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정희와 대야에 발 담그고 함께 술 마셔
“국회의원은 뭐냐. 백수건달 아니면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오.”
1958년 8월 국회 예결위에서 자유당 초선 의원이 발언권을 청하더니 굵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야 의원들이 뒤집어졌고 신문은 대서특필했다. 몇 날 며칠 말싸움을 이어가던 국회의원들에게 쓴소리한 이는 성곡 김성곤(이니셜 SK). 그가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첫 사건이었다.
구 정치인 출신 SK는 63년 민주공화당에서 정치를 재개한 뒤 단숨에 실력자로 떠올랐다. 단순히 ‘4인체제’ 중 한 명이 아니라 리더였다. 그 원동력 중 하나가 재력이었다.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행정부에도 그에게 금전적으로 신세 진 사람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단순히 돈을 좀 쓰는 수준이 아니라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조용중 전 연합통신 사장은 “상대방이 100만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SK를 찾아오면 SK는 500만원이나 1000만원을 내줬다”며 “사람을 보는 안목과 승부수를 던질 배짱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런 SK에겐 ‘배포가 크다’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통 큰 행보로 그는 야당까지 휘어잡는 정치력을 지닌 거물 정치인이 된다.
‘협상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다. 이종식 전 의원(9·10대)은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을 술독에 집어넣든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기가 막히게 해냈다”고 말했다.
그가 4인체제라는 독자적인 그룹을 이끈 건 박정희 대통령이 묵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SK는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같이 양말 벗고 대야에 발 담근 채 술을 마시곤 했다. 사석에서는 박 대통령과 호형호제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는 박 대통령보다 네 살이 많다.
SK의 장녀 김인숙 국민대 명예교수는 “아버지는 미국에서 고려대 출신 유학생만 보면 돈을 집어주고 돈이 없을 땐 시계도 풀어주던 분”이라며 “사람을 파악하고 베푸는 힘은 타고 나셨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64년 8월 미국 보스턴 자신의 신혼집에서 SK와 JP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결론으로 이야기를 맺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갈등이 깊어진다. 71년 10·2 항명파동으로 정계를 떠난 SK는 큰딸에게 “정치는 할 것이 못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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