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와 노망은 다른가.. 입에 담기도 죄송스런 그 이름

입력 2015. 4. 26. 15:41 수정 2015. 4. 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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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말글바다] <157> 한국 사회 지성의 치매현상

[미디어오늘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말의 뜻을 짐작하지 못하는 시대'가 빚은 막장 코미디일까? 차라리 비극이다. 우리사회 지성의 치매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일까? 다음은 '치매'에 관한 국어사전의 풀이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사전의 내용이니 '치매'라는 단어에 대한 공식적인 (국가의) 해석이겠다.

<치매(癡呆) <의학>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 본질적으로 상실되는 병. 주로 노인에게 나타난다. [비슷한 말] 치매증>

'치정'이란 말엔 대개 익숙하다. 한자 癡情을 써주지 않아도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이란 뜻을 바로 헤아린다. 옛 풍속잡지 선데이서울에 무수히 실렸던, 오늘날엔 더 많은, '못 말리는' 현상이다. 남 보기엔 치정일지언정 순정(純情)일 수도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라는 현대속담(?)도 있다. 사랑의 속성일까.

치(癡)는 '어리석다' '미치광이'의 뜻이다. 치한(癡漢)이란 말도 있다. 몇 안 되지만 이 癡자 들어간 단어 치고 뜻 고운 말 없다. 부정적인 말이다. 영어에 더 밝은 요즘 이들 얘기로 하자면 '네거티브'다. 치골(癡骨) 치둔(癡鈍) 치롱(癡聾) 치심(癡心) 치언(癡言) 치인(癡人) 치자(癡者) 치태(癡態) 치행(癡行) 치화(癡話) 등, 모두 비난의 지적질을 담았다. 그 癡자 치매다.

언제 '치매'가 저렇게 '의학용어'로 자리 잡았는지, 적절한 절차를 밟은 결과인지 의아한 이유다. 병명 또는 증상의 이름이기 전에도 치매는 존재했다. '언어 동작이 느리고 정신작용이 완전하지 못함. 어리석음'이라고 설명한 사전도 있다. 말은 점잖지만, 심지어 욕으로도 들리는 노망(老妄)과 동의어다. 배려 없는, 무정한 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모를까?

<치매라는 말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정신이 없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황당한 말로 시작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네이버 게재)를 보면 우리 '지식인'들의 언어감각(능력)에 한숨 절로 나온다. 치매의 영어단어 dementia[디멘시아]와 우리말 '치매'를 혼동한 것이리라. 그 '정보'에 따르면 치매는 '지체장애'와는 다른 후천적인 여러 증후군이다.

참 슬픈 질병이다. 그 아름답던, 정의롭던, 자애롭던, 정답던, 총명하던 분들의 '그런 모습' 얘기를 들으며 그 때마다 가슴 저미는 아픔 느꼈다. 얘기 듣고 고개 끄덕이는데 "그래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하며 눈물짓던 친구의 표정 지금도 역력하다.

그런 분들의 그 '증상'에 우리 사회는 합당한 이름을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모질게도, 그런 증상을 멸시하던 예전부터의 그 이름을 그대로 간판으로 삼았다. 어른 세대가 그 말에 본능적으로 적의(敵意)를 품는 이유다. 우리 국어학계와 의학계는 과연 제 정신인가? 그 '서울대 정보'는 치매의 동의어를 <인지장애>라고 적었다.

그 이름이 가진 정서적 문제가 이 '인지장애' 증후군의 예방과 조기진단에 큰 저해요인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효과적인 치료에도 지장이 클 것이다. 이런 우려에 앞서 이 말의 어감부터 새겨볼 일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 분들'은 이 말을 좋아할까? 꼭 그 단어를 써야만 했나? 본인도, 가족(보호자)도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이름 아닌가? 다만 죄송할 따름이다.

한자여서 유식하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치매의 뒷 글자 매(呆) 또한 어리석다 미련하다는 뜻인 줄 몰랐을까? '라틴어에서 유래한' 치매의 영어 디멘시아는 그런 '모욕의 뜻' 담고 있지 않다. 말의 뜻을 새겨서 이름을 매겨야 하는 이유다. 이제라도 그 이름 바꿔야 한다. 늦었지만.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장

< 토/막/새/김 >'병들어 기대다'는 녁(疒)자는 온갖 질병의 '얼굴'이다. 사람[인(人)]과 널빤지[장(爿)]의 합체로 침대에 앓아누운 사람의 그림이 변해서 된 글자다. 그 안에 다른 글자 보듬어 여러 병증의 이름을 이룬다. 병(病)과 증(症)은 물론 전염병 역(疫), 아픔 통(痛), 암 암(癌), 홍역 진(疹), 상처 흔(痕), 피로할 피(疲) 등 疒자 부수(部首) 글자들 말이다. 부수자로서의 疒자의 이름은 '병질엄'이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병은 생로병사(生老病死) 중의 불가피한 절차일 터. 인생이니까.

▲ 병들어 침상에 드러누운 사람의 그림인 갑골문, 현대의 녁(疒)자와 비교해 보면 3천5백년 역사 속의 한자의 변천을 짐작할 수 있을까? 사진=진태하 교수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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