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이슬람에 끌리는 이유

입력 2015. 3. 23. 09:53 수정 2015. 3. 2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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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명예살인과 왜곡된 가부장제

[오마이뉴스 김준수 기자]

지난 1월, 프랑스 잡지사가 이슬람을 비판하는 만평을 실었다는 이유로 테러를 당했다. 같은 달, 한국에서는 청소년 한 명이 '페미니스트 혐오'를 이유로 IS 가담을 위해 터키를 경유해 시리아로 밀입국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일들이 한국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키운 굵직한 계기가 된 것일까? 당시 며칠간 포털 인기검색어 상위권을 '페미니스트'와 'IS'가 차지하기도 했다.

사실 한국인들은 여전히 이슬람 문화 자체를 낯설다고 느낀다. 다양한 매체로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유럽과 북미에 비해서 이슬람은 지구 반대편의 막연한 곳으로 추상화된 경향이 있다. 게다가 뉴스에서 테러를 비롯한 자극적인 이슈 위주로 전해들으니 이슬람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도 짙다. 또한 배우 엠마 왓슨이 UN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성평등'의 의미를 지닌 페미니즘도 다소 딱딱하고 불편한 이미지로 왜곡됐다.

그렇다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 중 한국의 '형제국가'로 불리는 터키를 살펴보면 어떨까? 이질성뿐만 아니라 닮은 점도 많은 터키의 사회와 문학을 소재로 이슬람과 여성 문제를 분석한 책이 있다. 터키·유라시아 투르크 전문가 오은경씨의 저서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슬람 문화권의 사고방식과 배경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타자화된 여성을 소재로 다룬다.

베일과 명예살인, 여성을 다루는 이슬람의 방식

서적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표지사진.

ⓒ 시대의창

본문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착용하는 베일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베일은 이슬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된 문화로, 당시에는 누구나 원하면 착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 국가가 탄생하면서 여성을 속박하는 도구로 변질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매춘부나 노예를 제외한 여성에게만 베일의 착용을 허용하면서 여성의 '보호받을 자격'을 특정 신분으로 한정한 것이다. 더불어 여성 대다수를 남성의 영향력 아래에 놓으려는 가부장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아내나 여동생, 어머니가 성폭행을 당하면 가족구성원 중 남성들이 피해 당사자를 살해하는 '명예살인'은 다소 의아하다. 어째서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보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걸까? 책은 베일 착용의 강요와 명예살인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민족 이데올로기'와 '남성적 질서 논리'라고 설명한다.

말하자면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을 넘어서, 여성의 순결성을 남성 삶의 요소 중 하나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족 구성원인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완벽하고 강한 남성'의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믿기 때문에 피해 여성을 살해하는 것이다.

민족과 가족의 정체성이 완벽을 유지해야 하는데, 타인(외부세력)에 의해 생긴 남성 질서의 균열(피해여성)을 제거한다는 식이다. 이슬람의 규율을 근거로 한 왜곡된 진단이 엉뚱한 희생양을 만드는 셈이다.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초반부는 정신분석과 터키의 문화, 역사를 통해 이슬람의 제도를 살핀다. 근대화를 겪으면서 '서구 문명에 의한 지배'에 대한 공포가 이슬람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부추긴 과정도 드러난다. 과거 찬란한 시기를 누린 이슬람은 강력한 제국주의의 등장으로 점차 무너지고, 이에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근본주의와 가부장 문화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가운데 민족주의 강화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이슬람 민족과 문화의 순수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여성을 통제하면서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유지하려 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베일'과 '명예살인'은 이슬람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은, 전통을 내세운 가부장제와 '외부세력'으로 묘사된 서구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는 신세가 된다. 여성으로서 강력한 규율로 통제 당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완전히 배척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터키 문학으로 살펴보는 이슬람

근대적 주체로서 가부장제에 저항했던 신여성의 성 담론은 지배 담론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근대적 민족의 탄생에 역행하는 개념이었다. 새로운 상상적 공동체인 '민족'의 탄생을 위해서 여성은 어머니 또는 정숙하고 충실한 아내에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여성은 민족적 차이와 경계를 재생산하고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에 도전하는 여성은 절대 용납될 수 없었고, 마녀사냥의 과정을 거쳐 근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민족 담론의 칼날에 좌절되고 말았다. 결국 신여성은 모성 이데올로기와 여성들의 탈성화 전략하에서 '현모'와 '양처'로 거듭나게 된다. (본문 42쪽 중에서)

