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법원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 上告法院

오연천 울산대 총장·前사법정책자문위원장 2015.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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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경찰관이 혐의자를 체포할 때 하는 이 말은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확립한 '미란다 원칙'에서 비롯되었다. '미란다 원칙'은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한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으로 형사 절차에서 인권 보장의 기초가 되고 있다. '소송(訴訟) 천국(天國)'이라 불리는 미국도 연방대법원은 연간 접수되는 약 8000건 중 사회적으로 중요한 80여건만을 선별해 재판하면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원칙을 제시한다.

우리는 어떤가. 대법원은 2014년 기준 연간 약 3만8000건, 대법관 1인당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숨 막힐 듯 쏟아지는 서류 더미 속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小部)에서 처리될 수밖에 없다. 대법관 13명 전원이 치열한 토론과 숙의(熟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치와 지향점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는 전원합의체는 매우 드물다. 결국 '미란다 판결'과 같은 빛나는 판결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대법원이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개선 논의의 접합점이 상고 사건을 분류한 후 그 일부를 분담하기 위해 상고법원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미국도 1970년대 연방대법원이 재판할 사건이 급증하자 워런 버거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했다. 연방대법원이 재판할 사건 중 일부를 상고법원이 담당하고, 연방대법원은 더 중요한 사건만 재판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논의 끝에 상고법원을 설치하지 않는 대신 연방대법원이 중요한 사건만 선별하여 상고심 재판을 할 수 있는 상고 허가제를 채택하였다. 독일·영국·일본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법원은 최고법원답게 법령 해석의 통일이 필요한 사건을 선별해 원칙을 세우고, 사회와 일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 대해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러나 우리 국민 정서는 상고심을 제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대법원은 통일된 법령 해석이 필요한 사건이나 사회 전체와 다수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담당하고, 상고법원은 분쟁 당사자 사이에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담당하자는 것이 국회가 논의 중인 상고법원 관련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대법원의 헌법상 기능을 유지하면서 개별 국민의 권리 구제에 소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육책인 것이다.

상고법원이 도입되면 개인 간 분쟁에 그치는 사건은 경륜 있는 법관들로 구성된 상고법원에서 신속하게 심리되고, 전문적인 사건은 상고법원의 전문재판부를 통해 더욱 충실하게 처리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법관 전원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사회적·법률적 견해를 제시·토론하면서 시대정신에 맞는 판결에 매진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사회 통합을 위한 사법부의 역할은 더욱 견고히 뿌리 내릴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대법원다운 대법원을 가지려면 상고법원 도입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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