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고음의 남성가수에 반하는 이유

2015. 6. 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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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1일 맑음. 남자의 길. #160 Conchita'You are Unstoppable'(2015년)
[동아일보]
최근 데뷔앨범을 낸 오스트리아 가수 콘치타 부르스트. ‘멋쁘다.’ 콘치타 부르스트 홈페이지
다섯 살 무렵이었나.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빠져든 서양 미남은 예수님이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긴 머릿결, 사내답게 짙은 수염,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이목구비. 집이나 성당에 걸린 그림 속 그는 그 미모만으로도 숭배 받아 마땅해 보였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제59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큰일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 대표로 출전한 콘치타 부르스트(본명 토마스 노이비르트·27)가 우승한 것이다. 스페인 속어로 여성 성기를 뜻하는 콘치타, 소시지의 독일어 부르스트를 합친 가명만큼이나 그는 외양도 기괴했다. 짙은 화장과 드레스, 긴 머리에 남자다운 수염. 그는 공공연한 게이이며 여장을 즐긴다.

부르스트는 2014년 구글의 전 세계 검색어 순위 7위에 올랐고 유럽을 두 동강 냈다. 콘테스트 출전 소식이 전해지자 러시아와 동유럽의 일부 정치인은 “오스트리아 변태가 풍기문란을 부추기러 나왔다”고 맹비난했다. 이에 서유럽 일부 언론은 “부르스트야말로 서유럽이 동유럽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라고 맞섰다. 부르스트는 ‘라이즈 라이크 어 피닉스(Rise like a Phoenix·QR코드)’를 불러 우승한 뒤 “우린 하나다. 우릴 멈출 수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부르스트가 최근 낸 데뷔앨범 ‘콘치타’가 한국에도 발매됐다. 여성의 자태에 수염을 얹은 표지사진에, 어우, 잠깐 놀랐다. 음반에는 21세기 팝이 담겼다. 가수만큼 특이한 음악은 아니다. 멜로디가 좋은 팝이 좋다면 부담 없이 즐길 만하다.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르는 그의 창법은 1980년대 헤비메탈 그룹 남성 보컬을 닮았다.

2011년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연구팀은 프레디 머큐리(1946∼1991·퀸) 같은 고음의 남성 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사람들이 자주 반하는 이유를 과학으로 캤다. 그들의 가설은 이렇다. 선사시대에 전쟁이나 사냥을 나가는 군중을 이끌던 남성 지도자의 목소리, 필사의 진격을 재촉하는 그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인류의 심장을 뛰게 했고 그 기억이 우리 유전자 속에 잔존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처음 내한 무대를 꾸민 퀸에서 머큐리 자리를 메운 미국 가수 애덤 램버트도 게이다. 얼마 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출연자는 칙 코리아, 허비 행콕이 아닌 영국 가수 미카였는데 머큐리를 닮은 고음으로 유명한 그는 양성애자다.

인류는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성(性)에 관대하지 않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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