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에 민원 넣어 보험금 타내자" 생떼 청구 급증

김신영 기자 2015. 4.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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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역설 - 보험사, 민원건수 증가 우려 약관에 없어도 보험금 지급.. 블랙컨슈머 황당민원 줄이어 보험사 민원만 급증 - 민원등급 공개시점 되면 "100억 투입해 점수 낮춰라" 경영진서 지시 내려오기도

7년 전 제왕절개로 출산한 회사원 김모씨는 자신이 9년 전 가입한 보험이 제왕절개 수술비를 지급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 알았다. 하지만 약관에 따르면 보험금은 2년 전 치료비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7년 전 출산은 해당이 안 된다. 김씨는 수술비를 달라고 우기다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결국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다. 금감원이 집계해 공개하는 민원 등급이 나빠져 전전긍긍하던 A보험사는 김씨에게 보험금 170만원을 보내고, 그 대가로 민원을 취하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금감원에 민원을 넣으니 10일 만에 처리 완료! 혹시 이런 일 있으면 꼭 금감원에 민원 넣으세요.' 글에는 '좋은 정보 감사하다'는 댓글이 달렸다.

금감원이 '보험사들은 민원과 소송을 줄이라'고 압박하는 가운데 이를 악용해 악성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어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험사가 민원 건수 증가를 우려해 약관에서 보장하지 않는 질병 등에 대해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일이 종종 생기자 금감원 민원을 악용해 보험금을 뜯어가려는 악성 민원이 증가하는 것이다. 일부에선 민원이 접수되면 일단 민원 점수(높을수록 나쁨)가 올라가는 지금의 체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살할 예정이니 생명보험금 미리 달라"

금융감독원은 금감원으로 접수되는 은행·증권·보험사 등 금융사들의 민원을 집계해 민원 등급을 매기고 있다. 2013년 취임한 최수현 전 원장이 민원 감축을 강하게 압박하고 민원 등급이 나쁜 회사의 지점과 홈페이지에 '5등급(불량)'이라고 쓴 이른바 '빨간 딱지'를 붙여 금융사들을 망신주면서 민원 감축은 금융사들의 최대 '숙제' 중 하나가 됐다. '빨간 딱지'는 지난해 11월 진웅섭 원장이 취임한 후 사라졌지만 금감원은 여전히 민원 등급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금감원의 압박에 금융사 전체 민원 건수는 감소 중이다. 그런데 금융 업종 중 유일하게 보험사들의 민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의 민원 건수는 2013년 1만1993건에서 지난해 1만1589건, 금융투자(증권) 업계는 4198건에서 3760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보험사 민원만은 3만9345건에서 4만405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생명보험협회 모진영 소비자정책팀장은 "보험 상품은 보험사별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금감원의 민원 등급은 소비자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가 다른 금융사보다 민원 등급에 민감하다는 점을 알고 '일단 금감원에 민원 한번 넣어보자'는 가입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생보협회가 취합한 블랙컨슈머의 민원 사례를 보면 황당한 것들이 적지 않다. B보험사 고객인 60대 C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험사에 전화해 욕설을 섞어가며 "높은 사람 바꿔라. 보험에 불만이 있다"고 고함을 치다가 응대 직원이 참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면 금감원에 "보험사 콜센터 직원이 나를 무시하고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제기한다. '자살할 예정이니 생명보험금을 미리 달라'고 민원을 넣은 사람도 있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황당한 민원들이 적지 않지만 일단 금감원에 민원이 접수되면 대부분 민원 건수로 집계가 돼 민원 등급이 나빠지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금감원 민원체계 보완 필요"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이 4월부터 보험협회 홈페이지에 소송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자 보험사들은 악성 민원이 더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소송까지 가는 경우 중 상당수는 악성 민원이거나 보험 사기라고 거의 확실하게 판단되는 것들이다. 연간 보험 사기로 추정되는 보험금 청구 규모가 5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소송 건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민원 점수를 부과하는 체계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의 체계 아래에선 민원을 빠르게 해결하면 0.1점만 부과된다. 그런데 소비자가 무리하게 민원을 제기했다가 합의해서 취하할 경우엔 3배 수준인 0.3점이 부과된다. 보험사가 소송까지 가면 누가 이기는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1.5점이 더해진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민원 점수만 놓고 보면 무조건 가입자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민원 등급 공개 시점이 임박하면 경영진에서 '100억원을 투입해 점수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라'라는 식의 지시가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보험 관련 블랙컨슈머가 늘어 악성 민원이라고 판단될 경우 민원 점수에 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 아울러 민원 발생 평가를 하는 방법에 세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점수 체계를 점검해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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