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수의 데칼코마니] '4차원' 장호연과 '느림의 미학' 유희관

안희수 2015. 4. 22. 0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안희수]

장호연(55·은퇴)와 유희관(29·두산).

던지는 손, 생김새는 다르지만 능글맞은 웃음, 운동 선수답지 않은 체형 그리고 유독 느린 공은 세대를 초월해 두 투수를 하나로 묶어 놓았다. 남과 다른 길을 걷고, 걸었던 두 투수는 '베어스' 마운드 역사에 가장 개성 있는 투수다. 무엇보다 많은 야구인은 두 투수를 '영리한 투수'라고 입을 모은다. '두뇌 피칭'은 장호연과 유희관의 가장 끈끈한 연결고리다.

◇ '머리'로 승부하는 투수

장호연은 야구 이론에 밝은 투수였다. 고교(충암고) 시절부터 그를 지도한 김성근 한화 감독은 "장호연은 어떤 근육을 사용해 공을 던져야 하는 지도 알았다"고 돌아봤다. 변화구를 연구해 자신만의 구종을 만들었고, 타자의 심리까지 꿰뚫어보려 했다. 타자가 좋아하는 코스에 공 반 개를 빼 던지는 역발상 투구가 돋보였다. 구속 100㎞가 안 되는 '아리랑 볼'을 던져 프로 타자들을 농락하기도 했다. 과거 그를 상대했던 한 코치는 "칠 수 있을 것 같지만 꼼짝없이 당했다"고 전했다.

2013년 유희관은 진갑용(삼성) 상대로 90㎞대 슬로우 커브로 카운트를 잡았다. 유희관의 수 싸움이었다. 단지 공이 느리기 때문에 선택한 자구책이 아니었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가 만든 성과다. 그 결과 130㎞ 중반 직구로도 루킹 삼진을 끌어내는 능력을 갖췄다.

'투수는 어깨가 아닌 머리로 공을 던진다.' 차명석 LG 수석 코치가 현역 시절, 선배 장호연에게 자주 듣던 말이라고 한다. 차 코치는 "현역 선수 중엔 유희관이 그 말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투수다"고 말했다.

◇ 노력으로 약점을 극복하다.

장호연은 고교 신입생 시절, 롱토스로 50m를 채 못 던졌다고 한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조련과 본인의 노력으로 3학년 땐 100m까지 늘었다. 평균 이상으로 어깨가 좋아진 것이다. 공이 느리다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는 140km 초반까지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굳이 빠른 공으로 승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호연은 알려진 대로 변화구 구사 능력이 뛰어난 투수였다. 하지만 이 조차도 손가락이 짧아 습득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수 없이 그립을 바꿔 잡아가며 자신에 맞는 변화구를 만들어냈다. 슬러브(슬라이더와 슬러브)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유희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도 손가락이 긴 편이 아니다"고 했다. 변화구에 어려움이 있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올 시즌 유희관은 좌타자 몸쪽으로 싱커를 던지기 시작했다. 사구 우려가 있지만 캠프에서 한층 가다듬었다. 원래 던지던 구종이지만 새로운 무기로 만들었다.

유희관은 "느린 공을 갖고는 타자를 이길 수 없으니 계속 연구한다. 안 던져봤어도 시도해야 했다. 장호연 선배님도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지난해부터 준비한 포크볼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타자가 의식만 해도 충분히 성과가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두산 역사의 한 페이지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장호연은 유별났다고 한다. OB 시절 팀 동료였던 A씨는 "매체에 선수 기록이 잘 나오지 않던 시절에도 자신의 기록을 수첩에 꼼꼼히 적던 선수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장호연은 1984년 31경기 102⅓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1.58를 기록해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때 그는 주로 패전 처리로 등판했다. 반드시 기록에 집착했다기 보단 보직에 상관없이 투수로서의 역할, 자신의 성적 관리에 철저했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후 장호연는 1988년 사직 개막전에서 롯데를 상대로 무탈삼진 노히트노런, 역대 개막전 최다 선발 등판(9번)·승리투수(6승), 베어스 프랜차이즈 최다승 투수(109승)라는 굵직한 기록을 쏟아냈다.

풀타임 3년 차에 불과한 유희관도 이미 두산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13년 두산 선수론 25년 만에 좌완 투수 10승을 거둔 그는 이듬해, 베어스 좌완투수 최초로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에 성공했다. 지난해엔 토종 선발 중 최다 이닝(177⅓)을 소화하기도 했다. 본인 역시 이 기록에 자부심이 크다.

◇ 4차원과 느림의 미학

장호연은 이따금 마운드 위에서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타자가 노림수에 걸려들면 여지없었다. 그를 기억하는 옛 동료는 입을 모아 '프로야구 최초의 4차원이었다'고 전한다. 물론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뚜렷한 개성을 지녔던 장호연과 달리 유희관은 유쾌하다. '달변가', '강심장' 등 별명으로 알 수 있듯이 타고난 성격 자체가 밝고 긍정적이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서는 오히려 진지하다. 그는 "나도 액션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너무 장난스러우면 야수들 집중력에 피해가 갈까봐 자제한다"고 했다.

후배 유희관은 대선배와의 비교를 반기면서도 그 역시 '제2의 장호연' 아닌 유희관 자신으로 남고 싶어했다. 그는 "함께 거론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 이라는 말이 생겼듯이 나도 남기고 싶은 이정표가 있다. 팀 역사에 기억 남는 선수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ins.com

'6-1' 바이에른 뮌헨, 실력으로 기적을 만들다

[화보] 곡예단이 된 몸짱 치어리더

[지자체 갑질, 멍드는 구단] NC 마산구장, 정치 논리에 표류?

인천 구한 박세직이 말하는 '환상 프리킥' 순간

속 훤히 비치는 의상 입은 모델들…'갈 곳 잃은 시선'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