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음악을 죽이려면 우릴 먼저 죽여라"

입력 2015. 3. 23. 03:11 수정 2015. 3. 23. 03: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22일 일요일 맑음. 목, 숨.
#150 Songhoy Blues 'Soubour'(2013년)

[동아일보]

20일 밤(현지 시간) 미국 오스틴의 클럽 패리시 무대에 오른 말리 밴드 송호이 블루스. 오스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캐나다 록 밴드 러시의 노래 '2112'(1976년)는 음악판 '1984'(조지 오웰)다. SF영화처럼 스토리를 갖고 전개되는 이 20분 33초짜리 대곡은 '시링크스(Syrinx) 사원의 사제들'이라고 불리는 소수의 지성에 의해 출판, 음악, 미술이 엄격히 통제되는 2112년 미래 사회를 그렸다. '사원'의 음악 말고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것은 금지돼 있는 곳.

노래 속 주인공은 버려진 동굴에서 우연히 이전 세대의 유물인 낡은 전기기타를 발견한다. 전율한 주인공이 기타를 들고 시링크스의 사제들을 찾아가는 부분은 명장면이다. 게디 리의 절창은 보물을 발견한 순수한 젊은이, 분노에 찬 노회한 사제를 오가며 능란하게 1인 2역을 한다.

문화 통제는 먼 미래 얘기가 아니다. '2112'보다 꼭 100년 앞선 2012년, 쿠데타로 아프리카 말리 북부를 점령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8월 12일, 음악 금지령을 선포한다. '우린 사탄의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송출한 뒤 그들은 라디오 방송국을 파괴했다. 악기를 모아 불태우거나 음악인들 손을 자르기도 했다. 음악가들은 점령군의 손길이 닿지 않는 말리 남부나 이웃 나라 부르키나파소로 망명했다.

'그들은 우릴 먼저 죽여야 할 것이다(They Will Have to Kill Us First).'

올해 SXSW 필름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된 이 섬뜩한 제목의 영화를 20일 오후 미국 오스틴에서 봤다. 탄압을 피해 고향을 등졌지만 음악만은 버릴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다. 밴드 송호이 블루스 멤버들이 니제르 강변에서 석양을 등지고 망향의 노래 '바바 후'를 연주하는 장면에 먹먹해졌다.

그들은 이날 밤 거짓말처럼 오스틴 시내 클럽 '패리시' 무대에 섰다. 서구식 블루스에 말리 전통을 가미한 그들의 노래는 우리 토속민요와도 닮았다. 밭일하며 부르고 받던 그 노동요. 흥겹지만 애달픈 노래. 블루스의 고장 텍사스 심장부에 그들의 블루스가 진하게 풀렸다.

"저희 데뷔 앨범 '망명의 음악(Music in Exile)'이 나왔습니다!! 말리 음악 좋나요?!!!"

보컬 가르바 투레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춤추며 노래했다. 그가 부르는 말리어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활짝 웃는 그 얼굴 아래로 자막이 어른거렸다.

"음악을 죽이려면, 우릴 먼저 죽여야 할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