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송전탑 공사, 몸으로 막아선 할머니들

글·사진 박용근 기자 2015. 5. 3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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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옥성마을 대치 현장

▲ 건설 중단 3년여 만에 재개… 주민들 일손 제쳐두고 농성 “검증 거쳐 대안 찾자는데 한전은 귀 막고 공사 강행”

지난 27일 오전 10시 전북 군산시 산북동 옥성마을 앞. 너른 평야 한쪽에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과 건장한 한전 직원 100여명이 땡볕 아래 대치 중이었다. 사복경찰 20여명의 모습도 보였다. 김모 할머니가 “철탑공사를 그만두라”면서 한전 직원들을 향해 흙을 던졌다. 흙을 뒤집어쓴 장정들과 경찰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며 할머니를 쫓았다. 할머니는 도망치다 물이 들어찬 논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옆에 있던 김정순 할머니(87)는 “우리에게 철탑공사는 목숨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어 하지 말라는 뜻으로 흙을 던진 것인데 토끼몰이하듯 사람을 몰아댄다”면서 “흙 던진 사람을 가려내 벌금을 물리면 농민들이 겁을 먹을 걸로 생각하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한 할머니가 전북 군산시 산북동 새만금 송전탑 건설공사 현장에서 한전과 경찰 측이 채증작업을 벌이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논으로 도망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루 뒤인 28일에는 미성동 공사현장에서 대치 중이던 윤성원 할머니(69) 등 두 명이 부상을 당해 군산의료원에 이송됐다.

이춘자 할머니(81)는 “철탑을 옥답과 마을 코앞에 세우려 하니 만사를 제쳐놓고 막아서는 것이지 철탑 자체를 못 세우게 하는 게 아니다”라며 “빈 땅으로 돌아가면 반대하지 않는다”고 분개했다.

한전은 지난 12일 새벽 3년간 중지됐던 새만금 송전선로 공사를 재개했다. 공사가 새벽시간에 이뤄지자 반대주민들도 농번기 일손을 제쳐두고 현장으로 쫓아나오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와 목회자 10여명은 1일 현재 16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새만금송전철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강경식 법무간사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국회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 검증을 거쳐 대안노선을 찾아보자는 것인데 귀를 막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대책위 김덕중 총무는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이 두 달 정도로 예상되는데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공사를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기존 노선 철탑을 일단 건설해 놓고 대안노선이 합당하다면 다시 뽑아내 그쪽으로 옮기자고 하는데 말이 되는 소리냐”고 비판했다.

새만금 송전선로는 새만금 산업단지 전력공급을 위해 군산변전소∼새만금변전소 구간(30.6㎞)에 송전탑 88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전은 군산산단에 제한전력을 할 정도로 전력 강화가 시급하다며 42기의 시공을 끝냈다. 46기의 공사는 주민 반발로 2012년 4월부터 중단됐다. 대안노선으로 미군공여지가 검토됐지만 미군 측 반대로 무산됐고 국민권익위 중재도 실패했다.

한전 중부건설처 김태용 차장은 “군산지역은 젊은 사람들이 취직할 공장이 필요한데도 기존 기업에 전력제한조치를 할 정도로 전력수급이 다급하다”면서 “미군공여지로 대안노선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기존노선을 인정하겠다고 해 놓고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한 만큼 공사 재개 명분은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글·사진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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