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판타지아' 이와세 료 "그 남녀, 다시 만났을까요?"(인터뷰)

김수정 2015. 6. 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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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수정 기자] 찰나의 순간이 모여 일상이 되고, 다시 이 일상이 쌓여 인생이 된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모이고 쌓인 순간들을 두 번 다시 손에 쥘 수 없기 때문 아닐까.

'한여름의 판타지아'(장건재 감독, 모쿠슈라·나라국제영화제 제작)는 바로 이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생의 한 페이지를 스크린에 소박하게 담아낸 마법 같은 영화다.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1만 관객을 돌파하며 다양성 영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일본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여자의 일본남자, 그들의 신비로운 인연과 불꽃놀이처럼 번지는 마음의 파동을 그린다. 단편 '꿈속에서'(07)와 장편 '회오리 바람'(09), '잠 못 드는 밤'(12)으로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장건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칸이 사랑하는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여기에 '줄탁동시'(11),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13)에서 섬세하면서도 강단 있는 연기를 펼친 김새벽과 '팔월의 일요일들'(05), '독'(08) 등 독립영화계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력으로 인정받아 온 임형국, 일본 배우 이와세 료가 리얼한 연기로 영화의 마법 같은 순간에 힘을 보탰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흑백으로 찍은 1부는 영화 감독 태훈(임형국)과 조감독 미정(김새벽)이 고조시 공무원(이와세 료)의 안내로 마을 곳곳을 누비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담았다. 실제 고조시 주민들이 출연했다. 큰 사건 없이 조용하게 펼쳐지는 탓에 지루할 법도 한데 소박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그들의 대화가 흰 도화지 위에 잉크처럼 번져나간다.

2부는 한국에서 혼자 여행 온 혜정(김새벽)이 감을 재배하는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를 만나 펼치는 미묘한 로맨스를 담았다. 별도의 시나리오 없이 촬영된 덕분에 낯선 두 남녀가 빚어낸 공기의 떨림이 여과 없이 스크린에 담겼다. 1부와 2부에서 1인 2역을 연기한 김새벽과 이와세 료는 여행지에서 만난 남녀의 설렘, 아쉬움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덕분에 여름밤 공기가 품은 달콤하면서도 알싸한 향기가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 한 번의 촬영으로 이뤄진 엔딩의 키스신은 두고두고 회자될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키스신.

'한여름의 판타지아'로 한국을 찾은 이와세 료와 만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영화만큼이나 소박하고 유쾌했던 이와세 료와의 일문일답.

-영화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원래부터 장건재 감독과 친분이 있었다. 몇 년 전(6년 전)이더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만났다. 전주영화제를 인연으로 장건재 감독이 일본에 올 때마다 우리 집에서 지냈다. 내가 없으면 혼자 빈 집에서 지낼 정도로(웃음) 친하게 지냈다.

-현장에서 소통은 어떻게 했나.

통역해주시는 분이 있긴 했는데, 주로 영어로 대화했다. 감독님과 나랑 영어 실력이 비슷비슷하거든. 재밌는 건 합숙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중요한 한국어는 알아 듣겠더라. 가령 "시끄러", "조용히 해!" 같은 것들. 하하. 촬영 후반부에 들어서는 감독님이 한국어로 연기 디렉션을 주는데 내가 알아 듣겠는 거지. 통역해주시던 분이 놀라셨다.(웃음)

-1부는 시나리오가 있었고 2부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2부에서 주어진 상황, 틀은 어느 정도였나.

'이러한 느낌의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정도의 틀만 정해져 있었다. 리허설 때 (김)새벽 씨랑 한 번 정도 맞춰보고 촬영에 들어갔지. 상황이나 동선은 말그대로 흘러가는 느낌대로 찍었다.

-대사는 감독이 주어진 큰 틀 안에서 배우들끼리 애드리브로 만든 건가

어느 정도는. 전부는 아니지만 딱 필요한 수준의 대사만 주어졌다. 새벽 씨가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하긴 하지만 내가 너무 어려운 단어를 쓰면 안 되니까 카메라 돌아가기 전에 어느 정도 맞춰봤지.

-국내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당일에 대본을 주는 걸로 유명하다.

하하 그런가. 장건재 감독은 큰 틀의 대사만 던져주긴 했지만 머리 속에서 구상한 그림이 분명했다. 가령 '두 사람의 간격이 너무 넓어요'라는 식. 그럼에도 배우들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대사를 만들어갈 여지가 있어서 재밌었다.

-2부에서 유스케가 능글맞으면서도 대놓고 혜정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에 관객들이 시종 웃더라.

으하하. 그랬나. 유스케가 혜정과 관광안내소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말린 감을 좀 먹어보라고 권하지 않나. 거기서 원래 영화보다 더 적극적으로 들이밀었거든.(웃음) 감독님이 '어, 어, 이건 너무 적극적인데'라면서 말리셨다. 흐하하.

-2부에서 유스케가 혜정에게 붕어에 얽힌 전설을 얘기할 땐 다들 박장대소하더라. 누가 봐도 거짓말인데 뻔뻔하게 연기하는 게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혹시 그 대사는 애드리브였나?