본문은 이슬람 문화가 여성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관습이 곧 가족과 민족을 유지하기 위한 위계적 구조의 장치라고 지적한다. 남성 권력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면서 문화의 정체성을 보호하고 서구에 대한 저항의식을 키웠다는 것이다. 베일의 착용처럼, '여성 할례'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말한다. 할례란 성기 훼손을 통해서 순결을 강요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슬람에서는 이를 종교적 의무로 명시하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남성 중심의 사회가 관리하려고 했다.

책의 중반부터는 터키의 문학으로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한다. 아달렛 아아오울루의 소설 <죽으려고 눕다>는 터키 지식인 여성의 삶을 통해서 공화국 출범 이후의 터키를 묘사한다. 여주인공 아이셀의 삶으로, 이슬람 문화의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변화한 20세기 터키의 급변하는 사회를 그려냈다. 이 작품은 근대화가 시작되며 여성도 교육을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성별에 따라 계급과 역할의 한계가 존재하는 사회 분위기를 담았다.

야샤르 케말의 소설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된 명예살인을 다룬다. 남녀 주인공 하산과 에스메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씨족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애인의 납치로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극에 휘말리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소설은 봉건적 사회구조 내부의 혈연관계와 명예살인에 담긴 남성적 논리를 보여준다.

아들인 하산이 어머니 에스메를 명예살인하는 것이 가족과 혈통의 완전성을 지키려는, 권력화된 사유에 의한 행동이라고 덧붙인다. 국가 권력에 의해 해체되는 유목민 부족의 삶을 다룬 소설 <빈보아 신화>는 다문화 국가에 대한 고찰도 더해졌다.

그들은 과연 '괴물'들의 집단일까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군 장교가 전쟁 후유증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 <상처 짓이기기>는 특히 흥미롭다. 작가가 직접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이 책은, 전쟁 이후 한국의 사회 분위기를 터키인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았다. 이 작품은 당시 혼란을 겪던 터키가 내부의 분열을 수습하기 위해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도 썼다. 터키군의 한국전쟁 체험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그 안에서 소외된 개인을 다양한 국적의 등장인물로 표현하여 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당시 터키군과 미군에 성접대를 시도한 한국의 태도가 불쾌했다는 부분에서는 비판의식도 엿보인다.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자료들로 이슬람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마치 가면처럼 씌우는 베일을 통해 이슬람의 권위적 가치가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작동되는 모습을 짚고, 이것이 민족주의와 연결되는 과정도 보여준다. 세계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미국과 유럽을 바라보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이슬람이 종교적 근본주의를 강화한 것은 마치 '나비효과'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분석은 '칼리프 제도'를 부활시키며 출범한 IS에게도 적용된다. '이슬람 공동체의 이상향 복원'을 꿈꾸는 IS는 정교일치를 핵심가치로 삼고, 극단적인 규율을 내세운다. 그 안에서도 여성의 삶은 집단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며 파괴된다. 본문에서는 "IS는 이슬람을 대표하지도 않고, 국가도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이슬람 사회의 재건을 꿈꾸는 열망이 테러집단 형성의 정서적 뿌리가 된 배경을 세밀하게 짚어간다.

문명의 충돌과 테러가 빈번히 벌어지는 오늘날, 피아식별로 단순화된 시각은 편안함을 얻기 위한 빠른 방법이겠지만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순종성을 두고 여성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한 것은 이슬람 뿐만 아니라, 터키와 문화가 닮은 한국의 문제로도 대두되는 현실이다. 민족주의가 드러내는 모순을 꼬집은 저자의 주장은 권위를 우선시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이 책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이슬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실체가 불분명하게 추상화된 상태였던 이슬람 문화를 조금 더 선명하게 머릿속에서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즈음이면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그들은 과연 흔한 표현처럼 '괴물' 집단일까? 폭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태도와 폐쇄적인 사고방식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슬람과 IS를 뭉뚱그리지 않고 더 알아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슬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오은경 지음/ 시대의창 / 2015. 3. 15. / 1만6000원)이 기사를 응원하는 방법!☞ 자발적 유료 구독 [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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