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의인 "나는 죄인"..극단적 선택까지

박아름 기자 입력 2015. 3. 21. 08:03 수정 2015. 3. 21.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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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세월호 참사 당시, 소방호수로 학생들의 구조를 도왔던 김동수 씨 기억하실겁니다. 당시 김 씨는 10명의 소중한 목숨을 구했지만,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아름 기자입니다.

<기자>

배가 완전히 기울어 침몰해 가던 절체절명의 순간,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올리려 커튼과 소방호스를 닥치는 대로 던지던 남자, 화물차 기사 김동수 씨였습니다.

[김동수/지난해 4월 인터뷰 : 여학생들은 힘이 없으니까 툭툭 떨어져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소방호스를 두 개로 했거든요. 잡아서 당기면 올라올수 있겠다 싶어서.]

그렇게 10명 넘는 목숨을 구해 냈지만, 김 씨는 눈 앞에 두고 와야 했던 학생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고 합니다.

[강정훈/정신과 전문의 : 버스에 있다가도 갑자기 막 소리를 치면서 내리라고 이야기를 한다거나 노를 젓는 시늉을 한다거나 계속 깜짝깜짝 놀라면서 긴장을 한다거나 깊은 잠을 못자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때문에 대출까지 받았지만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화물차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김 씨는 그제(19일) 밤 제주의 집에서 흉기로 손목을 그어 의식을 잃었습니다.

응급조치를 받아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가족들은 또 한 번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김 씨는 세월호 재판에 증인으로 서고, 유족들과 도보 행진도 했지만 죄스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 본인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때 학생들을 놔두고 왔잖아요. 마지막까지 같이 못 나오고. 그러니까 죄인이죠.]박아름 기자 ar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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