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10년 여성의 토로 "우리 '연애'도 순기능 있다"

이병희 기자 2015. 4. 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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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를 한 남녀를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이 9일 열렸다.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2012년 12월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된 지 2년4개월 만이다. 앞서 헌재는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어 이 문제는 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독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위헌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을 2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상)

“자활을 도와준다구요? 성매매 특별법이란 이름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사람 막고 있잖아요. 안 도와줘도 되니까 그냥 놔뒀으면 좋겠어요. 이것도 엄연한 직업이에요.”

성매매특별법 위헌심판 공개변론을 하루 앞둔 8일, 집창촌인 서울 성북구 미아리텍사스촌의 한 사무실에서 성매매 여성 김모(37)씨를 만났다. 그의 ‘업소’는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한다. 오후 8시에 약속이 잡혔지만, 그는 “어차피 요즘 손님이 없어 공치는 날이 많아 괜찮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나와 회사 경리, 옷장사, 제빵사도 해봤다는 그는 집창촌 생활이 벌써 10년째라고 했다.

그는 무표정했다. 그러다 가끔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현장을 나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마치 다 안다는 듯 도와준다며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500만~600만원도 벌었다는 그는 요즘엔 장사가 안돼서 200만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단속이 심해지니 그나마 오던 손님도 줄었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 이곳을 떠난 애들도 늘었지요. 업소에 일하는 애들이 없으니까 손님은 더 줄고. 악순환이지요.”

“이 일이 우리의 생계고 직업”이라는 그에게 성매매특별법은 먹고 사는 문제를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성매매를 한다고 선뜻 말하긴 어렵지만, 우리 스스로 먹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건 꼭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하는 일에도 분명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매매특별법은 이걸 통째로 막고 있어요.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나.

“일해서 돈을 벌면 직업이 아닌가요. 섹스는 섹스일 뿐이에요. 우리가 하는 ‘연애’도 순기능이 있는 거구요.”

그곳에선 성매매를 ‘연애’라고 했다.

-순기능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이 그저 가려야 하고 금지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성욕을 해소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여기 오는 손님 중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받은 손님 중에는 시각장애인도 있었구요. 이런 사람들 중에서는 연애도 결혼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럼 어디가서 성욕을 해소하겠어요.”

-장애인이 아닌 손님이 더 많은 것 아닌가.

“아무래도 그렇죠. 결혼한 사람도 있고 딱 봐도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부인이 잠자리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자기는 돈만 벌어오느 기계라는 거죠. 그렇게 하소연하면서 찾아오는 거죠. 이런 사람들도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욕구가 있는데 무조건 참아라, 막아라라고만 하고 해결책은 없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성을 꼭 신성시하는 쪽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요즘 손님이 줄었다는데, 다른 일을 찾는 게 낫지 않나.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옷장사, 제빵사 ‘시다’(보조)도 해봤어요. 상고를 나와 경리로 취업도 했었어요. 20년 전에 받았던 월급이 30만~70만원인데, 그걸로 생활이 안돼요. 지금 일해도 4대보험 떼면 120정도 밖에 안될걸요. 대학나온 사람들도 취업난이라고 하는데 200만원 벌기가 쉬운 게 아니에요.”

-200만원이 넘는 수입이 필요한 상황인가.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있어요. 어머니 때문에 빌렸던 일수(日收)로 6000만원까지 빚이 늘었었죠. 이걸 갚아나가면서 아버지 보험료도 내야하고, 형편이 어려운 여동생도 돕고 있어요. 갓 태어난 조카는 선천성식도폐쇄증으로 나면서부터 식도가 막힌 상황이었는데, 이 아이 수술비만 1000만원이 들었어요. 꾸준히 나가는 돈에 한 번씩 목돈이 들어가면 이 마저도 빠듯한 상황이에요. 저축은 생각도 못하고 빚을 줄이는 것 만으로도 큰일인데요.”

그의 어머니는 몇 해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 때문에 빚이 생겨서 이 일을 시작했을 땐 원망도 했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열심히 살았던 엄만데. 이제 제 삶을 살아가는거죠”

-본인에게 쓰는 돈은 얼마나 되나.

“한 달에 40만원 정도 될 거에요. 옷 사 입고, 화장품 사고, 보고싶은 책 사보는 게 전붑니다. 아, 핸드폰비도 있네요. 밥이나 잠자리는 이곳에서 같이 생활하니까 따로 돈이 들지는 않아요.”

-성매매로 쉽게 돈을 벌려는 것 아닌가.

“그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보고 여기와서 직접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화가 난 듯한 말투였다. 이런 얘기를 여러 번 들어본 것 같았다.

“우리끼리는 이 일(성매매)을 3D 업종이라고 불러요. 섹스하는 거 순전히 육체노동이잖아요. 오후 6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일해요. 우리도 여기가 직장인데 출근시간이 있고, 손님이 없어도 앉아있으면서 퇴근시간까지 있는 거에요. 하루에 몇 번씩 손님을 받고나면 몸이 축나는데 막노동이랑 비슷할 걸요. 뭣 모르고 들어온 애들 중에는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쉽게 돈 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보고 말해 봤으면 좋겠어요.”

-성매매를 막으면 안되는 이유가 생계 때문인가.

“우선은 그렇죠.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한 거니까요. 하지만 좀 공평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강남에서 잘나간다는 ‘텐프로’ 애들이나 안마방 같은 건 있으면서도 안 잡잖아요. 이쪽에서 텐프로 신고도 해봤는데 꿈쩍도 안하더라구요. 누구는 잡고, 누구는 봐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잖아요. 텐프로라고 하는 애들 중에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애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실제로 목줄이 걸려있는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위한 대책은 내놓지도 못하면서 그만두라고만 하면 설득이 안되죠.”

-이곳 말고 단속을 덜 받는 곳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이쪽 계통에 10년쯤 있었는데 여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서 6년 전에 들어왔어요”

-이곳이 안전하다니?

“2004년인가 유영철 사건이 있었죠. 보도방 여자들을 집으로 불러다가 10명 넘게 죽인 놈 말이에요. 여자가 아무리 힘이 세도 마음먹고 죽이려드는 남자를 어떻게 당하겠어요. 그래도 이곳엔 마담들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있잖아요. 하다 못해 소리라도 지르면 달려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거에요. 이 사람들이 곁에 있어 그나마 안전하다는 거죠.”

-밤 8시가 훨씬 넘었는데, 불빛이 별로 안보인다.

“단속 나오니까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가려서 그래요. 그래도 사람만 지나가면 마담들이 나와서 붙잡을 거에요. 요즘은 오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요. 나갈 때 요구르트병을 들고 나가면 편히 지나갈 수 있을 거에요. 업소에 들렀다가 나간다는 표시 같은 거죠.”

인터뷰를 끝내고 집창촌을 나오는 동안 ‘마담’이라고 불리는 60대 여성들이 붙잡기 시작했다. “잘해줄 테니 쉬었다 가.” 마담들 뒤로 몇몇 집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영업을 하는 집이 절반도 채 안 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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