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건강 하나로 일궈온 일생에 '버날' 있으리다"

2015. 3. 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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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신이의 발자취] 해관 장두석 선생을 그리며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라'는 뜻으로 조계종 노동위원회에서 하는 배밀이(오체투지) 싸움에 함께했다가 막 돌아온 지난달 25일, 입맛이 없어 괴로워하고 있는데 광주의 김준태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두석 선생님이 눈을 감으셨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내려와 주세요."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선생은 눈을 감으신 게 아니다. 이 우주의 건강을 챙기시려고 다시금 먼 길을 나선 것인 거라고 혼자 중얼대긴 했지만 한숨과 함께 옛일들이 쏟아졌다.

지난 1980년대 어느 날이다. 몸이 안 좋아 누워 있는 내 병실에 장 선생이 불쑥, "아니 여보시오, 나보다도 더 어려운 고비를 겪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선생님 건강 때문에 왔지요. 그러나 저러나 거, 건강이라는 낱말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말로는 '울커' 또는 '욱끈' 그러지요." "'울커'라니요." "사람의 건강이란 몸의 건강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 아닌 것과 맞싸워 얻어내는 목숨만이 참건강이라는 말이지요. 바로 장 선생님의 일생 같은 건강."

그렇다, 장 선생은 일생을 건강이라는 '말뜸'(화두) 하나로 사셨다. 환경공해연구소와 민족생활학교 설립, 저서 <병은 없다>와 <바른생활 건강수첩>이 말해주듯 선생의 건강이라는 말뜸은 세상의 건강과 사람 건강의 변증법적 하나의 세계였다.

선생은 지난 60년 3·15 부정선거 규탄 싸움에 앞장섰고, 이어서 80년 5·18 광주항쟁에도 앞장서다가 갖은 박해와 옥고를 치른 나머지 몸의 불균형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선생은 그 기백이 대륙적이었다. 그의 팔은 안으로 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팔을 있는 대로 활짝 벌려 다 내주었다. 선생은 상처투성이였으되 그 생채기는 쉽게 잊으셨다. 하지만 그 원한만큼은 불같은 실천력으로 재조직하는 예인이었다. 그 갓대(증거)로 구질구질하고 쩨쩨한 생각 따위는 그 티도 보이질 않았다.

언젠가 내가 어려울 적 나를 찾아와 자꾸만 광주로 가자는 것이다. 가기만 하면 밥 걱정, 잠자리 걱정, 그 좋아하는 술 걱정 같은 건 요만큼도 안 하게 알아서 할 터이니 그냥 입은 대로 신은 대로 석 달 동안만 서울을 비우자고 했다. 그리하면 내 울커(건강)를 말끔히 회복해드리겠다고 했다. 내 대답이 없자 내 포대기에 한참을 손을 넣고 있다가 가시는데 무언가 불룩해 보니 딱 여섯 글자가 쓰여 있었다. '개고기 한 점 값….'

그런 분이건만 나는 오랫동안 곡절이 겹쳐도 한 번도 찾아보질 못했다. 하지만 이참엔 어떤 일이 있어도 광주에 내려가리라고 다짐했다. 가서 '버날'이라는 말 한마디는 던지고 오리라. '버날'이라니, 무슨 말일까. 어려운 말로는 영광, 하지만 데데하게시리 영예롭다는 영광이 아니다. 한번 타오르면 영원히 타오른다는 불빛, 버날을 던져주고 오리라.

그래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 이 마음까지 그의 무덤가에 덮어주고 오리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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