장 근처 주택을 샅샅이 뒤졌다.
벽안의 신사를 위한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는 이어졌다. 지쳐갈 때쯤 그는 한 주택을 발견하고 “OK”를 외쳤다. 반지하로 돼 있는 사무실 겸 주택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그가 놓쳐버렸다는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 ‘프리랜서 통역가’인 한국인 친구는 경찰에게 그가 유명한 헨리 그루버 목사(72)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목사’로 알려져 있었다.
정 경위는 “노신사가 유명 목사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친구 집을 찾았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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