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 논란, 법 조항은 읽고 다투는가

입력 2015. 6. 3. 14:55 수정 2015. 6. 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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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더(The) 친절한 기자들]

기존 국회법에서 바뀐 조항은 딱 2군데① '통보'→'수정·변경 요구'② '처리 계획 및 결과 보고'→'처리 후 결과 보고'세월호조사위·누리과정 등 시행령이 모법 취지 위배뉘앙스 세졌을 뿐, 국회가 시행령 개정 강제 못해새정치 "강제성 있다" 주장도 정치적 선언 성격박근혜 대통령 "위헌…국정 마비 우려" 언성 높이는 의도는?

최근 국회가 대통령령 등의 개정을 행정부에 요구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했습니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이 법률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청와대와 여·야 간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은 왜 발생했을까요? 행정부 길들이기를 하려는 입법부의 과욕 탓일까요? 입법부의 정당한 요구에 대통령과 행정부가 어깃장을 놓는 것일까요? 이도저도 아니면 청와대와 여·야 간 정략적 수싸움에 불과한 것일까요? 위헌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국회법 개정 '사태'를 정리했습니다.

1. 국회법은 어떻게 개정됐나?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법률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라는 뜻이죠. 그러나 법률에 세세한 내용을 모두 규정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헌법은 '법률의 위임 범위 내'에서 행정부가 대통령령(시행령), 총리령과 부령(시행규칙)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통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과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헌법 제75조), "국무총리 또는 행정각부의 장은 소관사무에 관하여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으로 총리령 또는 부령을 발할 수 있다"(헌법 제95조).

요약하면, 국회는 총론격인 법률을 만들고, 행정부는 각론격인 대통령령 등을 만들어 이 법률을 집행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런데 총론과 각론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제98조의2 3항)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는 이번에 이 조항을 이렇게 고쳤습니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개정 국회법 제98조의2 3항)"

'통보'가 '요구'로, '처리 계획과 결과 보고'가 '처리 후 결과 보고'로 바뀌었습니다. 종전에 국회가 가졌던 '통보권'을 '수정·변경 요구권'으로 고친 것입니다. 국회가 대통령령 등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는 같지만 뉘앙스는 훨씬 강해졌습니다. 행정부의 복종 의무도 강화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2. 왜 국회는 국회법을 고쳤나?

직접적 계기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입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활동을 침해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을 제정했습니다. 특조위와 유가족, 야당은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야당은 여당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합의 처리를 하려면 세월호법 시행령을 수정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여당은 '국회법 개정을 통해 세월호법 시행령을 우회 개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상위법 취지를 거르스는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강제로 시정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바꾸면, 세월호법 시행령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야당은 국회법 개정뿐 아니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열어 '시행령 수정 의결'을 한다고 약속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개정 국회법에 의하더라도 해당 상임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 행정부에 시행령 수정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해양수산부를 관할하는 상임위원회입니다. 결국 여와 야는 한발씩 양보해 지난달 29일 새벽 본회의에서 개정 국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법률은 재석의원 244명 중 211명이 찬성해 압도적으로 통과됐습니다. 세월호 시행령 문제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통령령 등이 상위인 '법률'의 권한을 침해해왔다는 입법부의 불만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이 대표적입니다. 당초 누리과정의 예산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지방재정법에 규정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달 13일 한해 4조원 규모의 이 사업을 각 시도교육청 예산으로 편성하도록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외견상으론 법률에서 규정한 내용을 하위 법률인 시행령에서 뒤집은 것입니다.

이에 앞서 19대 국회는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해 11월 이례적으로 "정부의 행정입법이 상위 법령인 법률을 훼손하는 이른바 법령의 '하극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시행령이 변질된 경우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시정요구권'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습니다.

3. 개정 국회법은 위헌인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개정 국회법은 위헌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시 한번 개정된 조항을 보겠습니다.

개정 국회법 제98조의2 3항,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이 법률 취지·내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경 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해당 조항이 위헌이 되려면 행정부의 행정입법권을 인정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야 합니다. 즉, 국회가 시키는 대로 행정부가 대통령령 등을 만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위 조항을 그렇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국회의 요구에 행정부가 불응한다 해도 달리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회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령 등이 즉각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회와 행정부의 입장이 갈리면 결국 사법부(대법원·헌법재판소)의 힘을 빌려야 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조해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강제성 논란은) '의무'와 '강제'를 혼동해서 생긴 것"이라며 "(국회법 개정안은) 시정 요구가 있을 경우 처리 '의무'와 결과 보고 '의무'를 부과했을 뿐 강제할 방법이 없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후속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요구만 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조계 의견도 조 의원의 설명과 대동소이합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국회가 직접 시행령을 만들겠다고 하거나 자기들이 위헌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하면 위헌이지만, 개정 국회법은 '시행령은 모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당연한 내용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며 "개정 국회법을 따르더라도 시행령이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되면 법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회에 시행령 제정권을 준 게 아니다. 수정 요구를 강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도 "'처리'는 처리 주체에게 참여권을 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국회가 '처리'라는 단어를 '국회의 요구대로 처리'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99% 위헌이다. 행정부의 재량권이 있는 '처리'로 해석하면 합헌"이라고 말했습니다.

4. 거부권 운운은 허수아비 공격

야당은 "강제성이 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당시 여야가 합의한 입법 취지는 강제력을 부여한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선언적 주장으로 이해하는 게 옳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행정부가 따르지 않을 시 딱히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거부권을 행사해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행정규칙은 효력이 발생하기 전 의회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상·하원이 함께 결의하면 행정규칙을 무효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의회의 행정입법통제권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나온 적이 있는데, 이는 상·하원 공동의결로써 무효화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행 한국 국회법에는 이런 제재 수단이 구체적으로 규정돼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강제성이 있다"는 주장은 "반드시 따르라"는 정치적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정이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해질 것이다.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거부권 행사 뜻을 내비쳤습니다. '강제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위헌 주장은 실체가 없는 대상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공격'입니다. 야당의 주장이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청와대가 모를까요?

박 대통령이 '국정 마비'를 우려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국회가 시행령 개정을 요청하려면 상임위원회 의결이 있어야 합니다. 여야 합의가 필수라는 뜻입니다. 설사 국회가 시행령 개정을 요청한다 해도 행정부가 듣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즉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일을 놓고 대통령이 언성을 높이면서 국회를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입니다. 게다가 <한겨레>는 4일 박 대통령이 야당 국회의원 시절,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훨씬 더 강제력이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관련 기사: ▶ [단독] 박 대통령, 야당 시절 '더 강력한 국회법 개정안' 발의 ) 17년 전 본인이 발의자로 참여했던 법안보다 수위가 낮은 개정안에 대해 박 대통령이 과민반응을 보이자 그가 미운털이 박힌 유승민 원내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갈등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옵니다.

이번 갈등은 왜 발생했을까요? 행정부 길들이기를 하려는 입법부의 과욕 탓일까요? 입법부의 정당한 요구에 행정부가 어깃장을 놓는 것일까요? 이도저도 아니면 청와대와 여·야 간 정략적 수싸움에 불과한 것일까요? 자, 이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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