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500만원 접대받은 공무원..'뇌물' 아니란 경찰

이재윤 기자 2015. 5. 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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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여담]국세청·감사원 성매매, 서울 수서경찰경찰서 수사결과 브리핑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취재여담]국세청·감사원 성매매, 서울 수서경찰경찰서 수사결과 브리핑]

"뇌물혐의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두 달간 TF(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수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성매매 혐의만 적용해 이르면 6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입니다."(라혜자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국세청·감사원 공무원들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수서경찰서 소회의실. 사건을 담당한 라 과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정도 밖에 발표 할 수 없어 참담한 심정"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국세청·감사원 성매매 수사 뚜껑 열어보니…

우리나라의 사정기관으로 '갑중의 갑'으로 불리는 국세청·감사원 직원과 업무적 연관성이 높은 '을'의 위치에 있는 관계자들이 거액의 술자리를 갖고 성매매까지 이어진 현장을 덮쳤지만 '뇌물혐의'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인근 숙박업소로 이동해 성매매한 혐의(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 위반)로 국세청 간부급 직원 2명과, 감사원 4·5급 감사관 2명 등 4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예정입니다.

경찰은 국세청 직원들은 대가성이 없다고 보고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불입건 처리했고, 감사원 직원들에 대해선 직무 관련성은 인정돼 입건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리했습니다.

사실 지난달 국세청·감사원 직원이 잇달아 수서경찰서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만 해도 실망감과 동시에 경찰이 권력기관의 민낯을 드러낼 줄 것이란 기대가 컸습니다. 세간에선 "이미 알고 뭔가 노린 것"이란 추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가 영 신통치 않습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본 국민들의 실망감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실수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경찰은 술자리와 성매매 비용이 지불된 사실을 확인했지만 회삿돈이 아닌 개인이 돈을 냈거나, 각출했기 때문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지인들끼리 만난 술자리였고 이들의 업무관련성은 있지만 뇌물로 보이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경찰, '법인카드' 결제 확인했지만 대가성 증거 못 찾아

경찰은 지난 3월 2일 서울지방국세청 이모 과장과 서울시내 한 세무서장 서모씨가 유명 S회계법인 임원 2명이 만나 1·2차와 화대까지 하룻밤에 500만원을 쓴 정황을 파악했지만 결국 대가성을 입증하진 못했습니다.

회계법인 임원이 법인카드로 결제했지만 개인이 냈기 때문에 처벌 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회계법인 임원들이 계산한 카드는 법인에서 발급된 개인용 카드인데 전체 사용액 중 회사청구 항목을 선택해 공제해 주는 방식입니다.

경찰조사결과 회계법인 임원들은 당시 결제마감인 3월 5일까지 이 비용을 회사에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10년 지기 대학동문인 국세청 직원 2명과 회계법인 임원 1명, 수년 전부터 친분을 쌓아온 다른 임원 1명이 3년간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국세청 과장의 귀국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것만 밝혀졌습니다.

경찰은 금품이 아닌 뇌물혐의를 입증하는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수사초기 공무원 신분 등을 파악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통화내역이외에 문자·모바일메신저 기록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라 과장은 "회계법인 임원들이 개인 돈으로 처리를 해 대가성이 없었다"며 "국세청 직원임을 밝혀내는데 7일이 넘게 소요됐고 이후 수사과정에선 이미 휴대전화 등도 교체한 후였다"고 말했습니다.

감사원 감찰담당관실 김모 과장과, 김모 사무관 등 간부 2명도 지난달 19일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사회 선후배 사이인 한국전력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인근의 모텔로 이동해 성매매 여성들과 성관계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이들이 지불한 비용은 술값과 화대를 포함해 180만원 입니다. 한전직원의 승진축하 자리로 알려진 이 날 감사원 직원들은 비타민과 10만원 상당의 고급 한약(공진단) 등을 전달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세청 사건과 달리 술자리 동석자가 밝혀진 감사원 직원들의 경우 뇌물혐의로 입건해 경찰 조사했지만 결국 대가성을 입증하진 못했습니다. 10만원 상당의 선물을 뇌물대가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문자·모바일메신져도 확인 못해…경찰 수사한계 토로

경찰은 특히 뇌물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발생 전후의 통신기록과 휴대전화압수 등의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습니다.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해선 사건전후 접촉기록이 필요한데 영장이 기각돼 수사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경찰은 국세청과 감사원 직원 4명 중 3명만 휴대전화를 압수해 조사했으며 사건발생 이전 통신기록도 전혀 조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통화기록을 확인한 결과 사건발생 이후 휴대전화로 통화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국세청과 회계법인, 감사원과 피감기관인 한전 등은 직무관련성이 포괄적으로 인정되지만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선 대가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가 미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은 특히 이들에게 '포괄적 뇌물'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도 면밀히 검토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벤츠 여검사' 사건 등의 판례를 봐도 개인적 친분관계에 따른 금품수수는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라 과장은 "판례 검토 결과 뇌물 혐의와 관련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유죄 혐의도 입증하지 못하고 피의자들을 검찰에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성매매혐의만 적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정황상 뇌물혐의가 의심됐지만 포착된 증거가 없었습니다. 저희도 정말 허탈 합니다"며 "성매매 이외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뇌물혐의를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라 과장을 비롯해 설명회에 참석한 경찰은 답답함과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금품이 아닌 술과 성접대 혐의 입증의 어려움과 검찰지휘를 받는 수사의 한계까지 내비쳤습니다.

속 타는 경찰의 참담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1차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2차로 치킨을 즐기는 일반적인 술자리와는 너무 다른 공무원들의 모습에 '참담'해할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합니다.

[이재윤 기자 트위터 계정 @mton16]

이재윤 기자 m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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