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통령의 사면, 새 정권과 물러날 정권의 주고받기

최대식 기자 2015. 4. 25.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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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특사, 2007년 12월 28일~31일 나흘간의 진실은?

4.29 재보선을 며칠 앞둔 요즘 여의도 정가에서는 2007년 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사 논란이 한창입니다. 좋게 말하면 진실게임, 나쁘게 말하면 진흙탕 싸움입니다. 친노(親盧) 대 친이(親李)의 대립에서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여야 지도부, 당 전체가 이 싸움에 합세했습니다. 성 전 회장의 불법 정치자금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건네졌는지가 이번 리스트 파문의 핵심입니다만 자칫 본질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게임의 승패에 따라 한 쪽은 제법 타격을 입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치명타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양측 모두 성 전 회장이 2007년 12월 12일경 청와대에서 법무부로 내려보낸 사면 대상자 명단에는 들어 있었지만 법무부가 반대해 12월 28일 확정된 74명 명단에는 빠졌으며 이후 31일 최종 명단에 들어간 점은 인정합니다. 28일에서 31일 사이에 누구의 입김이 작용해 대통령이 한 번 재가를 마친 명단이 수정됐을까요? 청와대 결재 과정을 지켜볼 기회는 없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이례적임은 분명합니다. 그 나흘간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여기서부터 양측의 주장은 엇갈립니다.

먼저 참여정부 측 주장입니다. 청와대에서 사면작업의 실무를 담당했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 박성수 전 법무비서관, 오민수 전 민정비서관 세 사람은 23일 "이명박 이상득 두 분에게 물어보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성 전 회장이 포함된 참여정부 마지막 사면은 새 정권(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이라 인수위의 요구를 반영해야 했으며 양윤재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경우처럼 성 전 회장 역시 막판에 끼어들어왔지만 양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성 전 회장이 사면을 받기도 전에 인수위에 포함됐으니 인수위나 새 정권 핵심 실세 중 누가 청와대 또는 법무부에 부탁을 했는지 이명박, 이상득 두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새누리당이 계속 물타기를 할 경우 이명박 인수위의 무리한 행태들을 낱낱이 밝히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더러운 돈을 받고 사면을 다룬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지만 속시원한 대답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측 인사들의 주장은 전혀 다릅니다. 우선, 성 전 회장이 그해 11월 23일 이미 상고를 포기했다는 얘기는 누군가로부터 사면에 대한 확실한 언질을 받은 것이며 성 전 회장이 인수위원이나 전문위원이 아닌 명예직에 불과한 자문위원 중 한 명에 불과해 그를 위해 사면 청탁을 할 만큼 인수위가 한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개입설과 관련해 장다사로 당시 부의장 비서실장은 24일 "2008년 초 모 중앙일간지가 사설에서 참여정부에서 두 번씩이나 사면을 받은 성 전 회장의 인수위 참여가 옳지 못하다는 지적을 해 성 전 회장을 인수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시 이 전 부의장이 사면을 청탁할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밑에서 어떻게 그런 건의를 했겠느냐"며 이 전 부의장 관련설을 부인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당시 인수위 또는 새 정권 핵심 실세 누구로부터 사면을 청탁받았는지 이름을 밝히라며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실제 법무부에 당시 사면과 관련된 자료가 남아 있겠지만 누구의 청탁 또는 지시로 사면이 실시됐는지 명확하게 밝히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면 대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성완종 전 회장을 제외하고서라도 물러날 정권과 새 정권이 거래를 통해 명단 끼워넣기를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슬퍼런 새 정권의 위세를 이용했든, 거기에 눌렸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주고받기 위해 서로 거래를 한 것입니다. 친이와 친노, 누구의 말이 맞느냐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이 과연 이렇게 행사돼도 되는지 하는 점입니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공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사면이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사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큼 대통령의 사면권이 공적으로 행사되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최대식 기자 dscho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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