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선글라스 낀 '멋진 언니' 가르도

2015. 6.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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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8일 일요일 맑음. 검은 안경.#164 Melody Gardot 'Morning Sun'(2015년)
[동아일보]
미국 싱어송라이터 멜로디 가르도. 늘 검은 안경을 낀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폴 매카트니부터 레이디 가가까지. 두 눈으로 본 사람 중 무대 위에서 보통 인간보다 더 커 보인 카리스마는 다수였다.

존재감이 가장 컸던 이를 꼽으라면, 톱스타는 아니지만 미국 싱어송라이터 멜로디 가르도(30)를 떠올려야 한다. 5년 전 처음 내한한 그는 고작 200∼3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 무대에 섰다. 남다른 패션 감각의 이 젊은 여성은 멋진 지팡이를 짚고 나와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기 나이보다 20∼30년은 더 묵은 것 같은, 허스키하고 관능적인 목소리로 절창했다. 컴컴한 조명 아래서도 결코 선글라스를 벗어 눈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신비로웠다.

음악인들이 선글라스를 즐겨 쓰는 덴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귀찮으니까. 이건 너무 흔한 거고. 둘째, 젊어 보이고 싶어서. 노장의 경우 눈주름만 가리면 최소 마이너스 10년의 효과는 본다. 가수 Y나 I는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기 전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10년이 늙었다.

셋째, 시각장애 때문에.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라울 미동, 다이앤 슈어…. 두 살 때 녹내장을 앓고 일곱 살 때부터 점자로 된 바이엘, 체르니 교본으로 피아노를 배운 국내 재즈 피아니스트 전영세의 선글라스도 기억난다. 넷째, 마약 복용을 숨기고 싶어서. 팽창한 동공, 충혈된 안구가 백일하에 드러나면 안 되잖나.

가르도의 이유는 그중 무엇도 아니다. 필라델피아 커뮤니티칼리지에서 패션을 전공하던 열아홉 살의 학생은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지프차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1년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다. 단기기억상실증, 지독한 만성 신경통, 빛과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된 일종의 장애가 남았다. 의사에게서 음악 치료를 권유받은 뒤부터 그는 곡을 쓰기 시작했다. 패션디자이너에서 음악가로 꿈을 바꿨다. 무대 위에서 그는 신경통을 완화할 수 있는 특수 의자를 공수해 거기 앉는다.

가르도가 최근 4집 ‘Currency of Man’으로 3년 만에 돌아왔다. 복고적인 솔과 재즈, 가스펠풍의 악곡을 관현악과 오르간을 포함한 섬세한 편곡, 묵직한 와인처럼 더 깊어진 목소리로 빚어낸 역작이다. ‘Preacherman’(QR코드)에선 1955년 백인에게 폭행당한 뒤 숨져 미시시피 강에 버려진 소년 에밋 틸의 이야기를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멋진 언니’, 가르도의 라이브를 또 한 번 보고 싶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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