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남기업의 기부금은 선거 때마다 사라졌다

입력 2015. 4. 25. 01:30 수정 2015. 4. 25.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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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서산장학재단 사업실적보고서 입수

▶ 정치, 돈, 민심.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1991년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입니다. 서산장학재단 회원 등 1만1945명은 성 전 회장이 지난해 6월 국회의원 당선 무효가 확정되자 지난달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며 구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한겨레>가 입수한 2003~2014년 장학재단의 출연금 추이, 경남기업의 기부금 내역 흐름을 분석하니 총선이 있던 2004, 2008년에만 특이한 자금 흐름이 확인됐습니다.

고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서산장학재단의 2003~2014년 사업실적 보고서를 <한겨레>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경남기업 기부금 추이와 장학재단 출연금이 거의 매년 비례한 것으로 24일 나타났다. 그러나 선거가 있던 2004년과 2008년 경남기업의 수십억원대 자금이 서산장학재단이 아닌 '제3의 기부처'로 흘러들어간 정황이 확인돼 경남기업의 정치권 로비자금 출처와 세탁 통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 21일 충남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 서산장학재단을 압수수색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자료 등을 분석 중이다.

충남 10개 지부, 읍·면·동 지회까지모세혈관처럼 뻗은 서산장학재단"성완종 전 회장 사면 요청하는탄원서 2천~3천장 전달했다"성 전 회장의 '정치재단'이었나장학재단 사업보고서 분석하니2004, 2008년 수상한 돈 흐름 발견'돈줄'인 경남기업 기부금 비해장학재단에 들어온 출연금 적어'제3의 기부처'는 어디인가

성 전 회장이 1991년 설립한 서산장학재단은 그의 정치적·지역적 아군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6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성 전 회장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서산장학재단은 회원 및 주민 1만1945명을 동원해 청와대에 지난달 3일과 13일 선처를 요구하는 두차례 진정을 넣었다. 성 전 회장은 참여정부 때인 2005년과 2007년 두차례 석연치 않은 사면을 받고 정치권에 복귀했다. 두번의 사면을 경험한 성 전 회장이 세번째 사면을 받기 위해 서산장학재단을 이용한 구체적인 정황이 잇따라 드러난 만큼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돈: 선거 때마다 증가하는 제3의 기부처

서산장학재단은 대아건설을 운영하던 성 전 회장이 2003년 경남기업을 인수한 전후로 규모가 커졌다. 기업가 성완종 회장이 2003년 자유민주연합 총재특보단장을 맡으며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와도 겹친다. 서산장학재단은 성 전 회장이 운영하는 기업체에서 매년 출연금을 받았다. 서산장학재단이 매년 주무관청인 서산교육지원청에 보고하는 사업실적 보고서 2003~2014년치를 <한겨레>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경남기업 기부금 추이와 장학재단 출연금이 거의 매년 비례했으나 선거와 워크아웃이 맞물린 2004년과 2008년에는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경남기업이 공시한 2003~2014년 연결재무제표(경남기업 본사와 계열사를 포함한 재무제표)를 보면 12년간 경남기업 기부금은 212억여원 쓰였다. 같은 기간 장학재단이 교육청에 보고한 사업실적을 보면, 출연금은 166억원이다. 장학재단 운영비는 대부분 경남기업 계열사인 대아레저산업·대아건설의 출연금으로 충당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학재단 지부장들은 "경남기업 외에는 장학재단의 '돈줄'이 없다"고 말했다. 장학재단 회원들은 재단 본부에 회비를 내지 않는다.

이 장학재단 출연금 166억원 가운데 실제 장학금은 12년간 110억여원 지급됐고, 나머지 56억원은 문화사업(가을음악회, 잡지 발간), 교육사업(대학 진학 세미나), 복지사업(노인정 지원, 게이트볼대회)으로 쓰였다. 경남기업이 매년 평균 17억7300만원을 기부하면, 이 가운데 78%인 13억8700만원이 서산장학재단으로 흘러간 셈이다.

