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라 불러도 개의치 않아.. 대북 전단 살포는 인권활동"

정상원 김광수 강윤주 송은미 입력 2015. 3. 23. 04:04 수정 2015. 3. 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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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날릴 때마다 500만원 들지만

10번 중 9번은 비공개 살포하고

대기업ㆍ정부 지원은 전혀 없어

26일 천안함 5주기 맞춰 또 살포

북한이 "무력 대응" 경고하지만

국제문제 비화 원치 않을 것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9일 서울 강남구의 탈북자 자녀 대상 방과후 교육센터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 대표는 북한의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차원의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 간 가장 민감한 현안 중 하나가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삐라) 살포다. 지난해 10월엔 전단 살포 때문에 경기 연천군에서 남북 간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거부할 때마다 대는 이유도 전단 살포 문제가 맨 위에 있다. 북한의 알레르기 반응에 따라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측 당국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대북 전단 살포는 그만큼 민감한 문제이면서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서는 이들은 왜 남북관계를 무시하고 이처럼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것일까. 대북 전단 살포에 앞장서고 있는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북한 주민을 위한 인권 활동"이라고 했다. 남북 관계가 파탄날지 모른다는 지적에는 "전단 문제를 들어 북한이 도발을 하면 국제적 문제로 비화될 텐데 북한이 그리 하겠느냐"고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를 직접 만나기까지는 첩보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험난했다. 박 대표는 외부 위협을 이유로 자신의 사무실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다. 실제로 2011년에는 북한의 독침 테러 위협까지 있긴 했다. 인터뷰 장소를 끝까지 비밀에 부친 박 대표는 9일 오전 약속 장소인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 앞에 경찰 파견 신변보호관 두 사람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인터뷰는 경찰이 기자들의 신원을 확인한 뒤 박 대표가 다시 안내한 인근의 탈북자 자녀 대상 방과후 교육센터에서 이뤄졌다.

박 대표를 만난 이유는 또 있다. 그가 천안함 5주기(26일)에 맞춰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전단 살포용 풍선을 겨냥했던 북한군의 총격 이후에도 "탄피 하나 떨어진 것 갖고 호들갑 떤다"고 했던 박 대표는 "북한 주민들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할 때까지 중단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_대북전단 살포는 왜 하게 됐나.

"한 마디로 대한민국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책공대를 졸업하고 1999년 탈북해 2003년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본부를 시작으로 북한인권 활동을 열심히 했다. 유엔 총회를 비롯해 국제사회를 돌아다니며 끊임 없이 '간증'했는데 유독 국내에서만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가 거짓말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더라. 급기야 2004년 정부가 대북심리전은 물론 비무장지대(DMZ) 내 전광판과 스피커 방송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말로만 하지 말고 북한 절대악에 물리적으로 항거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시작했다. 대북전단은 최고의 심리전 도구다. 총 한번 안 쏘고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데 왜 그걸 못하게 하나."

_대북전단에 담는 내용은 뭔가.

"맨 처음엔 '세계인권선언문'을 보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북한 밖에서 벌어지는 객관적 사실을 담고 있다. 북한 인민들한텐 그 자체만 알려도 충격이기 때문이다. 북한 인민들이 얼마나 속고 있는지 내가 여기 와서 뼈저리게 깨달아서 잘 안다. 이를테면 남한에 와서 처음 성경책을 들여다 봤는데 10계명을 보고 조선노동당 10계명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두 개를 있는 그대로 나란히 적어 놓고 '동포 여러분 어딘가 유사하지 않냐'는 질문과 함께 북에 보냈다. 북한에서 감옥귀신 됐다고 하는 임수경도, 탈북자 출신 조명철도 남한에서 국회의원 하고 있다고도 알려줬다. 천안함 5주기에 맞춰선 유엔총회 116개국이 김정은을 반인륜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에 고소한다는 내용도 보낼 것이다. 우리가 리설주 불륜동영상 등을 북에 보냈다고 하는데 실은 다른 보수단체가 우리 이름을 도용해 보낸 것이다."

_북한에도 휴대폰이 수백만대 보급되고 DVD도 보고 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전단 살포가 유효한가.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북한은 인트라넷은 존재하나 인터넷은 없는 국가다. 북한의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만 해도 지난해 넘어온 탈북자 1,500명한테 조사했지만 그 사이트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매체인데도 그렇다. 중국에선 영화 '인터뷰'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온라인으로 보지만 북한에는 봤다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 북한만큼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하고 철의 장막을 친 국가가 없다."

_그럼 탈북자 중 대북전단 봤다는 사람이 있나.

"많다. 부산에 강연을 갔는데 저를 보더니 뛰어 나온 한 탈북자가 '남포 갔다가 전단을 봤고, 1년 동안 보관했다. 전단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효과 있냐고 자꾸 묻는데 역으로 생각해봐라. 이게 아무런 영향력도 없으면 김정은이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하겠나. 나를 독침으로 찌르게 한 뒤, 최근에도 사무실에 시도 때도 없이 협박 팩스가 오고, 죽은 비둘기나 쥐를 보내고 여전히 그런다. 시간이 모든 걸 증명할 것이다. 거짓과 위선이 이 사회를 속일 수는 있겠지만 그건 잠시뿐이다."

_그런데 왜 굳이 공개로 하나. 정부와 사법부, 국회, 언론 등에서 국민 안전 위협 가능성을 지적하지 않나.

"언론에서 잘못 쓴 거다. 10번 살포하면 9번은 비공개로 한다. 1년에 다 합쳐서 20~30번 보낸다. 매번 공개로 하고 싶어도 바람에 맞춰야 해서 그리 할 수가 없다. 다만 김일성 생일, 천안함 폭침, 노동당 창건일 등엔 공개로 한다. 당연히 선전 효과를 노린 거다. 보수언론에 광고 한 번 싣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해도 비싼 광고비를 부르고, 삼성 현대는 단 한 푼도 안 줬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그렇다 치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선 좀 지원해줘야 하는데 만원 한 장 도와준 게 없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하는 거다."

