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살해'..누가, 왜, 제 아이를 낳자마자?

2015. 5. 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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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탐사기획] 부끄러운 기록 '아동 학대'

⑤ 미제 - 기록되지 않은 죽음

지난해 12월 경남에서는 22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대부분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이달 말 오후 태어난 한 사내아이는 예외였다. 아이는 외딴 주유소 화장실에서 누구의 축복도 없이 태어났다. 아이를 낳은 이는 정아무개씨였다. 스물다섯 살 엄마는 고통스러운 출산 과정을 홀로 견뎠다. 아이가 울었다. 엄마는 아이를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쓰레기와 뒤섞인 아이가 더 크게 울었지만 외면했다. 쓰레기봉투는 화장실 옆 공터로 옮겨졌다. 혹한의 추위에 아이는 4시간가량을 울며 버텼다. 당시 기온은 영하 1도였다.

경찰 조사에서 엄마는 "동거남에게 버림받을까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았고, 버렸다"고 말했다. 아이의 아빠는 현재 남자친구가 아닌 이전 남자친구였다. 동거남 김씨는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내 아이가 아니어서 화가 났다. 나중에 죄책감이 들어 신고했다"고 말했다. 엄마의 두려움과 동거남의 외면 속에, 아이는 세상에 나온 지 4시간여 만에 숨을 거뒀다.

탄생뒤 축복은커녕쓰레기봉투에 버려지는신생아 살해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제대로 숨도 쉬어보지 못한 채, 눈도 떠보지 못한 채, 이름도 가져보지 못한 채 죽는다. 신생아(영아) 살해다. 법률상 영아는 '분만 도중 혹은 분만 직후'의 아이를 뜻한다. 엄마는 아이를 낳자마자 목을 조르거나 변기에 빠뜨려 아이의 생명을 빼앗는다. 수 시간 돌보지 않고 죽도록 내버려두기도 한다. 극단적인 신체학대이자 치명적인 방임이다. 아동학대다.

7일 <한겨레>가 법원 판결문과 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사망자 자료를 바탕으로 '살해되는 신생아' 수를 추산해 봤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법원에서 '영아 살해'와 '영아 유기치사'로 재판받은 사례는 모두 59건이었다. 한 해 평균 8.4건꼴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집계하는 무연고 사망자 중 신생아로 추정되는 사례(사산아 제외)는 2010~2014년 34건이었다. 한 해 평균 6.8건꼴이다. 이 둘을 합하면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신생아 수는 한 해 평균 15명에 이른다. 숨겨진 죽음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해 평균 '15명+α' 신생아 살해정부는 통계조차 없어

정부는 신생아 살해에 대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관리하는 아동학대 사망 통계에도 2008년 이후 비슷한 사례가 한두 건 잡힐 뿐이다. 신생아 살해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인식도 약하다. 김지혜 남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신생아 살해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죽기 때문에 파악 자체가 어렵다"며 "외국은 신생아 살해를 아동학대 범주 중 하나로 잡고 따로 관리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가, 왜, 제 아이를 낳자마자 죽이는 것일까? 법원 판결문 59건을 분석해 보니, 가해자 중 친모가 58명(98.3%), 친부는 1명이었다. 연령대는 파악된 45명 가운데 10대 10명, 20대 25명으로 10~20대가 전체의 77.7%를 차지했다. 이들은 대부분 미혼(50명, 84.7%)이었다. 요컨대 신생아 살해의 80% 정도를 10~20대 미혼모가 저질렀다.

살해 이유는 미혼 출산에 따른 수치심이나 가족이 알까봐 두려웠다는 경우가 47건(79.7%)으로 가장 많았다. 생활고를 호소한 경우도 19건(32.2%)이었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서라는 이유도 7건(8.6%)이나 됐다. 강간 등 성폭행에 의한 경우는 파악되지 않았다.

출산 장소는 집 화장실(30건)이나 모텔(9건), 고시원(2건) 등이었다. 산부인과 병원인 경우는 2건에 불과했다. 출산과 살해가 하루 새 이뤄지는 경우는 파악 가능한 사례 48건 중 46건(95.8%)이었다. 주변인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고 곧장 살해하는 것이다. 이런 은밀함과 신속함은 신생아 살해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친부가 출산 과정을 도운 경우는 1건이었다. 남성의 방관, 무책임함 또한 신생아 살해의 요인으로 보였다.

신생아 살해는 명백한 아동학대이지만, 법원은 '치욕 은폐', '양육의 어려움', '출산 당시 산모의 비정상적 신체·정신적 상황' 등을 고려해 다른 살인보다 관대하게 처벌하고 있다. 법원 판결을 확보한 59건 가운데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가 48건(81.4%), 미성년자로 형사처벌을 면한 경우가 6건(10.1%)이었다.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5건(8.5%)이었다. 실형은 신생아 살해 전력이 있는 경우(2건)이거나 사체를 심하게 훼손한 경우(2건)였다.

무연고 사망의 경우 낳자마자 버려져, 부모가 누구였는지, 왜 죽였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난해 11월7일 서울시청 누리집에 '무연고 사망자 공고'가 올라왔다. 이름과 생년월일, 사망 원인 등이 모두 '불상'(알 수 없음)으로 표시돼 있었다. 9월 중순 성동구 한 빌라 뒤편 재활용 수거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자아이였다. 키가 50㎝ 남짓한 아이는 담요에 둘둘 말린 채 종이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주변에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이 없어 범인 검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여 만인 10월 말 화장돼 납골함에 담겼다. 가능성은 낮지만 나중에라도 가족들이 찾을 수 있도록 유골은 10년간 보관된다.

최현준 임인택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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