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놔두고 국민연금 해결?

이종태 기자 2015. 5. 1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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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저출산 놔두고 국민연금 해결?4일 만에 무너진 4개월 공든 탑산통 깨놓고 '정치, 병 걸리셨어요?'연금에 대한 '불신' 지핀 주무 장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하려면, 현행 보험료(소득의 9%)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박근혜 정부는 주장한다. 이에 반해 야권은 1%포인트만 올리면 충분하다고 단언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 이토록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연금 체계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모호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반 시민으로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인기 올리기에 급급한 정치권 처지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자기 당파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안을 비틀어 홍보하기에 아주 적합한 대상일 수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특정한 시기(예컨대 2015년 5월)에 젊은 가입자 1600만명이 낸 보험료를 곧바로 370만명의 노인 수급자들에게 나눠주는 구조(부과식)라면 차라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연금은 수천만 가입자가 수십 년에 걸쳐 납부한 보험료를 다시 수십 년에 걸쳐 수천만 수급자에게 적정한 원칙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 복잡한 체계다. 이 같은 업무의 주무 기관이 바로 국민연금공단(공단)이다.

ⓒ연합뉴스 공무원연금 개혁안에서 시작된 논의가 국민연금 논란으로 더 크게 옮아붙었다. 서울 신천동 국민연금공단 앞에 관련 현수막이 붙어 있다.

'공단' 업무 역시 국민연금이 출범한 1988년 이후 한동안은 비교적 간단했을 수 있다. 젊은 가입자들이 착실히 내는 보험료가 공단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일 뿐, 몇 년 지나지 않아 연금을 지급해야 할 중년 후반의 가입자는 인구구조상 많지 않았다. 나가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훨씬 많으니 공단 내부에는 돈이 쌓이게 된다. 이른바 적립금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젊은 가입자가 중년을 거쳐 노년에 이르게 된다. 노령층이 급증하지 않으면, 공단 역시 적립금 중 일부를 쪼개 연금으로 지급하면 되니 큰 걱정이 없다. 그러나 새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젊은이들은 늘어나지 않는 반면 노령층만 크게 확대되고 있다면, 공단은 굉장히 괴로운 처지에 몰리게 된다. 장차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지면서 적립금이 바닥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이후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후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낼 젊은이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5년 주기로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하는 까닭

공단으로서는 향후 '들어올 돈(보험료)'과 '나갈 돈(연금)'을 지속적으로 '추정'해나가면서 정책(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을 수정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보험료의 경우, 출산율과 경제성장률(성장률이 높으면 소득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보험료도 많이 내게 된다), 임금상승률 등이 높을수록 많은 돈이 들어온다. '나갈 돈' 측면에서는, 향후 평균수명이 높아질수록 연금 지급 규모가 커질 것이다. 노령층의 생존 기간에 계속 급여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변수들(출산율, 성장률, 임금인상률, 평균수명 등)이 앞으로 70년에 걸쳐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대략 가정하고 이에 맞춰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을 비교하면, 공단에 어느 시기까지 어느 정도 규모의 적립금이 쌓였다가 어떤 시점에 바닥나는지 추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작업을 '국민연금 재정추계'라고 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필연적으로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수익비(납입 보험료에 대한 연금수급액의 비율)가 평균 1.8에 달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쳐 1억원을 보험료로 낸 경우, 노후에 1억800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장기적으로 볼 때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적립금 역시 바닥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재정추계를 한 뒤 공단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는, 적립금이 적어도 향후 70년(재정추계 기간) 동안에는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것 정도다. 적립금 고갈 시기를 늦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국민연금에 40년 동안 보험료를 납입한 경우, 가입 기간의 평균소득에 대한 연금수령액의 비율) 인하다.

ⓒ시사IN 신선영 5월8일 서울 탑골공원 무료 진료소에 줄 선 노인들. 평균수명이 높아질수록 연금 지급 규모가 커진다.

공단은 재정추계를 2003년부터 5년 주기로 시행해왔다. 대체로 보험료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하로 적립금 고갈 시기를 늦춰왔다. 1988년 출범 당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각각 '3%(노사가 각각 1.5%씩 부담)-70%'였다. 그러나 2003년과 2008년의 재정추계를 거치면서, 보험료율은 9%(노사가 각각 4.5%씩)로 올랐고 소득대체율은 2008년에 50%로 내린 뒤 2028년까지 매년 0.5%씩 낮춰 40%에 고정하기로 했다. 올해인 2015년의 소득대체율은 46.5%다.

