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멋따라> 하동 유학의 중심 안계마을 '모한재'

입력 2015. 4. 11. 11:02 수정 2015. 4. 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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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하홍도 등 유학자 10여명 배출..남명 선생 후학 양성지와 가까워

겸재 하홍도 등 유학자 10여명 배출…남명 선생 후학 양성지와 가까워

(하동=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일(壹) 안계(安溪), 이(貳) 원당(元當), 삼(參) 사월(沙月)

조선시대 때 사람들은 진주(晉州)의 명촌(名村·이름난 마을)을 이렇게 손꼽았다.

첫 번째로 꼽히는 안계는 현재 경남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안계마을이다.

당시 안계마을은 진주목(晉州牧)에 속했다.

안계마을이 이런 명성을 얻은 건 풍경이 수려하고 훌륭한 유학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안계마을을 감싼 사림산(士林山)은 지리산 천왕봉의 산맥이 동남쪽으로 100리를 넘게 뻗어 형성됐다.

이전엔 형상이 아름다운 선비를 닮은 산이란 뜻인 가사산(佳士山)으로 불렸다.

사림산 아래 마을에서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들이 대를 이어 배출돼 산의 이름과 잘 들어맞는다.

하동 안계마을의 대표적인 유학자가 바로 겸재 하홍도(1593~1666) 선생이다.

겸재 선생은 벼슬을 단념하고 재야에서 학덕을 닦고 실천했던 대표적인 성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겸재 선생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1501~1572) 이후 남명학의 1인자로 불릴 만큼 학덕이 높았다고 전해진다.

겸재 선생의 스승은 송정 하수일 선생이다.

송정 선생은 남명 선생의 제자인 각재 하항 선생의 제자여서 결국 겸재 선생은 남명으로부터 내려온 남명학의 핵심을 전수해 후대에 전한 역할을 한 셈이다.

안계마을은 남명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산청군 시천면 사리와 가까운 거리여서 남명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덕천강변을 따라 놓인 국도를 승용차로 10여분 달리면 닿는다.

겸재 선생은 안계마을 안쪽 계곡인 안식골 아래 '모한재(募寒齋)'에서 독서와 강학을 했다.

모한재는 겸재 선생이 1635년 창건해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경내에는 모한재, 경승루, 사우, 관리사, 내삼문, 외삼문 등이 배치됐다.

모한재의 사당에는 겸재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올리고 있다.

모한재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돼 있다.

재실을 모한이라 부른 것은 겸재 선생이 주자(朱子)의 한천정사(寒泉精舍)를 사모했기 때문으로 전해온다.

주자는 어머니 축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한천오에 장례를 치르고 그 곁에 정사를 지어 '한천'이란 현판을 걸었다.

모한재에서는 겸재 선생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강학활동이 이어졌다. 그래선지 하동에서는 30여명의 이름 있는 유학자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 11명은 안계마을 출신이다.

겸재 선생의 동생으로 학문 탐구와 수양에 힘쓴 낙와(樂窩) 하홍달(河弘達), 여러 번 조정에 천거된 양정재(養正齋) 하덕망(河德望), 남명집을 교정해 간행을 주도한 니곡(尼谷) 하응로(河應魯), 해방 후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 원임이 된 담헌(澹軒) 하우선(河禹善) 선생 등이 그들이다.

이처럼 지역에서 탁월한 유학자가 많이 나왔지만, 하동사람들은 모두가 남명 선생 덕분이란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하동사람들은 남명 선생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 내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2010년 12월 옥종면 양구 삼거리에 남명 선생 숭모비를 세웠다.

숭모비는 대리석 재질의 3단 기단에 높이 2.4m 넓이 0.8m의 오석으로 제작됐다. 비문에 선생의 업적, 하동(옥종)과의 관계, 건립 계기·의의 등이 새겨졌다.

이렇듯 안계마을은 하동 지역 유학의 중심지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성리학의 대가인 남명 선생을 잇는 유학자들이 배출됐고 모한재가 중심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모한재 문 앞에는 소개 글을 적은 표지판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 수년 전부터 정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마을 어귀에 이곳이 하동 유학의 본산이고 많은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된 곳이란 사실을 알리는 표지판 하나 설치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유학의 거두인 남명 선생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기른 산청군 시천면과 가까운 곳이어서 겸재 선생 등이 남명 선생에 가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동 출신 유학자들의 학덕을 기리고 지역 유학의 중심인 모한재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역 문화계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계마을로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IC에서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 칠정삼거리에서 멈춘다.

칠정삼거리에서 하동군 옥종면으로 가는 왼쪽 도로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다 오른쪽에 보이는 덕천강을 가로지르는 두양교를 건너간다.

두양교는 동쪽 산청군 단성면, 서쪽 하동군 옥종면을 잇는 교량으로 덕천강이 두 군의 경계다.

2차로 벚꽃 터널을 이룬 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려 까막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에 안계마을이 있다.

현재 40가구 50여명의 주민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shch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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