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 '성찰']끝나지 않은 물음 '나에게 세월호는 무엇인가'

송윤경·박은하·박은경 기자 2015. 4. 1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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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혐오와 애도 사이'

세월호 참사 후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다짐은 1년 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참사 가족의 심정에 공감하거나 적대감 또는 무관심을 드러내는 이들의 속내에는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참사의 본질에 집중하지 않는 기성언론, 공동체 기반이 약한 한국 사회, 각자도생이 선결과제인 일상, 합의보다는 지지층 결집에 집중하는 정치권의 민낯이 드러난다.

■ 약해진 생각의 힘갈등 구도·정보 과잉 '피로감'… '먹고사는' 일상이 우선

세월호 가족과 국민대책회의의 천막이 자리 잡은 서울 광화문광장 입구 양쪽에는 횡단보도가 걸쳐 있다. 민경희씨(37·가명)는 출퇴근 때마다 이곳을 지나다닌다. 횡단보도 앞에서 늘 참사를 알리는 입간판과 희생자 사진을 마주한다. 민씨는 어느 순간 이 장소가 불편해졌다.

"오랫동안 농성장으로 쓰이면서 내 공간을 빼앗긴 기분이에요."

그는 천막을 바라볼 때면 "어쩌다 유가족과 중앙정부가 직접 대립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민씨가 세월호 가족에게 손가락질하려는 것도 아니다. 민씨는 "여야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해결하길 바랐지만 오히려 격한 대립 속에 세월호 해결 문제는 '반정부' 흐름으로 굳어진 것 같다"며 "보수적인 입장에서 참여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민씨는 그나마 세월호 관심층에 속한다. 김희태씨(38·가명·경기 지역 근무)는 "세월호 생각은 안 한 지 꽤 됐다"고 말한다. "관련 기사 안 읽은 지도 오래죠. 주위에서 세월호 얘기 나오면 딴 얘기 하자고 해요."

김씨는 희생자를 대상으로 한 대학특례입학안을 두고 기자에게 되레 "유가족이 요청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세월호 가족이 요구한 것이라면 과한 게 맞지만 아니라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국가 책임을 두고는 "구조 못한 건 잘못이다. 그런데 과하게 국가 탓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했다.

민씨와 김씨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국가의 무능에는 공감하면서도 세월호 가족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두 달 시차를 두고 찬반 여론이 역전된 세월호특별법 조사 결과에서 여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7월28~31일 진행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가족 뜻대로 수사·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은 58%,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35.5%였다. 9월16~18일 조사 때는 37% 대 45%의 구도가 나왔다. 침몰 원인과 정부 무능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수사·기소권 주장에 대한 비공감 의견이 앞지른 것이다.

김씨는 피로감 때문에 이 문제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했다. 회계사로 일하는 정이훈씨(33·가명)는 "유가족 입장에는 찬성하지만 자꾸 투쟁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만은 보기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은 국회 협상 과정과 가족 반대를 집중 조명했다. '정부 대 참사 가족'에 이어 '국회 대 참사 가족'이라는 갈등 구도가 부각됐다. 뉴스에 비친 가족은 '피로를 유발하는 갈등 생산자'에 가까워보였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는 '생각하는 힘이 얄팍해진 한국 사회 문제'를 그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사안 자체가 너무 복잡하고 미궁에 빠지면서 '이쪽 얘기 들으면 이쪽이 맞는 듯하고 저쪽 얘기 들으면 저쪽이 맞는 듯한' 상황이 됐다"면서 "각자가 그런 복잡함을 견디면서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생각을 이어가는 힘이 약해졌다"고 했다. 그 이유로 "정보의 과잉, 일상의 경제적 문제, 한국 사회가 생존의 영역을 넘어선 공공의 영역을 만들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는 생존 프레임으로 본다. 김 교수는 "충격 이후 개인들은 해석의 시간을 거치면서 '가족이 먹고살아야지' '직장이 돌아가야지' '국가가 망하면 안되지' 같은 여러 차원의 생존 프레임을 생각의 맨 앞에 두게 됐다"고 했다.

