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어디로]무료급식소 수백명 '장사진'.. "이곳이 유럽 맞나" 탄식

아테네 | 정유진 기자 2015. 7. 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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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실이 돼버린 빈곤

▲ 음식 봉지 받아 시청 마당서 허기 채워… 쓰레기통 뒤지기도 시청 직원, 취재진에 “사진 찍지말라… 공격 위험성” 경고

2일 오전 11시(현지시간) 아테네 시청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들은 시계를 계속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한편 굳게 닫힌 쇠창살 문 사이로 내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낮 12시부터 나눠주는 무료급식을 받기 위한 안타까운 기다림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2일 오전 시청 앞에서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아테네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순서를 기다리는 크리스티나(40)는 3년 동안 실업 상태다. 그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전에 하던 식당일을 그만둬야 했다”며 “청소부라도 하려고 신문에 광고를 냈는데 이상한 남자들에게만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서 무료급식을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곳이 어떻게 유럽이라고 생각하겠느냐”며 “그리스는 더 이상 유럽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티나는 지금 노숙 중이다. 점심은 급식소에서 해결하지만 아침과 저녁은 굶을 때도 많다. 그가 입고 있는 바지는 무척 헐렁했다. 그는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이 빠졌기 때문”이라며 “최근 긴축이 심화되면서 무료급식소에 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남성(67)도 “5년 전에 해고된 뒤 이곳에 계속 오고 있다”면서 “집도 없고 소득도 없어서 친구 집에서 빌붙어 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취재하는 모습을 본 시청 직원이 갑자기 취재를 막아섰다. 그는 “말도 걸지 말고 사진도 찍지 말라”며 “기자들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이대면 공격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낮 12시가 돼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좁은 통로에 두 줄로 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노숙인처럼 지저분한 사람도 있었고 깔끔하게 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줄잡아 수백명은 돼 보였다. 이들은 음식이 든 봉지를 받아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부는 시청 마당에서 허기를 채웠다. 지난 2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돈이 없어 무료급식을 먹는 사람들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공한 자영업자였다”고 유로옵서버가 전한 상황 그대로였다.

전날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서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음식물을 꺼내먹는 사람도 있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이나 무료급식을 먹는 사람이나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였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가난 등으로 인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80만명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 노숙인 공동 숙소를 찾은 사람은 하루 300명꼴에 이른다. 실업자가 늘고 전기도 끊겼다. 교통비도 부담이 됐다. 결국 적잖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노숙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백신 접종도 줄었다. 이전에는 정부가 무료접종을 해줬지만 지금은 비용을 내야 한다. 모두 유로존이 요구한 긴축안 탓에 그리스 정부가 과도하게 허리띠를 졸라맨 부작용이었다.

<아테네 |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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