경남기업 기부금 흐름 가운데 2004, 2008년 양상이 눈여겨볼 만하다. 경남기업은 2004년 당기순이익의 7%가 넘는 13억여원의 기부금을 지출했으나 서산장학재단 출연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2004년 장학재단 사업실적 보고서를 보면, 기업 출연금은 0원이고, 이자수입 등을 수익으로 잡아 장학금 1820만원을 지급하는 데 그쳤다. 2008년에는 경남기업 당기순이익(129억원)의 41.8%에 이르는 금액(54억100만원)이 기부금으로 지출됐다. 2007년보다 48.5% 늘어난 금액으로 '통 큰' 기부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24억원이 서산장학재단 아닌, 다른 기부처에 들어갔다. 경남기업은 이듬해인 200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만큼 자금 사정이 나빴다. 자금력이 달리는 기업이 이익의 절반 가까이 기부금을 쏟아부은 것도 이상한데다, 계열사나 다름없는 서산장학재단이 아닌 제3의 기부처에 기부를 했다. 2004년, 2008년은 선거 시기와도 맞물린다. 성 전 회장은 2004년 총선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2008년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남긴 '8인의 리스트' 또한 대선·경선·총선 자금과 무관하지 않다. 제3의 기부처가 어디인지 경남기업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검찰은 경남기업에서 나간 기부금 내역과 재단에 들어온 출연금 장부, 계좌 등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서산장학재단은 충남의 시·군과 읍·면·동 에 지부와 지회를 두고 있지만 번듯한 건물을 소유하고 있진 않다. 장학재단 임원 가운데 상임이사 한 명과 사무를 보는 과장 한 명이 고정 월급을 받는 직원이다. 지부장과 지회장은 장학생 선발 공고가 내려오면 각 지역에서 추천하는 권한이 있을 뿐 회계 절차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한겨레>가 접촉한 전·현직 장학재단 이사 또한 "이름을 올린 것이지 회계 내역을 잘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서산시 해미면 황락리에 있는 서산장학재단 사무실은 정식 건물이 아닌 컨테이너 박스다. 성 전 회장이 1980년대 마대공장을 운영하던 곳이다. 22일 서산장학재단으로 들어가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철문 너머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이 보였다. 장학재단 우편함에는 성 전 회장의 장례식 사진이 1면에 실린 <서산태안신문> 등 지역신문이 꽂혀 있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유언에 따라 부모님 품으로.' 그의 부고를 알리는 신문이 성 전 회장이 24년간 운영한 장학재단에 닿았다.

정치: 장학재단 동원한 세번째 사면 움직임

서산장학재단은 장학사업이라는 '공익적 목적'과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정치적 목적'을 두루 갖춘 조직이다. 충남의 시·군을 중심으로 조직된 10개 지부와 그 아래 모세혈관처럼 퍼진 읍·면·동 지회 회원들은 성 전 회장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공익적 명분을 띠고 정치적 도움을 줬다. 2009년 경남기업의 두번째 워크아웃을 전후해 서산장학재단 회원들은 장학재단을 유지하기 위해 경남기업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기자회견을 벌였고, 채권단인 신한은행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성 전 회장이 당선 무효가 확정된 계기도 장학재단과 관련이 있다. 재판부는 성 전 회장이 입후보하기 전에 장학재단이 매년 여는 가을음악회에서 사전선거운동을 벌이고, 장학재단 기금 1000만원을 충남방범연합회에 지원한 것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국회의원직 당선 무효가 대법원에서 확정되자 올해 초부터 장학재단 지부장들이 동원돼 탄원서를 모았다.