■ 광장으로 나온 혐오"유족들이 국론 분열" 폭식 투쟁 등 적대감 … 정부·보수세력은 부추겨

참사 가족들에 대한 경멸·혐오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불거지면서 폐쇄적인 메신저(카카오톡)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이명자씨(70·가명)는 지난해 7월 교회 지인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학교 수학여행을 가다가 개인 회사의 잘못으로 희생된 사건을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달라는 것은 이치에도 어긋난 일입니다."

같은 달 20일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지인에게 전송하다 세월호 가족에게 들킨 메시지와 같은 내용이다. 이씨는 "처음엔 불쌍했지만 괘씸해서 견딜 수 없었고, 다 들어주다간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가족들이 "여야 특별법안이 배·보상에 초점이 맞춰진 채 진상 규명을 외면하고 있다"며 단식농성에 들어간 사실은 몰랐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일 대부분을 교회에서 들었다.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유포된 이 메시지는 여론 지형에 강력한 변화를 일으켰다. 공무원 박모씨(59)는 참사 후 한 달간 세월호 뉴스를 거의 보지 않았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한 달 만에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는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보다 놀러갔다 죽은 학생들이 더 많은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추모 분위기가 우울감을 불러일으켜 장사를 망친다며 안산 지역 상인이 현수막을 찢는 일도 발생했다.

9월 이후 적대감은 행동으로 표출됐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48)가 단식을 이어가던 9월6일 일베와 자유대학생연합 회원들이 단식을 조롱하는 '광화문 폭식투쟁'을 벌였다. 일부 보수단체는 "세월호 유족들이 국론을 분열시켜 나라를 어지럽힌다. 공권력이 못하면 우리가 하겠다"며 서울광장에서 추모리본을 자르려다 제지당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와 일부 보수세력은 일베를 방치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효과를 의식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유가족에 대한 공감은 지속적 노력이 필요한 반면, 반(反)공감은 쉽게 선동되고 확산된다"고 했다.

■ 진정한 애도는 성찰지역 주민들이 모임 만들어 위로·공감… '더 나은 사회 만들기' 과제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일부의 혐오와 정서적 거리감은 희생자 가족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뜻에서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뜻을 기리는 시민들도 있다.

경기 수원시 금곡동에 사는 주부들로 구성된 한살림협동조합원 10여명은 지난해 5월부터 매주 수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네 촛불'을 연다. '특별법' '시행령' 같은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느티나무 밑이나 아파트 공동 공간에 모여 현안을 공부한다. "동네 촛불에 오면 실제 얼굴 마주하는 사람들끼리 '나만 아픈 게 아니다'라는 위로를 받는다"(김미혜씨·50)고 한다. 관심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는 공간 마련이 중요한 것 같다"(심미경씨·46)고 말했다.

몇몇 시민들은 가족 간담회에 참여한다. 서울 마포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최은정씨(29)는 "회사 근처에서 유가족 간담회가 열려 참석해봤다. 아픔에 더 많이 공감했다. 유족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까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고 말했다.

정이훈씨는 성찰을 고민한다. 그는 허점투성이의 세월호가 출항할 수 있었던 게 의아하다. 정씨는 "회계사로서 나는 얼마나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돌아봤다"고 했다. "진짜 애도는 세월호 참사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보는 것"(김진영 철학아카데미 이사)이라고 한다면 정씨는 자신도 모르게 애도의 과정을 거친 셈이다. 정씨는 "유가족을 욕하는 댓글을 보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지 않나' 하고 혼자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내 생각을 터놓고 얘기할 기회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홍중 교수는 "그래도 시민들의 마음 바닥에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는 참담함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지 않은가"라고 작은 희망을 얘기한다.

비공감과 적대감을 넘어 공공선과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마음을 어떻게 현실 공간에서 모아갈 것인가.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은 시민들에게 남겨진 과제다.

<송윤경·박은하·박은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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