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의 뜨거운 의자]영적 건강과 성품의 변화에 대하여

김형경 | 소설가 2015. 5. 24. 21: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인공격당한다는 박해감에분노와 고집이 몸에 배종교 통해 영적 건강 회복을"

나와 함께 독서모임을 했던 그 후배 여성은 알고 보니 난독증 장애를 갖고 있었다. 책을 지참하고 모임에 참석해 자기 이야기도 하고 메모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면 자기를 성찰하는 눈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말투나 태도에 변화가 따라온다. 그런데 그녀는 6개월이 지나도록 작은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타인에 대해 분노하는 말투나 자기 신념을 고집하는 완강한 태도가 그대로였다. 감정노동이 심한 직종에 근무 중이었는데, 모든 타인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는 박해감이 심했다. 그런 경우가 없었기에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책을 읽기는 하느냐고.

그녀는 어렵게 난독증 장애를 고백했다. 책을 소지하기만 할 뿐 읽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문장 서너 줄을 집중해서 읽을 수 없으며, 글자를 읽는다 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른 살까지 읽은 책이란 어른을 위한 동화 종류의 책 두 권이 전부라고 했다.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이 모임에 참석하는 일이 도움이 되느냐고.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독증을 숨긴 채 독서모임에 참석하다니, 그 절박함이 헤아려져 그녀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이제부터 꼭 종교를 가지라고. 교회, 절, 성당 등을 방문해 보고 그중 마음이 끌리는 곳을 골라 종교 생활을 일상의 한 부분에 포함시키라고.

인간의 건강은 신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 세 차원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몸을 건강하게 해도 마음속 트라우마는 해결되지 않으며, 아무리 심리치료를 해도 강박적인 욕동 폭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프로이트는 내담자의 강박적·폭력적 충동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스려진 듯하다가 또다시 욕동 폭발에 휘말리는 내담자에 대해 <끝이 있는 분석과 끝이 없는 분석>에 이렇게 쓰고 있다. "결국 마녀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마녀 메타 심리학(Hexa Metapsychologie)을 말한다. 메타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고 이론화하지 않으면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녀의 정보는 분명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과학적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다. 프로이트의 저 기술 이후 다음 세대 학자들은 자기 학문에 적극적으로 종교를 통합한다. 정신분석학자 크리스토퍼 볼라스는 '변형적 대상관계'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인간은 특정 대상과의 관계 경험 속에서 정신에 변형이 일어난다. 유아기에는 그 대상이 엄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연인, 예술품, 과학, 성스러운 대상 등에 의해 정신에 변화를 맞는다. 후대 학자 제임스 존스는 볼라스의 연구를 원용하여 "개인이 종교적 환경에서 성스러운 것과 변형적 대상관계를 경험할 때 성품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제안한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의 '중간 대상'은 부모로부터 독립한 개인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도중에 동일시하는 대상을 뜻한다. 후대 학자 마이스너는 특별히 종교가 가진 중간 대상, 중간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연구했다. 그는 종교를 개인의 성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제안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영적 건강 영역이다. 그들은 "영적 건강은 인간 본질의 한 부분이며, 인간을 규정하는 특성 가운데 하나이고, 그것 없는 인간 본성은 충분히 인간다울 수 없다"고 정의한다. 빅터 프랭클은 '로고 테라피'라는 치유법을 소개한다. 로고스와 테라피의 합성어로 신에 의한 치료, 영적 치유라는 의미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년기 이후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종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융도 말했다. "종교가 제 역할을 수행했다면 정신분석학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 구성원들에게 종교를 가질 것을 권한다. 아무리 자기를 성찰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는 안되는 영적 건강 영역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종교를 심약한 사람의 의존증쯤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존성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종교의 비과학성을 비판하는 사람은 내면의 비합리적 요소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절대자를 향해 몸을 엎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나르시시즘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이다. 종교 공간이나 종교 상징물에 대해 생생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내면의 불안이나 분노를 그쪽으로 투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만 이렇게 말한다. "그 본질에서 뼛속까지 이기적인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관습이라면 틀림없이 그만한 유익함이 있지 않을까?"

간혹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종교적 수행으로 성품의 변화와 심리적 성장이 가능하다면 굳이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는 불필요하지 않은가." 그에 대해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에서 중독은 치료하지 않은 채 술만 끊는 것과 같다." 강박 충동에 대한 직면, 불안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등은 심리치료 영역에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난독증인 후배는 원불교 교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러 종교 시설을 방문했는데 그 공간이 가장 마음 편하더라고 했다. 6개월쯤 후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노동 심한 직장에 사표 내고, 심하게 통제하는 부모 집을 나와 독립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구직 노력을 하면서도 불안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말투나 태도가 온화해지고 표정과 옷차림이 밝아졌다. 6개월쯤 후, 어떤 인연이 작용했는지 원불교 교당에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다시 6개월쯤 후, 난독증이었던 그녀는 처음으로 심리학 책 한 권을 독파해냈다.

독후감은 이랬다. "책으로 온몸을 두드려 맞는 것 같았다." 아픈 자기성찰이 따르는 독서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모든 변화가 1년 반 사이에 일어났지만 그녀의 영적 건강 영역에서 어떤 작용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뜻깊다. 이 글로써 이 지면을 마무리하게 된 점도 감사하다. 그동안 귀한 지면을 내어주신 매체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미욱했던 점들을 너른 아량으로 용서해주실 것도 당부드린다.

<김형경 | 소설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