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그리스를 가다 - 특파원 2신]그리스, 4년간 연금 40% 삭감.. "과잉 복지는 헛말"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은 연금이었다. 국내 일각에서도 이번 구제금융 협상 결렬의 원인이 마치 그리스 연금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인 것처럼 묘사된다. 과연 그리스의 국가부도가 포퓰리즘 때문에 ‘과잉복지’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도박’ 때문일까.
수도 아테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신타그마 광장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벤치나 난간 곳곳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중 한 명인 퇴역 장성 니코스(63)는 18세부터 군생활을 시작해 58세에 은퇴했다. 원래 그의 연금액은 은퇴 전 월급의 80% 수준인 2500유로(약 311만원)였다.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가 매달 급여의 4.5%를 떼가면서도 은퇴 후 소득의 46%밖에 돌려주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면 많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옛날 얘기다. 현재 그는 1300유로(약 162만원)의 연금만을 받고 있다. 2011년 이후 유로존의 긴축 요구로 불과 4년 만에 3차례에 걸쳐 40% 넘게 깎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리스 연금 수령자의 45%는 빈곤선인 월 665유로(약 83만원) 미만의 연금을 받고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리스 전체 가구의 절반인 49%는 주 소득원이 노인들의 연금이란 사실이다. 총실업률이 26%, 특히 청년실업률이 50%에 달하면서 그리스 전체가 심각한 실업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전체가 노인 연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연금이 그리스 사회의 가장 큰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독일 등 유로존 국가들은 이번 구제금융 협상에서 여전히 더 큰 폭의 연금 삭감을 요구했다. 그리스인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니코스와의 대화 도중 끼어든 다른 연금 수급자는 “독일인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만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받는다’고 손가락질한다”고 비판했다.
2012년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금 지출은 유럽 국가들 중 1위였다. 하지만 이는 분모인 그리스 GDP가 경제위기와 긴축정책 때문에 감소한 탓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럽 담당 기자인 매튜 달튼은 자사 블로그에 올린 기사에서 이 통계의 허점을 지적하기 위해 잠재성장률 대비 연금지출액으로 다시 산출해봤다. 그랬더니 그리스는 이탈리아에 이어 2위로 내려앉긴 했지만, 여전히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리스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20%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란 점이다. 65세 이상 노인 1인당 연금지출액으로 다시 순위를 매겨봤더니 그리스는 11위를 기록해 유럽 평균 이하로 떨어졌다.
야니스 아타나시아디스(56)는 2009년 경제위기 당시 자신이 운영했던 아파트 청소서비스 업체가 망한 후 친구들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했지만, 그 회사들이 모두 망해버리자 4년 가까이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딸마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현재 거의 유일한 소득은 경제 호황기 당시 구입한 주택을 세놓아 받는 임대료지만, 생활비는커녕 부동산세조차 못 내고 있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게으르다는 유로존의 비난에 대해 억울함을 넘어 모멸감을 표시했다.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왔는데, 노인이 되고 나니 이제 나에게는 더 나빠질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2012년 EU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40.9시간으로 독일의 35.5시간보다 훨씬 많았고, 유급 연차휴가 일수는 독일보다 훨씬 더 적었다. 그는 “그리스가 EU에 가입하는 데 성공했을 때는 EU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면서 “하지만 이제 알게 됐다. 인간을 위한 공동체인 줄 알았던 EU는 은행과 자본만을 위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아테네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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