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뒤 '비밀의 방'.. "우린 유령같은 존재"
[오마이뉴스 김동수 기자]
건축물 등 시설의 소유자로서 해당 시설의 청소 및 경비 용역 등을 제공받는 자(청소 및 경비 용역 등을 타인에게 도급 또는 위임·위탁하는 자를 포함한다)는 그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당 시설 내에 휴게시설, 세면 등 위생시설을 설치·제공하여야 한다. -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중 일부
여기는 '착시적 공간'이다. 이 건물은 어느 출입문으로 지나다녀도 1층처럼 느껴진다. 이곳만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내가 현재 서 있는 이 비마관(전자정보공과대학, 공과대학 건물) 3층을 1층처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도 1, 2층은 없고 3층부터 존재한다. '1층인 듯 1층 아닌 1층 같은' 이곳 3층은 유난히 학생들로 혼잡하다.
'숨바꼭질'하듯 자취를 감춘 휴게실...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휴게실 옆을 지나다닌다. 휴게실은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 만큼 꼭꼭 숨겨져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일부러 '숨바꼭질'을 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 건물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이유다. |
ⓒ J1 |
휴게실로 들어가 불을 켠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은 햇볕이 들지 않는 만큼, 사방이 막혀 있다. 햇볕 대신 형광등이 어두컴컴한 휴게실을 환하게 비춘다. 청소노동자들이 일부러 '숨바꼭질'을 했던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 건물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됐다.
▲ 광운대 청소노동자 강영희씨가 고개를 숙여 형광등을 켜는 모습이다. 형광등이 햇볕 대신에 어두컴컴한 휴게실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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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조(오후 3:30~10:00) 청소노동자 강영희씨의 얘기다.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그 시간은 청소노동자들에게 고통이다. 계단 밑에 휴게실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도서관을 보는 것 같다. 사정은 거기보다 더 심각하다. 학생들이 왔다 갔다 하는 만큼, 휴게실은 '쿵쿵' 울려댄다. 구두 굽 소리부터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까지 가지각색의 소음이 노동자의 휴식을 방해한다.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그제야 한숨 돌린다.
"우리 바로 위층에 강의실만 12개가 있어요. 학생들이 그 강의실에 꽉 차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수많은 학생들이 우리 위를 올라가고 내려갈 겁니다. 그 시간은 소음으로 도배되는 느낌이에요."
2대의 자판기와 불편한 동거 중
▲ 비마관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외벽은 자판기다. 이 자판기 뒤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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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입사하고 여기서 쉬는데, 음료수 내려오는 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며칠을 진정하지 못했죠.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게 그냥 노랫소리처럼 들려요. 오랫동안 경험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는 학생들이 눈에 띈다. 이 음료수 떨어지는 소리가 청소노동자의 휴식을 방해한다. '우당탕 탕탕'하는 소리가 자판기 반대편으로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드르르'하는 소리도 연속해서 들려온다. 직원이 자판기에 음료를 채워 넣는 소리다. 특히나 직원들이 음료수를 넣는 소리는 청소노동자들이 쉬는 걸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규칙한 소음이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을 괴롭히는 셈이다. 청소노동자들과 자판기의 불편한 동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 사실상 휴게실의 외벽인 자판기가 청소노동자의 휴식을 방해한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떨어지는 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규칙한 소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진은 내가 자판기 뒤에 서있는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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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전자파의 공포와 함께, 2.68평(8.86㎡)의 공간에서 주간조 청소노동자(오전 06:00 ~ 오후 3:00) 7명이 쉰다. 전체 공간은 2.68평보다 넓다. 하지만 나머지 공간은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배치됐고, 청소용품을 쌓아둔다. 어느 노동자는 화장지를 쌓아놓은 곳에 앉아서 쉬기도 한다. 더군다나 3평 남짓의 공간에서 계단과 가까운 쪽의 높이는 90㎝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아예 기어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신참의 자리다.
내가 체험해본 결과, 모두가 쉬고 있을 때 나오기도 벅찰 정도다. 다른 노동자가 바로 옆에서 쉬면 사방이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워 있다가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다 보면 머리 찧기 딱 좋은 공간이다.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어도 이곳만큼은 암흑천지다. 그곳을 벗어나면 대략 154㎝ 높이의 휴식 공간이 나타난다. 이 쉼터는 나머지 고참들의 공간이다. 쉬는 공간의 배정은 이른바 '짬밥' 순이다.
▲ 일부 쉼터의 높이는 대략 90㎝ 정도다. 이곳으로 들어가려면 무릎을 꿇고 기어가야 할 만큼 낮다.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어도 이곳은 어둡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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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계단 바로 아래에 누워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다 보면 머리 찧기 딱 좋다. 내가 체험해본 결과, 모두가 쉬고 있을 때 나오기도 벅찰 정도다. 다른 노동자가 바로 옆에서 쉬면 사방이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진은 내가 누워 있는 장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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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 마나 한 노동법... 청소노동자의 인권은 위태롭다
"여태까지 수없이 휴게실을 교체해달라고 해도 바꿔주지 않네요. 지금 상황을 설명하면 달걀로 바위 치기죠."
노동조합을 만들기까지 학교 관계자들이 이곳을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학교는 무시해왔고, 용역업체는 방관해왔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니, 총장이 방문했다. 그렇다고 바뀐 건 없다. 휴게실을 교체하는 데 노력하는 척 시늉만 내는 것이었다. 학교가 이렇게 휴게실 교체에 뭉그적거리는 이유는 휴게시설과 관련된 노동법을 위반해도 행정당국에서 제재할 벌칙규정이 마땅히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 지난 3월24일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아직 계류 중이다. |
ⓒ 국회 |
○ 편집ㅣ손병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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