한편 2013년 시행된 재정추계에 따르면, 적립금이 오는 2060년에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시 보험료 인상이 논의될 차례였다. 그러나 상황이 갑자기 역전된다. 5월2일 나온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실무기구' 합의안에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다는 항목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대체로 현재보다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정리된 공무원연금 개혁안(물론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지만)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쪽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합의안이 나온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2000만명 이상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등 제도 변경을 한 것은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며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사실상 비난했다. 이 발언은 행정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곧바로 국민연금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에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보험료율을 현행 9%의 2배인 18%로 높여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보수 언론들은 '보험료 2배로 뛰는 국민연금 50%-자식 세대에 부담 떠넘겨' 등의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야권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야권의 주장은 현행 9%(노사 각 4.5%씩)의 보험료율을 10%(노사 각 5%씩)로 1%포인트(가입자 본인은 0.5%포인트)만 올리면 소득대체율 50%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월 소득 200만원인 노동자가 매달 실제로 납입하는 연금보험료율은 4.5%인 9만원이다. 나머지 4.5%(9만원)는 회사에서 부담한다. 이 노동자가 소득대체율이 50%로 오를 경우에 내야 하는 월 보험금은, 보건복지부의 설명에 따르면 9만원을 더 내야 한다. 야권의 주장에 따르면 1만원만 더 내면 된다. 9만원 대 1만원. 차이가 너무 크다.

양측 주장의 근거는 모두 2013년 나온 국민연금 재정추계다. 이에 따르면, 2014년 현재 470조원인 국민연금 적립금은 오는 2043년에 2561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다음 해(2044년)부터 급속히 소진되어 2060년에 바닥난다. 다만 국민연금 재정추계의 취지 중 하나는 적어도 향후 70년의 추정 기간 내에는 적립금이 고갈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70년 뒤인 2083년 현재 '적립금이 남아 있게 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주로 보험료율을 높이는 방안이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표(아래 표 참조)에 따르면, 2083년에 '연금으로 나간 돈'에 비해 2배의 적립금을 보유한 상태(적립배율 2배)가 되려면 보험료율을 당장 2015년부터 9%에서 12.91%로 3.91%포인트 올려야 한다. 소득대체율이 40%인 상태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만약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다면 그만큼 '나가는 돈'이 많아질 터이니 보험료율도 15.10%로 6.1%포인트나 인상해야 한다. 이 경우의 적립금 고갈 시기는 2088년이다. 보건복지부는 같은 방식으로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중 보험료율 인상폭을 가장 크게 잡은 경우가 바로 '일정한 적립배율 유지'다. 이번 연금개혁 논의에 참여한 중앙대 김연명 교수에 따르면, 이 '일정한 적립배율'은 17배다. 2083년의 적립금 규모를 같은 해 '연금으로 나간 돈'의 17배로 설정했다는 이야기다. 적립금 고갈도 2100년 이후까지 연기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엔,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더라도 보험료율을 올해부터 15.85%로 6.85%포인트나 인상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려면, 보험료율 역시 18.85%로 현행 9%의 2배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2배 인상(9%포인트 인상)'의 근거다.

이에 비해 야권의 '1%포인트 인상'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나왔다. 역시 김연명 교수의 설명이다. 2013년 재정추계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40%인 조건에서 적립금 고갈 시기는 2060년이다. 그렇다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경우에는 적립금이 언제 고갈되는 것일까? 이 같은 질의에 보건복지부는 2056년이라고 답했다. 재정추계보다 4년 앞당겨진 시기다. 그렇다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 가운데 적립금 고갈 시기를 2060년으로 다시 맞추려면 보험료율을 얼마로 설정해야 할까? 보건복지부의 답변에 따르면, 10%였다. 현행 9%보다 1%포인트 높은 수치다.