김한태 보령시의원은 2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에 탄원서를 낸다고 장학재단이 각 지부에 요청을 해서 '성 전 회장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 선처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 2000~3000장을 올해 1월께 재단 본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장학재단 보령지부장을 맡은 김 시의원은 "경남기업 자원외교 비리 의혹이 텔레비전 뉴스에 터진 날에 '탄원서를 잘 받았고 사면인가, 복권인가 있으면 참고하겠다'는 내용의 (정부) 공문을 받았다. 재단 본부가 회원들로부터 탄원서를 모아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산장학재단에서 서산지부장 및 이사를 맡고 있는 김태권씨는 "올해 회원들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낸 건 맞는데 김영탁 재단 상임이사를 중심으로 일이 진행돼서 자세한 건 모른다"고 말을 아꼈다. 김영탁 상임이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성 전 회장과 함께 공범으로 기소돼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2~2014년 국회의원 신분이던 성 전 회장의 서산·태안 지역구 비서관을 맡았다.

장학재단 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지역에서 정치를 했거나 입후보한 인물들이 여럿 보인다. 2006~2010년 이사를 지낸 정정희 이사는 지난해 새누리당 충남도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정 의원은 올해 2월 충남도당 의원과 어울려 성 전 회장과 식사를 했다. "이완구 총리가 인준을 앞둔 때였어요. 충청도 출신인 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성 전 회장이 이 총리 인준을 위해 노력한 건) 이미 다 나와 있지 않아요?"(정 의원)

서산장학재단은 1년에 한 차례 잡지 <소나무>를 발간해오다 2008년 중단했다. 현직 장관과 도지사 등 고위 인사가 잡지에 기고를 실어 성 전 회장의 인맥을 가늠하게 한다. 2000년 이건춘 건설교통부 장관, 2002년 양승택 정보통신부 장관, 2003년 심대평 충남지사, 2005년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2006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2007년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가 기고했다.

민심: 검찰 출두 하루 전날 지킨 약속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된 성 전 회장이 검찰에 출두한 날짜는 지난 3일이다. 엿새 뒤인 9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이 검찰 출두 전까지 서산, 태안을 제외한 장학재단의 다른 지부들은 몸살을 앓았다. 2014년 12월 10개 지부에서 장학생을 선발하고 성 전 회장이 직접 장학증서를 주는 행사까지 열었지만 장학금이 입금되지 않았다. 화가 난 학부모들이 항의를 하려 해도 지역에서 장학재단을 책임진 김영탁 상임이사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성 전 회장이 검찰이 출두하기 하루 전인 지난 2일, 서산·태안을 제외한 8개 지부에 장학금이 뒤늦게 입금됐다. 그보다 앞서 서산·태안 지부에는 지난 3월 말 장학금이 주어졌다. 지난 15일 상장폐지된 경남기업은 약속한 장학금 지급이 어려울 만큼 자금난을 겪었다.

장학금 미지급 관련 기사를 내보낸 <보령시장신문>의 양아무개 기자는 "장학금이 지역에서는 정치적으로도 쓰인다"고 말했다. "조그만 동네니까 기자들도 밥값 10만~20만원씩 받고 장학증서 줄 때 보도하고 후속 보도를 안 한다. 장학금을 실제 안 줘도 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보령에서 새누리당 무궁화산악회가 유명한데 그 소속 회원이 서산장학회원이랑 꽤 겹친다. 장학회 면면을 봐도 새누리당 당원이 많다. 장학재단에도 '색깔'이 있다. 보령에서는 세 개의 장학재단이 유명하다.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전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정암장학회, 보령에서 시작한 대보건설이 주는 장학금, 그리고 서산장학재단이다." 대보건설 최등규 회장은 군 건설 공사를 따내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200억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1월 구속기소됐다.

서산장학재단은 2012년부터 급격히 장학사업이 줄어들었다. 경남기업이 또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자금난을 겪은 때가 2013년이다. 김한태 보령시의원은 "매년 보령에 약 1억원씩 장학금이 지급됐는데 2012, 2013년엔 장학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았다. 2013년도에도 회사가 어려워 장학증서만 주고 장학금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산/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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