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 Story > 김세진 "젓가락 다리에 배 나온 선수들.. 마음 열었더니 우승도 OK"

박준우기자 2015. 4. 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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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OK저축은행 배구팀 감독

"시즌 때보다 더 바빠졌어요. 계속 행사가 잡혀 있는 데다 축하 전화와 문자까지 끊이지 않아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커피숍에서 문화일보와 만난 김세진(41) OK저축은행 감독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감독은 지난 1일 끝난 2014∼2015 V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3연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9년간 16번이나 우승하며 국내 배구계를 지배해왔던 삼성화재의 8시즌 연속 우승을 저지한 것. 특히 김 감독은 지난 1995년 삼성화재에 입단하며 '불패신화'의 서막을 연 주역이었기에 이번 우승은 더 의미 있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마지막까지 우승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며 이번 우승을 '행운'이라고 자평했다.

"챔피언결정전 3차전 마지막 득점이 나오기 전까지도 우승을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우승을 확정 짓고 한 시간 동안 문자와 카카오톡(모바일 메신저), 부재중 전화가 모두 합쳐 800통이 와 있더군요. 그때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 이후 우승 축하 행사와 한·일 톱매치를 치르느라 전혀 쉬지를 못했어요. 여자친구와 함께할 시간이 시즌 때보다 더 적어졌습니다. 너무 빨리 성과가 나와 다음 시즌은 더 걱정입니다."

이날도 데이트 약속이 있었던 김 감독은 인터뷰가 길어지자 커피숍 밖에서 기다리는 여자친구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여자친구가) 선수와 프런트로 일했기에 이런 생활을 잘 이해해 줍니다. 시즌 중에도 같이 있을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많이 고맙죠."

김 감독은 현역 시절 '월드 스타'로 꼽혔다. 이 때문에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김 감독은 고교 진학 당시 충북 지역의 배구 명문인 광산공고(현 제천산업과학고) 대신 옥천공고(현 옥천고)를 택했다. 명문 운동부일수록 강했던 '군기 잡는 문화'가 싫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까지 세터였지만 오른쪽 공격수(라이트)로 포지션을 변경, 국내 최고가 된 것도 김 감독의 도전이 이뤄낸 성과다. 오른손잡이면서도 라이트를 맡았고 이후 왼손을 쓰게 됐다. 은퇴 후에는 해설위원을 거쳐 예능프로그램 방송에 출연했고, 정보기술(IT) 사업에도 손을 댔다. 사령탑으로 기용된 뒤에도 김 감독의 도전은 계속됐다.

OK저축은행 우승의 일등공신은 외국인 선수 로버트 랜디 시몬. 시몬은 센터였지만 김 감독은 라이트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띄워 대성공을 거뒀다. 타 구단은 김 감독을 벤치마킹했다. 한국전력이 센터 출신인 미타르 쥬리치를 라이트로, 시즌 도중 용병을 교체했던 현대캐피탈도 센터 출신이던 케빈 르룩스를 라이트로 활용했다. 이 같은 경험과 도전에 대해 김 감독은 상상력과 도전 정신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가 저 친구 입장이라면,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상상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냥 망상에 그치기도 하지만 늘 새롭게 구상하려고 애쓰는 편이죠. 또 새로 도전해보겠다는 의욕이 굉장히 커요. 좀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과거의 패러다임을 깨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자친구도 이런 저를 보면서 가끔 '미쳤다'고 그래요."

도전에 익숙한 그였지만 감독을 맡기 전에는 많이 망설였다고 털어놓았다. 나름의 청사진은 있었지만 실현하기에는 국내 배구팀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OK저축은행의 수차례 설득과 지원 약속을 받고서야 그는 2013년 감독직을 수락했다.