_쇼라는 지적도 있다.

"쇼 한다는 거 맞다. 국민들에게 후원해달라고 호소하는 거다. 공개적으로 안 하면 후원이 팍 떨어지는데, 언론에 공개되면 늘어난다. 그러면 또 후원금으로 두세 번 전단을 더 보낼 수 있다. 작년에 언론에서 우리를 세게 비판하는 바람에 오히려 후원금이 5배 더 늘었다."

_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표가 뿌리는 대북전단 중 다수가 남한에 떨어졌다고 지적하며 순전히 후원금 모금용이라고 비판했는데.

"말도 안 된다. 바람 다 체크하고 보낸다. 전단은 보통 5,000m 상공까지 올라가 날아가는데 그 풍향을 알려면 일반 기상청이 아닌 항공기상청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하태경 의원에게 묻고 싶다. 그가 활동했던 열린북한방송을 탈북자들 중 누가 들어본 적 있나. 2008년엔 나도 백악관 공식 초청을 받고 미국 가서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대북전단 10장을 들고 가서 '이게 형편 없어 보이지만 진실을 알리는 도구'라고 했더니 선뜻 후원해준다고 했는데 CNN에서 부시 대통령이 '위대한 활동'이라고 말했다고 보도가 되고 북한이 난리가 나서 결국 취소됐다."

_한 번 뿌릴 때 비용은 얼마나 드나.

"한 번에 보통 20만~30만장을 날리는데 500만원 정도 든다. 전단에 곁들이는 1달러짜리 제외하고서다. 북한에선 달러 때문에라도 전단을 기다린다. 군인들도 전단이 날아오면 부인들한테 찾으라고 보낸다. 북한에서 1달러면 북한 돈 7,000~8,000원 정돈데 실제로는 3만원, 6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더라.(북한에선 쌀 1kg이 약 5,000원) 달러는 주로 미국 한인 교포들이 도와주는데 얼마 안 돼서 한 번 전단 날릴 때 100장, 200장 밖에 못 넣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른 거 몰라도 단 1달러, 1,000원 모으기만 해줬으면 좋겠다."

_박 대표의 신념은 알겠다. 문제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무력대응을 경고했고, 실제 주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신념만 고집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당연하다. 저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권 활동이다. 국가안보와 우리의 주적이 인권 활동을 핑계로 공갈 협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사건만 보더라도 프랑스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테러 후 샤를리 잡지가 40배 이상 나가고 언론의 자유가 강조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반대로 가고 있나. 잔인한 폭력 협박에 겁 먹고 진실 편에 안 선다. 내가 왜 전쟁 도발자고 평화의 파괴자냐. 진실이 알려지는 게 두렵다고 폭력 대응하겠다고 나서는 게 나쁜 거 아니냐. 북한이 진짜 포격하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고 국제적 문제로 비화돼 초토화될 것이다. 그걸 아는데 북한이 그리 하겠냐."

_전쟁을 그렇게 쉽게 말하면 되나.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고 전면전으로 가면 어떡하나.

"원래 빈 수레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겁 먹은 자 소리가 높은 법이다. 그럼에도 지역주민들이 위험하다면 힘들지만 우리도 전단 살포를 공개 안 하겠다. 밤에 해도 되고 새벽에 해도 된다, 그런데 비공개로 보내도 노동신문은 '도둑고양이 됐다'고 또 그럴 것이다."

_천안함 5주기에 맞춰 대북전단을 날린다고 하는데 무인기 얘기도 나온다.

"당장 이번 천안함 5주기 때는 아니지만 무인기는 실제로 추진하고 있다. 전단이 바람에 따라 가니, 안 가니 우리를 사기꾼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미국 쪽에서 무인기를 제공해주겠다고 하더라."

_무인기는 항공법 위반으로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북한은 왜 드론을 청와대에 보내나. 우리가 무슨 보복조치라도 했나. 김정은이 하면 로맨스고 보복 조치이고 박상학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_탈북한 거 후회한 적 없나.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래도 저쪽에선 고위층 아니었나. 독재국가였어도 가까이 가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졌으니까. 근데 여기 오니까 정말 밑바닥에 떨어졌다. 처음에는 아버지도 원망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지 북한은 기회조차 없으니까. 그래서 참고 기다려 봤더니 사실은 여기가 천국이었다."

_전단 살포 활동 외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없다. 한다면 평양에서 하고 싶지. 북한인민에게 자유가 사치인 것처럼 나 역시 정치 이런 건 사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한민국 정치권에 대해선 너무 실망했다. 일본도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우리는 10년 동안 낮잠 자고 있다. 전 세계적인 망신거리다. 만약 북한인권법 통과 시켜주는 조건이면 여의도에 들어가는 걸 생각해보겠다. 그런데 '웰빙 귀족들'이 모인 새누리당이 나를 받아주겠나.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도 정신 차려야 한다. 이승만 박정희보다 백배 더 잔인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해 한 마디 안 하는 거 모순 아니냐."

_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를 도둑놈 사기꾼이라고 말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결국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고 수혜자는 2,000만 북한 인민들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는 게 탈북자의 존재 의미라고 생각한다. 절대 다수가 피해를 받고 있는데 왜 자꾸 가해자 편에 서는 거냐. 탈무드에 '잔인한 자를 동정한 자는 동정 받아야 할 자들에게 잔인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똑같다. 독재자 안위를 봐주고 희생자, 북한 인민은 모른 척하고 있지 않나."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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