사실 감독님이 '여기서 재미있는 농담 한 번 던져봐'라고 하셨는데 갑자기 부담이 확 되더라. 재밌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무 이야기나 지어서 연기했는데 감독님이 하나도 재미 없다고 '컷! 컷!'을 외치셨다. 결국 감독님이 써준 대사로 읽었지. 푸하하.

-이와세 료가 즉흥적으로 만든 이야기는 뭐였나? 얼마나 재미 없었길래.(웃음)

으하하. 재밌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좀처럼 이야기가 안 떠오르더라. 글쎄,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 안 나는데?(웃음)

-1부가 흑백이라 그런지, 1인 2역인 걸 모르는 관객들이 꽤 되더라.

아무래도 헤어스타일 차이가 크겠지. 2부에서는 조금 더 피부를 태우기도 했고.

-1부와 2부에 어떤 차이를 두고 연기했나. 외형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앉아 있는 모습, 말투까지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지던데

2부는 아무래도 적극적인 캐릭터이길 바랐다. 감독님과 상의해서 머리도 자르고 피부도 태웠지.

-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은 아무래도 2부 키스신 아니겠나.

사실 새벽 씨가 내가 키스할 줄 모르고 있었다. 나랑 감독님만 사전에 알고 있었지. 감독님께서 슛 들어가기 전에 스태프들에게 '이 장면 딱 한 번밖에 못 찍으니까 잘 찍어야해'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김새벽의 반응은 어땠나

내 앞에서는 딱히 반응을 보이진 않았는데, 촬영 끝나고 감독님한테 가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다더라.(웃음)

-그때 혜정이 유스케 팔에 뭐라고 적었을까. 연락처만 적었다고 하기엔 꽤 오랫동안 뭔가를 열심히 쓰던데

푸하하. 갑자기 볼펜 잉크가 안 나오는 거다. 새벽 씨도 긴장했고, 나도 더워서 팔에 땀이 나다 보니까 더 안 써지는 거지. 새벽 씨가 그냥 뭔가를 적는 척만 한 거다.

-김새벽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같은 질문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고 답했다.

아, 정말로?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하는 걸로.(좌중폭소) 방금 한 얘기는 비밀로 해달라. 으하하.

-키스신과 더불어 맥주집도 인상 깊었다. 남녀 사이의 미묘한 공기나 떨림, 아쉬움 같은 게 잘 담겨 있었다. 혹시 실제 음주촬영이었나?

아니, 맥주는 마시지 않았다. 입만 살짝 댄 정도? 그 장면에서 유스케가 혜정에게 '일본 남자친구로 어때요?'라는 대사는 애드리브였다.(웃음) 새벽 씨가 워낙 생생한 연기를 하는 분이라 나 역시 현장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그게 영화에 그대로 담긴 것 같다. 새벽 씨가 출연한 다른 영화를 못 봤는데, 원래 그렇게 리얼한 연기를 하는 배우인가?

-'줄탁동시'(김경묵 감독, 11)에서 조선족을 연기했는데, 당시에도 굉장히 섬세한 연기를 펼쳤다.

정말? 스고이, 스고이!(멋지다.)

-맥주신에서 혜정이 (무명)배우로서 고민을 털어놓는다. 이와세 료도 배우로서 고민이 있나?

글쎄, 없는 것 같은데

-와세다 대학교 심리학 전공이다. 어떻게 배우가 됐나

원래는 감독이 되고 싶었다. 대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영화 찍는 서클을 만들었는데, 연기할 사람이 없었다. 주변에서 '너가 해!'라고 해서 얼떨결에 연기를 해봤는데 재밌더라.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배우로서 자신의 무기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참 고민하더니) 연기하는 순간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자세 아닐까. 거짓을 연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감독을 꿈꾸게 만든 영화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비디오를 정말 많이 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들이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터미네이트' 시리즈 같은 것들.(웃음)

-인생의 영화를 꼽자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95). 이건 매년 한 번씩은 꼭 챙겨보는 영화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중 '펄프 픽션'(94)을 가장 좋아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86)도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다.

-좋아하는 한국영화가 있다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창동 감독의 '밀양',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을 좋아하지만 역시 한국영화 감독 중 최고는 장건재!(좌중폭소)

-한국영화를 보며 느낀 일본영화와는 다른 점은?

파워풀하고 마초 같다. 일본영화와는 다른 굉장히 강렬한 느낌이 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전주, 부산, 서울 각각 다른 도시를 찾았는데 느낌도 남다를 것 같다.

전주는 작고 고즈넉한 느낌이 들었다. 아기자기하다고 해야 할까. 부산은 바다가 정말 예뻐서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혼자 바다를 많이 걸었다. 서울은 역시 도시 같다. 도쿄랑 비슷한 것 같다.

-혜정과 유스케는 다시 만났을까

안 만나는 편이 조금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지만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고 싶다.

-김새벽 배우의 대답을 의식한 답변 같은데.

푸하하. 맞다.

-남은 기간 동안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등산! 안 그래도 지금 새벽 씨랑 형국 씨가 북한산 산책 중인데, 나도 조만간 가볼까 한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조성진 기자 jinphoto@tvreport.co.kr,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스틸, 장소제공(종로구 통인동 서원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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