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립대 '일베 교수'의 '소신'

홍진수 기자 2015. 6. 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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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부산대 총학생회가 학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제목은 ‘학우들을 협박하는 “일베 교수” 최우원 교수님께 총학생회가 고함’. 부산대 총학생회는 교수의 이름을 명시하면서 ‘일베 교수’라는 수식어까지 붙였다.

부산대 학생동아리인 대학혁신연구소도 같은날 오전부터 학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다. 역시나 타깃은 최 교수였다. 1인 시위 참가자들이 든 팻말에는 ‘최우원 교수님 저희는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최우원 교수님 저희는 교수님의 정치관이 아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이 대학 철학과 최우원 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이 맡은 교양 수업에서 ‘인터넷에서 노무현 대통령 때의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증거 자료를 찾아서 첨부하고, 만약 자기가 대법관이라면 이 같은 명백한 사기극을 어떻게 판결할 것인지 생각해서 이 사건을 평가하라’는 제목의 과제를 냈다.

부산대 총학생회 대자보

이 내용은 부산대 학생들이 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고 곧 외부에도 알려졌다. 커뮤니티 게시글에 따르면 4일 최 교수가 수업 중에 ‘노무현 대통령은 가짜 대통령’이라고 주장하자 어떤 학생이 “교수님이 그렇게 말로만 말하는 건 실질적인 근거가 되지 못한다. 2002년에 실제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실질적인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최 교수가 “인터넷에 찾으면 근거자료들이 다 나온다. 내가 굳이 지금 찾아서 보여줄 필요는 없다. 인터넷에 다 나오니까. 그런 자료는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야 한다”며 문제의 과제를 즉흥적으로 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과 부산대 총학생회는 ‘학점을 무기로 정치적 의견을 강요하는 행위’에 반발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최 교수는 지난 6일에는 극우성향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 이러한 비판을 ‘종북 세력의 공격’이라며 지지를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최 교수의 수업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산대 학보인 ‘부대신문’ 2012년 11월12일자에 따르면 최 교수는 철학과 전공필수 ‘형이상학’ 수업과 교양선택 2영역 ‘문명, 종교, 인간의 이해’ 수업에서 “종북 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을 비판하라”는 과제를 냈다. 그리고 그 과제를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 운영하는 사이트 <조갑제닷컴>에 올리게 했다. 또 비슷한 내용을 형이상학 중간고사 문제로 출제하고 같은 해 8월에는 철학과 조교 채용 면접에서 면접자들에게 종북 좌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당시 부산대는 최 교수에게 3개월 정직 징계 처분을 내렸다.

최 교수는 학교 밖에서는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대북전단 살포를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부산대 총학생회와 민주동문회는 지난해 10월 최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2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인근에서 대북전단보내기 국민연합 공동대표인 최우원 교수(오른쪽)가 안소희 파주시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대 총학생회는 8일 게시한 대자보에서 “유사 사례로 학교에서 정직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수업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거냐”며 최 교수의 사과를 요구했다. 총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시 학교 본부에 정식으로 징계를 요청하는 등 활동을 이어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대학혁신연구소’ 역시 웹자보를 통해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다시금 우리 부산대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교수가 교과목의 개설 목적을 무시한 채 정치적, 사상적 지향을 강의 시간 내에 학우들에게 주입하고, 이와 관련한 내용을 과제로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명백한 학습권 침해 행위”라고 했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사실에 언론에 보도되자 총학생회 사무실로 전화를 해 학생들에게 직접 의견을 밝혔다. 부산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9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오늘 오전 9시50분쯤 최우원 교수님께서 총학생회실로 전화를 주셨고, 이를 황석제 총학생회장이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는 토론으로 만들어 진다. 누가 옳고 그른지 KBS, MBC 다 불러서 토론회를 열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슈를 더 크게 만들기 위해 나를 더 공격하고 전교에 현수막도 거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산대 총학생회가 9일 최우원 교수의 과제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총학생회는 일단 대자보와 함께 1인 시위,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면서 최 교수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슈화가 아니라 말도 안되는 레포트 취소와 학생들에 대한 사과”라며 “철학과 학생회, 해당수업을 듣는 학우들과 만나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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