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 노역·상습 폭행.. '우면산 속 지옥'

조형국 기자 2015. 5.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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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째 인권 사각 방치 '신망애의 집'
지적장애인 12명 수용지원금 연 2억 육박에도사실상 노예처럼 생활

지난달 14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자락에 있는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신망애(信望愛)의 집'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나온 활동가 등 10명이 들이닥쳤다. 장애인 인권침해가 심각하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 실태조사에 나선 것이다.

"라면 맛있나요?" 한정림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거주인 김형수씨(62·가명)에게 물었다. 김씨는 고개를 절레 젓고 자리를 피했다. 김씨는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맞은 적 있나요?", "아빠(시설장을 부르는 말)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나요?"라는 질문엔 "모른다"고 일관했다. "아빠가 대답하지 말랬어요?"라고 묻자 "응"이라며 고개를 끄덕인 김씨는 불안한 듯한 모습으로 사방을 살폈다.

1~2급 지적장애인 12명이 이용하는 신망애의 집은 1988년 개원해 27년째 운영 중이다. 한 해 1억2000여만원의 보조금, 7000여만원의 후원금을 받는다. 거주인들은 매달 38만원의 이용료를 낸다. 서류뭉치가 내던져진 옷장 위엔 서초구청에서 받은 권고조치(후원금 부정 집행 등) 공문이 나뒹굴었다. 구청 권고를 제외하고 외부기관 조사를 받은 적 없는 신망애의 집은 공공 감시를 피해 27년간 방치돼 왔다.

장애인들을 때리거나 강제 노역을 시키고, 방치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 서초구의 장애인 단기거주시설 '신망애의 집' 외부 모습. |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제공
중증 장애인들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시청하고 있는 내부 모습. |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 제공

거주인 면담 조사에선 시설 종사자가 거주인을 체벌·폭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답변을 피하던 지적장애 1급 김모씨는 "다른 친구를 때린 것을 본 적이 있으며, 아빠에게 맞아서 쓰러진 사람도 봤다"며 "일을 빨리 안 하면 몽둥이로 때린다"고 했다. 또 다른 장애인은 "맞는 사람이 바보야,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고 말했다. 산중턱에 있는 시설 주변엔 고추, 상추 등을 심은 텃밭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거주인이 동원돼 땅을 파고 작물을 수확한 곳이었다. 연탄을 나르거나 개집을 짓는 등 이들이 도맡은 잡일은 다양했다.

명목은 보호였지만 실상은 방치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조사가 오후 6시 마무리될 때까지 거주인들은 식사시간을 빼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거실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와 냉장고 모터 소리를 빼면 내내 조용했다. 텔레비전에서 오후 뉴스, <징비록>, <추적 60분>, <통일전망대>가 방송되는 8시간 동안 거주인들은 전동휠체어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시간을 보냈다.

이승현 인권센터 주임은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장애인시설 운영규칙엔 거주인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보호시설이라고 하지만 보호가 아닌 방치인 셈"이라며 "장애인을 같은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거주인들은 거의 매일 라면·김치·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그러나 시설이 작성한 주간식단엔 라면이 없었다.

김예원 변호사 등 인권센터 관계자와 장애여성공감·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활동가 등 10여명이 참가한 실태조사는 3일간 진행됐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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