보건복지부의 '보험료율 2배 인상론'은 야권의 '1%포인트 인상론'에 대한 적절한 반박이 아니다. '1%포인트 인상론'의 기준은 2060년의 적립금 고갈이다. 그다음부터는 적립금 없이 해당 시기(예컨대 2061년 1월)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곧바로 그달의 연금으로 수급자들에게 배분하는 '부과식'으로 연금체계를 개편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적립금의 '2060년 고갈'이 아니라 '2083년에도 고갈되지 않는' 시나리오들을 여러 개 제시한 뒤 가장 자극적인 보험료율 인상폭(2배)을 공개했다. 논리적 반박은 아니지만 정치적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 인간이란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에 예민하기 마련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수십 년 뒤에야 연금을 받게 될 시민들은 소득대체율 10% 인상이라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보다 당장의 비용 증대(보험료 인상)를 꺼릴 가능성이 훨씬 크다.

야권의 '1%포인트 인상론'에도 비판의 소지는 있다. 재정추계에서 적립금 고갈 시기를 추정하는 이유는 그 시기를 적어도 향후 70년 이후로 미루라는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1%포인트 인상론'을 비판했다. '2013년 재정추계의 취지는 '적립금의 2060년 고갈'이 적절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고갈을 늦추기 위해 대책을 모색하라는 메시지다. 그러므로 보험료율을 1%포인트만 올리면 적립금의 고갈 시기를 앞당기지 않으면서도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재정추계의 결과를 거꾸로 해석한 것이다.' 결국 이런 난타전 가운데 5월6일 국회에서 예정됐던 공무원연금개혁 합의안 처리는 일단 무산됐다. 여야 간, 그리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간에 질타와 책임 미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4일 만에 무너진 4개월 공든 탑 참조).

결국 지금까지의 추이를 보면 연금개혁 논쟁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적립금인 듯하다. 그리고 적립금 중심으로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찾다 보면 보험료율을 계속 올리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사실 2013년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회에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아니라 보험료율 인상이 논의되고 있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OECD 최악의 저출산율과 급속한 노령화를 감안하면, 오는 2018년과 2023년의 재정추계의 결과 역시 보험료율 인상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연금 시스템의 유지에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야권의 소득대체율 인상론이 '후세대에 부담을 준다'고 격렬히 비난하는 새누리당에서도 보험료 인상만은 절대 제안하지 않는다. 인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최근 국민연금이 논란이 되자 5월6일 참여연대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기자 설명회를 열었다.

이런 가운데, 복지론자들 가운데서 연금개혁 논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적립금 고갈 시기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가'에만 집착한다면 적절한 대안을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민대 조원희 교수는 연금재정 악화의 진정한 원인은 적립금 고갈이 아니라 저출산이라고 주장한다. 연금재정의 악화는 저출산이 지속되면서 갈수록 보험료를 납부할 인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적립금 고갈'은 부차적 요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OECD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치부하는 가운데 기계적인 재무적 관점(수입-지출의 변동에 주목하면서 적립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변동시키는)에서만 연금개혁을 논의해왔다'라고 조 교수는 질타한다.

저출산 지속되면 2083년 가입자 수 반토막

실제로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인 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2명 정도로 OECD 꼴찌다. 보건복지부는 연금 적립금을 2100년 이후까지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18%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되는 경우, 2100년의 한국 인구는 2500만명(통계청 중위 시나리오)으로 지난 4월(5140만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 역시 2015년의 2062만명에서 2083년에는 1100만명으로 떨어진다. 연금 적립금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자체가 사라지는 수준이다.

조원희 교수는 적립금 고갈에 편집증적으로 몰두하기보다 국력을 복지제도 강화에 집중해서 출산율을 높이는 적극적인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앞으로 20~30년 정도의 합계출산율을 지금의 1.2명 수준에서 2명대로 올릴 경우, 2040년 이후에는 인구구조(젊은 가입자 대 연금수급자의 비율)를 안정화시키면서 보험료율 역시 12~15%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간에 보험료율을 서서히 높여나가면 적립금 고갈로 연금체계가 부과식으로 전환되더라도 보험료가 갑작스럽게 증가하는 충격은 최소화할 수 있다. '지금 연금개혁에 대한 지배적 담론은 '적립금 고갈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앞으로도 반복될 악순환일 뿐이다. 공적연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저출산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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