"OK저축은행 프런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넌지시 묻더라고요. 새 구단을 창단하며 '젊은 피'로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저는 네임밸류에 만족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김세진 이름이 필요하시다면 (감독을) 할 생각이 없지만 제 가치관이 필요하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답을 드렸습니다. 그게 OK사인이 난 것이죠. 그리고 이후 실제로 프런트로부터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데뷔 첫 시즌(2013∼2014), 김 감독은 준비되지 않은 선수단을 보곤 한숨부터 나왔다. 선수들의 기량과 체력 상태가 기대에 크게 못 미쳤기 때문이었다.

"(강)영준이 같은 경우에는 운동선수인데도 배가 나와 있었어요. (송)희채와 (이)민규도 체력이 약해 러닝을 시키면 '열외'되기 일쑤였습니다. (조)국기는 다리가 젓가락처럼 얇아 리베로를 맡기엔 약했습니다.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팀을 맡은 2년간 막내 코치(체력담당)를 세 번 바꿨습니다."

최하위에 머물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김 감독은 팀을 7개 팀 가운데 6위(11승 19패)로 올려놓았다. 신생팀이면서도 꼴찌 수모를 겪지 않은 것은 성과. 그러나 김 감독은 아쉬움이 무척 많았단다.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았거든요. 그런데도 '괜찮아, 그만하면 잘했어'라고들 하시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프로잖아요. 이기는 게 내 역할인데 지면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2014∼2015시즌을 앞두고 김 감독이 가장 신경 썼던 건 선수들의 마음을 열고, 또 이해하려 했던 일이었다. 패배의식을 걷어내기 위해선 마음이 강해지고 또 소통이 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즌 전 김 감독은 심리전문 교수를 초청해 선수들의 심리검사를 진행했고, 제부도에서 1박2일 심리 치료 여행도 떠났다. 선수들의 의식구조를 바꿔주고 싶었던 김 감독의 노력 덕분에 선수들은 조금씩 마음속에 감춘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감독과의 신뢰관계를 쌓아갔다. 가장 많이 변한 선수는 백업 세터로 활약한 곽명우였다. 곽명우는 새로 합류한 시몬과 찰떡호흡을 자랑했다. 붙박이 후보였던 곽명우는 시즌 초반 국가대표로 차출됐다 돌아온 탓에 적응하지 못했던 주전 이민규를 대신해 자주 코트에 나섰다.

"(곽)명우는 속에 뭔가 억눌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심리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마구 울기도 하는 거예요. 어쨌든 속에 맺힌 것을 다 풀어내더니 사람이 달라지더군요."

김 감독은 선수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 애썼다. 경기는 물론 여자친구 이야기, 고민까지 터놓고 대화했다.

김 감독이 먼저 다가가자 선수들은 마음을 열었고 고된 훈련을 묵묵히 참아냈다. 인성과 마음가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김 감독은 외국인선수를 영입할 때도 실력보다도 먼저 사람 됨됨이를 살폈다.

"시몬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인성이 된 친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영입했죠. 훈련할 때 시몬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댄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OK저축은행이 시몬 덕에 우승한 것은 맞지만, 전 시몬의 기량보다도 그 인성이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외국인 선수가 솔선수범한 게 선수들의 의지를 더 키워준 것이죠."

김 감독은 시몬과 자주 식사를 함께하고, 대화를 하면서 그의 팀 적응을 도왔다. 나이트클럽을 가고 싶다는 시몬을 직접 자가용에 태워 서울 강남의 클럽 앞까지 데려다 주기도 했다. "(시몬이) 함께 (클럽에) 가자고 해서 (클럽) 앞까진 같이 갔는데, 솔직히 나이가 드니까 차마 클럽에 들어가진 못하겠더라고요."

김 감독이 만든 팀컬러인 '스피드 배구' 역시 OK저축은행이 창단 2년 만에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쥔 비결. 송명근, 송희채 등 2년 차인 선수들이 한층 성장한 것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김 감독은 또 의외의 대답을 했다. 배구단 구단주가 되고 싶단다. 운영부터 팀색깔까지 자신만의 철학이 녹아든 배구단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막연하게 구단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계속 갖고 있는데 언젠간 그 꿈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현재 일에만 집중하려고요. 지금은 OK저축은행과의 '연애'가 가장 즐겁습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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