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다방으로 오세요] 홀어머니에 장남.. 딸은 나처럼 안 살길.. 제 욕심인가요?

2015. 5. 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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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은 살지 말라는, 딸을 향한 엄마들의 간절한 바람을 생각하면, 딸은 엄마보다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만날 딸은, 엄마가 걸어간 그 길을 그대로 걸으려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자신의 인생은 사랑과 맞바꿨으면서, 딸의 인생은 너무나 아까워 내놓지를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 또한 그 곁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미안해하는 아버지가 여러분의 조언을 기다립니다. 홍 여사 드림

저는 딸 둘을 둔 50대 후반의 엄마입니다. 수험생 뒷바라지, 대학 등록금 고민이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둘 다 취직해서 직장 다니고 있으니, 참 신기하고도 고마운 일이네요. 하지만 부모 노릇에 졸업이란 없는 모양인지, 딸들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갈수록, 저는 새로운 종류의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이에게 좋은 짝을 맺어주는 일 말입니다. 요즘 세상에 부모가 나서서 혼처를 구하는 건 아니지만, 저희가 마음 맞는 짝을 데려오길 기다리는 마음만으로도 조마조마할 때가 잦았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인데, 세상 경험 없는 딸들이 옥석을 가려낼 눈이 있을까 싶어서요.

그러나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드디어 큰딸이 남자친구를 보여주겠다 하더군요. 회사와 집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벌써 삼년이나 사귀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딸은 이미 그 존재를 아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오빠(?) 몇 번 만나봤는데 사람 진짜 괜찮다더군요. 부모가 자식을 제일 모른다더니, 이번에 그 말을 실감했습니다.

하여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저희 부부는 딸의 남자친구를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젖어들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딸이 데려온 청년은 한마디로, 제 남편의 서른 살 때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곱상한 얼굴에 의외로 굵직한 저음, 웃는 눈매나 느릿한 말투 등, 이미지가 부자처럼 닮은 건 서로 웃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요. 문제는 남편과 똑같은 악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홀어머니에 장남, 그것도 밑으로 나이 차이가 많은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생각해서 장학금 주는 대학으로 낮춰 갔고, 벌어가며 공부하느라 휴학에 휴학을 거듭한 것까지, 결혼을 해서도 시어머니와 열 살 아래 시동생과 함께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어쩌면 제 남편과 그렇게도 똑같은 이야기인지….

그래도 지금은 취직해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우리 딸과 처음 만났을 때는 그야말로 물불 안 가리고 막노동을 뛰는 상황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우리 딸이 먼저 좋아해서 적극적으로 대시했다니, 제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한 가지 희한한 건 그 청년이 참 밝고 자신만만했다는 점입니다. 감추고 싶을 이야기까지도, 사실대로 담담히 털어놓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제가 **를 탐내서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그 청년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일단 사람이 되고 그다음이 조건이라고 합니다. 요즘 남자애 중에 속이 시커멓고 정신이 썩어빠진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자인 당신은 모른다고요. 만일 남의 딸 이야기였다면 저도 그 청년을 좋게만 봤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딸의 이야기가 되고 보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솔직히 엄마는 이 결혼 찬성을 못 하겠다고 딸에게 말했습니다. 제발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요. 누가 뭐래도 결혼식장으로 달려갈 기세더니, 엄마 말에 딸은 뜻밖에 잠자코 듣기만 하더군요. 일단 엄마 말은 알아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뒤로 한동안 별다른 기색 없이 예전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교차하고 있겠지만요. 딸이 그렇게 나오니까 제 마음이 더 아파집니다. 하지만 끝내 내색하지 않고 저는 모질게 밀고 나갔습니다. 지금 잠시 실연의 아픔을 겪더라도, 나중에는 이 엄마한테 고마워할 날이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요 며칠 남편은 내 눈치를 보고, 나는 매 같은 눈으로 딸의 기색을 살피고, 딸은 도 닦는 사람처럼 얼굴이 굳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집안 분위기가 팽팽해져 가던 중에 둘째 딸이 제 앞에 다가와 앉으며 엄마 하고 부르더군요. 한동안 제 눈에 보이지도 않던 둘째가 저도 할 말이 있다는 듯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이건 불공평해. 엄마는 용기 있게 사랑을 택해놓고 우리는 왜 비겁하게 현실을 따라가야 해? 엄마도 부모님 반대하는 결혼 했잖아. 그래서 평생 불행했어?"

막내의 말에 저는 잠에서 깬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딸이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뿐 내가 그렇게 불행한 여자인가는 생각 못 하고 있었더군요. 딸은 나처럼 홀어머니 모시지 않기를, 맞벌이에 허덕이며 살지 않기를, 자식한테 미안한 부모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내 삶이 과연 어떤 삶이었는지는 깊이 생각 못 해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딸의 결혼을 선뜻 허락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마음이 약해지고 있네요. 깐깐하신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었고, 돈 벌러 다니느라 애들을 잘 돌보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도 다 추억이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젠 남편 눈치가 보입니다. 막내가 그러더군요. 엄마가 너무 대놓고 반대하니까 아빠가 불쌍해 보인다고요. 저는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인데, 제가 요 며칠 남편 가슴에 못을 박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로 저 하나만 마음을 열면 가족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걸까요? 언젠가 딸의 눈물을 보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저는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네요.

이메일 투고는 mrshong@chosun.com, 홍 여사 답변은 troom.premiu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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